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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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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예시로는
"상대 필드의 몬스터 2장을 릴리스했을 경우에 상대 필드에 특수 소환할 수 있다."

wktk@wktk999
【男を興奮させる言葉ランキング】 3位「終電逃しちゃった」 2位「今日勝負下着だよ」 1位「このカードの発動に対して魔法、罠、モンスターの効果は発動でき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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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게임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카드게임에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은 언제일까? 상성이 좋지 않은 덱을 만나는 순간 중요한 순간에 패가 심하게 말리는 순간이 대표적일 것이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항상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우리는 인생에서 늘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을 마주한다. 내 머릿속에 없던 변수, 갑작스러운 돌발상황,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흘러가버리는 일들.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까지 다 바꾸려 들면 스트레스만 커진다. 운명의 신이 정해준 상대와 패까지 억지로 고치려 하면,
결국 게임은 즐거움보다 소모가 더 커질 것이다. (애초에 그런 시도는 공정함에도 어긋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다.
덱을 더 잘 정비하고, 플레이를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밀도를 높이는 것뿐이다. 이건 마치 내면 수행과도 같다.
상대를 고를 수는 없고, 패를 고를 수도 없다.
하지만 어떤 덱을 가져갈지, 그 순간 어떤 판단을 할지는 내 몫이다. 그저 우리는 선택을 하고 그걸 받아들일 뿐이다.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면 게임은 고행이 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만 더 잘 다듬는 것.
어쩌면 그것이 카드게임과 인생을 오래 즐기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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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순문학을 하고 싶었다.
단순히 책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일이 좋았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다시 읽을 때 새롭게 보이는 것이 좋았고, 살아가면서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문장을 통해 또렷하게 새겨지는 순간들이 좋았다.
그래서 여러 번 작품을 썼고, 상도 많이 받았다. 적어도 학창시절까지는 내 글이 먹혔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처음으로 넓은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 내가 경쟁력이 있었던 것은, 단지 그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글을 그만두었다.
비슷한 경험을 룬테라에서도 했다. 나는 내가 TCG에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프라인 TCG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그것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게임에서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전 TCG 프로게이머’
내 소개말에 그런 문구가 적혀 있을 때마다 나는 늘 조금 부끄러웠다. 우연히 들어간 종목에서, 단지 약간의 성과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종목에 더 오래 진심이었던 사람들보다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카드도 그만두었다.
그 뒤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는 또 무엇을 그만두게 될까.
내 인생은 결국, 재능 있는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들어가 감투를 쓰는 일에만 익숙한 삶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어가던 어느 즈음, 나는 한 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무언가를 하나씩 그만둘수록, 나는 점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 당장 하고 있는 일 말고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정말,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뽐내고 싶었던 것뿐이었을까?”
어쩌면 정답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남들보다 앞서고 싶었던 사람이다. 인정받고 싶었고, 잘났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내가 가진 이름표를 사랑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면, 나는 글을 그만둔 뒤에도 이렇게 허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드를 내려놓은 뒤에도 이렇게 오래 미련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빛나고 싶었던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로 좋아하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너무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과 ‘나를 빛나게 해주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빛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나는 그것을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모든 것이 끝난 순간처럼 받아들였다. 재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제대로 노력해서 자기 자리를 쌓아올린 사람들을 보며 시기했고, 비교 속에서 초라해진 나 자신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평범함 그 자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름표가 사라진 뒤에도, 혹은 더 이상 빛나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는 척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 그러지 못하면 그 세계 안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을 것 같은 불안. 어쩌면 나는 그것에 더 가까이 눌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재밌는 것은, 사실 아무도 나를 그렇게까지 압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냥 나 개인으로 살아가면 되는 일인데도,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것 같고, 어떤 툴과 성과와 이름표를 갖추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게 내가 나빠서인지,
아니면 정말 세상이 사람을 그렇게 몰아가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조금 더 재밌게 살고 싶다.
그런데 그 단순한 일이,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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