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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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승부처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한 일본의 숨겨진 희생
우리는 맥아더 장군과 인천상륙작전을 기억하지만, 상륙함들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바닷속 기뢰를 제거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6.25 전쟁 당시, 비밀리에 투입되어 항로를 열었던 일본 특별소해부대의 기록을 공유합니다.
1950년 가을, 북한군이 부설한 소련제 기뢰로 연합군 함대는 마비 상태였습니다. 미군은 한반도 지형에 밝은 일본 해상보안청(현 해상자위대 전신)에 도움을 요청했고, 53척의 소해정과 1,200여 명의 대원이 인천, 원산, 진남포, 군산, 흥남 등 한반도 전역의 사선에 투입되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 중 6위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작전 중 기뢰 폭발과 사고로 아까운 목숨들이 쓰러져갔습니다.
나카타니 사카타로(中谷 坂太郎): 1950년 10월 17일, 원산항 작전 중 MS-14호가 기뢰에 접촉해 폭발하며 전사했습니다. 당시 21세였던 그는 동료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이시카와 고타로(石川 幸太郎): 1950년 12월, 인천항 소해 작전 중 불의의 사고로 실종 및 사망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70여 명의 일본 대원들이 폭발과 부상으로 피를 흘렸습니다.
뿐만아니라
- 일본인노무자들, 대전 전투에서 소총 들고 싸우다 다수사망
- 일본인 기관사들 경부선 등에서 열차로 미군수송
- 큐슈 등지의 야전병원에서 일본인 종군 간호사의 치료활동
- 일본인들의 혈액이 부상당한 미군/한국 군인들에게 수혈등
당시 일본은 미군 군정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식 참전 국가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한국전쟁에서 피 흘려 싸웠고, 많은 물적・인적 지원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6.25전쟁 덕분에 경제가 성장하고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고 폄훼하지만 실제로 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 카나가와현 요코스카시 구리하마(久里浜)에는 이들을 기리는 '조선반도 소해 순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요청에 응하여 한반도 근해의 기뢰 제거 작전에 참가했다가 귀중한 목숨을 바친 순직자들의 넋을 기린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다."
이 비석은 당시 비밀에 부쳐졌던 이들의 활동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도 매년 위령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참전은 헌법적 논란을 피해 '특별소해대'라는 이름으로 은밀히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목숨 걸고 닦아놓은 바닷길이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도, 연합군의 보급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결국 일본은 6.25전쟁의 "참전국" 이라는 겁니다.
역사는 특정 국가의 자존심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일어난 사실(Fact) 그 자체로 기록되어야 합니다.
6.25 전쟁에 참여하고 평화를 위해 이름 없이 사라져간 모든 이들의 희생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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