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도련님은 이거 쓰자.”
솔음은 요원이 건네는 초랭이탈을 한 번 바라봐. 화주의 강력한 주술이 걸려 있는 탈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전 신분을 숨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우리 도련님은 눈에 띄니까. 양해 구할게.”
나랑 청동이는 외부에 드러나면 곤란한 입장이라. 하하. 가벼운 웃음과 같이 담백하게 말을 잇는 요원을 가만 바라보던 솔음은 자신과 같은 의복을 갖춰 입은 둘의 매무새를 한 번 확인해. 이후 시장의 면경에 비 자기 얼굴을 확인하지.
‘딱히 눈에 띌 건 없지 않나.’
고작 이 정도의 평가를 내리는 걸 보면 솔음은 자신의 용모가 얼마나 빼어난지 모르는 것 같아. 일단은 요원의 제안을 수용하고 받은 탈을 착용하지.
하관만 드러나 있는 상태임에도 역시나 눈에 띄는 외양을 가진 솔음을 가만 바라보던 요원은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이 정도가 최선임을 알고 적당히 타협했어.
“요원님.”
“어, 동이 왔어?”
마방에 말을 묶어 두고 온 청동이 초랭이탈를 쓴 솔음을 확인하고 짦은 눈인사를 해 줘. 주막의 평상 앞에 무릎을 꿇어앉고 푸른 소매를 가지런히 정리하지.
“식사는 시키셨습니까?”
“아직. 청동이는 뭐 먹을래?”
“저는 뭐든 괜찮습니다.”
요원은 눈앞에 마주 앉아 있는 솔음에게 씩 웃어 보이며 크고 작은 흉이 남아 있는 커다란 손에서 이어진 기다란 검지의 끝으로 평상을 톡톡 두드려.
“도련님이 좋아하는 식사가 있다면 그걸로 할까?”
“저는…… 갈비를 좋아합니다. 탕이든 찜이든.”
순간 요원과 재관의 시선이 딱 맞아. 갈비는 도성의 큰 객주나 양반집 손님이 오가는 부잣집 잔치에서나 볼 수 있는 식사인데 말이지. 새삼스럽게 솔음의 출신을 다시 상기하게 됐어. 물정 모르는 솔음이 귀엽게 느껴진 요원은 헛기침 한 번으로 푸슬푸슬 나오는 웃음을 눌러.
솔음은 지금껏 도성 바깥으로 나갈 일도 없었고 또래의 누군가와 어울려 저잣거리를 나다닐 일도 없었던 도련님이니까. 좋아하는 식사가 양반들이나 먹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는 걸 모를 만도 하지.
“아이고, 아쉽네. 여기서는 먹기 어려운 식사라서.”
“아, 그렇습니까?”
“아쉬운 대로 고깃국은 어때? 무김치랑 먹으면 끝내주는데.”
“저는 좋습니다. 청동 요원님은…….”
“저도 괜찮습니다.”
“자, 그럼 고깃국으로 결정!”
요원은 주모에게 고깃국 세 그릇을 주문하고 무김치를 가득 담아 달라는 말까지 마쳤어. 셋은 워낙 눈에 띄는 외양이라 그런지 주모는 외모에 대한 극찬과 함께 가볍게 질문을 던졌는데. 요원은 그것을 아주 능숙하게 대응하며 대화를 끝냈지.
“아무튼, 도련님.”
“예.”
“궁금한 건 없어? 동행하는 사이인데 말이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는데.”
솔음은 요원을 가만히 바라봐. 깊게 패인 양반탈의 눈매 안쪽에 자리한 푸른 시선. 항상 웃고 있는 입매. 그 아래의 가로로 길게 자리한 큰 흉터.
“…… 괜찮으시다면.”
“괜찮으시다면?”
“통성명을 하고 싶습니다.”
“…….”
“청동과 요원이 두 분의 성함은 아닐 것 아닙니까?”
요원과 청동은 대답이 없었어. 솔음은 둘의 반응을 보고 질문을 잘못 고른 것인지 싶었지만, 물러설 생각은 들지 않았어. 요원은 흔들림 없는 솔음의 눈을 마주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푸른빛을 품고 있는 눈매를 얇게 접어 웃어 보여. 탈을 쓴 덕에 솔음이 눈매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담백하고 차분한 어투에서 요원의 상태가 드러났지.
“미안, 도련님. 나는 알려 줄 이름이 없어서.”
“…… 예?”
“영험한 분에게 큰 은혜를 입은 대가라고 할까.”
요원은 목 위의 커다란 흉터를 꺼슬한 손끝 지문 면으로 만지며 대답해.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곤란한 기색이 묻어났어.
“…… 이해했습니다.”
퇴마사들 사이에서는 영험한 존재들에게 어떠한 힘을 빌리기 위해 제물을 공양하는 것이 흔한 일이야. 솔음은 이름을 공양했다는 기록을 확인한 바는 없었지만 워낙 그 종류가 다양하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대체 어떤 은혜를 입었기에 인간의 명(命)과 다름이 없는 이름을 바치게 된 건지.’
하지만 파고들 게 아니라고 판단한 솔음은 입매를 달싹이며 분위기를 살피지. 그때 세 사람의 앞으로 뜨끈한 고깃국이 하나씩 놓여. 맛있게 먹으라는 주모의 살가운 말씨 같이 굳어 있던 분위기가 풀려.
“최 요원.”
솔음은 상에 콕 박아 두고 있던 시선을 올려 요원을 바라봐. 요원은 씩 웃는 입매로 다시 한번 운을 떼지. 아주 시원하고 듣기 좋은 음성이었어.
“감사하게도 성씨는 남겨 주셨거든.”
“…….”
“최 요원님, 또는 요원님이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
솔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이고 속으로 곱씹었어. 최 요원, 최 요원님. 울림이 좋다는 생각을 해.
“그리고 청동이는…….”
요원은 청동을 힐긋 바라보더니 그저 웃을 뿐이야. 어떻게 할래? 그렇게 묻는 것 같았지.
“…… 재관입니다.”
“아.”
“불러 주실 땐 이전 호칭으로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익숙한 이름. 솔음은 곧장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만 되짚어서 좋은 추억은 아니기에 가볍게 털어냈어. 그 아이는 이곳에 있을 수 없으니까.
“저는 김솔음이라고 합니다.”
솔음의 짧은 소개 후에 잠시의 침묵이 돌았어. 솔음이 분위기를 살피는 기색을 보일 때쯤 운을 뗀 건 요원이었지.
“솔음이. 어감도 좋다. 편하게 불러도 될까?”
“아, 예. 괜찮습니다.”
요원은 솔음의 대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어. 이후 눈앞에 있는 무김치를 솔음의 앞접시에 덜어주며 운을 뗐지.
“그럼, 솔음아. 이번에는 내가 질문해 볼게.”
침착하고 담백한 목소리. 솔음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요원이 은근한 어조로 덧붙였지.
“요즈음 괴이의 발생이 심상치 않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민생이 어지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는 말이지. 괴이는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먹고 그 덩치를 키우니까.”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민생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솔음의 올곧고 단호한 목소리.
민생에 등을 돌린 폭군의 무분별한 정치에 혼란한 백성들의 어두운 감정을 먹은 괴이가 힘을 키운 덕에, 곳곳에서 괴이로 인한 재난이 수시로 발발하고 있는데. 퇴마사는 해가 지날수록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게 현 상황이야. 그런데 그 몇 안 되는 퇴마사조차 궁과 수도를 지키는 결계 유지에 사용되고 있으니 백성들은 재난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마음에 더 큰 어둠을 품게 되고. 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
과거 생기가 가득했던 그 시절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린 솔음의 눈빛에 짙은 그림자가 내렸어.
“…… 현재로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백성들을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찰나 솔음의 눈이 빛났어. 까만 홍채의 얄상한 눈매 아래 생기가 도니 날카롭게만 보이던 특유의 분위기가 일순간 부드럽게 풀리는 듯했지.
“무엇입니까?”
“화주를 기억해?”
“그 영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솔음의 표정을 들여다보던 요원이 피식 웃으며 솔음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 영물이 힘을 찾은 후 그 터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생각해 봐.”
“…….”
솔음은 지나왔던 기루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봐.
삿된 주술을 파훼하기 위해 큰 힘을 소진하고 있던 영물이 자유를 찾은 후, 기루의 거리에는 서서히 생기가 스며들었었지. 삿된 기운으로 무겁게 드러우던 곳곳의 음울한 그림자는 흔적 없이 거두어졌고, 괴이와 어둠으로 눌려 있던 모든 것이 눈앞에서 정화된 듯한 기운을 발했었어. 마치 새로 태어난 듯 생기 있고 평화로 빛으로 가득 차올랐던 거리.
골똘하게 생각게 잠겨 있던 솔음의 까만 두 눈에 찰나 붉은 기운이 스몄다가 사라지며 생기가 빛나. 솔음은 지금껏 혼자 고민해 왔던 부분에 대해 어떠한 해답을 얻은 듯했어.
“영물을 지켜야 하는군요.”
“우리 솔음이가 똑똑하네."
요원은 기특한 솔음이의 까만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주더니 솔음의 앞에 놓인 잔에 시원한 물을 채워 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동은 특유의 단정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운을 떼.
“한 터에서 오랜 시간 인간과 연을 쌓고 힘을 키운 영물들은 그 터에서 살아가는 모든 연을 아낍니다.”
이후 요원은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리더니 경쾌한 어조로 말을 덧붙여.
“고로, 영물을 보존하는 게 현재로서는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인간의 부정한 감정을 먹고 자라는 괴이의 발발 또한 자연스럽게 저지할 수 있을 테고.”
“그리고 이건 이 마을의 유명한 설화인데.”
“설화요?”
“늑대 소년 이야기, 혹시 들어봤어?”
옛날옛날 깊은 산중에 낡고 붉은 베옷을 걸친 작은 소년이 살고 있었어.
해지고 닳아 가장자리가 헤어진 베옷은 바람만 스쳐도 가볍게 흔들렸고, 빛바랜 붉은 빛은 오래된 피처럼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지. 어린 소년의 온몸에는 색 옅은 짐승의 털이 덥수룩하게 뒤덮여 있었는데. 덕분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해.
부모도 혈연도 없는 소년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할 때마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 근처를 서성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두려움과 혐오감을 앞세워 그 소년에게 돌을 던지고 내쫓기 일쑤였대. 그런데 마을과 떨어진 산속 깊은 곳에 홀로 살아가던 한 늙은 나무꾼만은 달랐다고 해.
그는 아이를 내치지 않았고, 먹을 것을 내어주며 긴 시간 가족처럼 소년을 돌봐 주었대. 나무꾼의 곁에서만은 혐오의 대상 아닌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었겠지. 소년은 그 시간을 정말 좋아했을 거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달이 유난히 붉게 뜨던 어느 계절의 끝자락이었어. 마을에 커다란 재난과도 같은 괴이의 무리가 들이닥쳤지. 그것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그 모습은 온전하지 못했다고 해.
어떤 것은 사지가 제 길을 잃은 듯 비틀린 채 기어오듯 다가왔고, 어떤 것은 얼굴이 무너져 내려 눈과 입의 자리조차 분간할 수 없었지. 또 어떤 것은 사람처럼 서서 걸었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이 조금씩 흘러내려 발자국마다 검은 자국을 남겼다는데. 그렇게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오염된 존재들이 이 작은 마을에 밀려들었고, 골목과 집 사이를 가득 메우며 사람들의 숨통을 조여 왔대.
사람들은 제각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어. 아이의 울음과 어른의 고함이 뒤엉켜, 말인지 짐승의 울부짖음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지. 어둠 속에서는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괴이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등불은 몇 번이나 꺼졌다가 다시 켜지기를 반복했고, 그 사이사이 번뜩이는 불빛 사이로 살갗이 무너지며 형체가 뒤틀린 오염된 괴이들이 벽과 바닥을 기어다녔어.
누군가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하늘에 빌었으며 누군가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벌린 채 떨고 있었던 그때. 은빛으로 빛나는 색 옅은 털을 두른 거대한 몸집의 늑대가 나타났다고 해. 늑대의 선연한 황금빛 눈동자는 붉은 달빛보다 선명하여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듯했대.
오염된 괴이들이 몰려들어 늑대를 에워쌌으나 늑대는 물러서지 않았어. 늑대가 입을 크게 벌리자, 칼날처럼 번뜩이는 이빨이 드러났고. 다음 순간 흉악한 괴이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렸지. 지성이 없는 괴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늑대의 영험함을 인지하고 하나둘 달아나려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늑대는 괴이를 차례로 물어 삼켰어.
늑대의 이빨 사이로 검고 탁한 오물이 뚝뚝 흘러내려 땅을 적셨지. 핏물이라 하기에도, 흙탕이라 하기에도 기이한 그것은 바닥에 닿자마자 스며들 듯 사라졌고, 남은 것은 오직 눅진하고 탁한 냄새뿐이었어.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고 고요가 찾아올 때, 사람들은 쉽사리 문을 열지 못했지만 그중 몇몇이 떨리는 손으로 빗장을 풀고 바깥을 내다 보았다고 해. 하지만 엉망이 된 마을의 중심에 서 있던 것은 분명 커다란 짐승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더라.
분명 거대한 늑대가 괴이들을 모조리 삼켜 없애는 것을 선명하게 보았는데. 달빛 아래 남아 있던 것은 커다란 짐승의 그림자가 아닌 색 옅고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의 형상이었다고 해.
그 형상은 웅크린 고개를 들어 마을 쪽을 한 번 바라보다는데. 그 눈빛에는 위협도, 온정도 없이 그저 고요만이 담겨 있었다고 하지. 그러고는 수풀이 우거진 산의 안개 속으로 몸을 돌려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취를 감추었대.
그날 이후로, 이 마을에는 어떠한 괴이들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
“자, 솔음아.”
“예.”
“우리는 지금부터 이 소년을 만나러 갈 거야.”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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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솔 카페 내부가 너무 화사하고 예쁜 최솔로 가득해서 최솔 구경하는 내내 너무 즐거웠어요! 이벤트 카페 사장님과 주최진 여러분들 그리고 최솔을 향한 애정으로 갓 최솔 작업해 주신 협력진 여러분들! 많은 분들의 애정이 들어간 최솔 카페에 활기를 채워 주셨던 방문객분들과 전국의 최솔러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의 최솔 덕분에 이만큼 최솔 카페가 즐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들 몸에 좋고 마음에도 좋은 최솔 합쉬다~ 최솔 일동 해피 화이트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