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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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mh7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석사·박사. 前 서울중앙지방경찰청 차장검사. 주남대학교 로스쿨 전임교수. 스카이캐슬 독서토론회 옴파로스 사회자. 아름다운 승혜 씨의 남편이자 하버드생 세리 아빠. 피라미드의 정상을 항햐여

◢╲ شامل ہوئے Aralık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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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차민혁@chamh7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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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ZZA
PIZZA@PIZZA17188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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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차민혁@chamh74·
@ccccbbbmm 헐 완전 자세하잖아 넘 친절해🥹 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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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차민혁@chamh74·
엄마가 옥을 찾아서(?)를 보고 장릉혁에 꽂혔는데 작품 ㅁ ㅓ 추천해주먼 될까염... 엄마 인생 첫중드엿는데 스토리는 그냥 그랬지만 남주가 너무 잘생겨서 다 봤다고 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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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ری ٹویٹ کیا
안경주시오
안경주시오@glasses__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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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ری ٹویٹ کیا
🔨 망치
🔨 망치@2023_2061287365·
어바등의 이빨강도 엔가팀장님 신해량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해량이의 생일을 기념하여 #RT 추첨 한분께 #뾱해량 한체를 선물로 드립니다🎁 바등 완소 인증 필수✅ 당발: 해량이 생일(28일) 당일 오후 모두 해량이의 생일을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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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
루키@o3o_rookie·
아니 허남준 임지연 둘이 잘하는거 하네ㅎㅎ 하다가 “재밌는 조합이네요” 하면서 등장하는 장승조 보고 심장이 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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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ری ٹویٹ کیا
🚶🏻‍♀️... 🏠
어디에다신고하면이일이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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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별
❄️얼음별@byeol_ice·
박성훈 진짜 잘노네 원조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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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겨울@w1nterwest·
님들 발레하는 비지터 본 적 있음? 급해서 일단 이거부터 잘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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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૮・ﻌ・ა、、ෆ
아 ㅆㅂ.... 전과자 하기 전에는 선배가수로서 어떻게 멋있게 내려올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대.. 전과자가 터져서 내 마음대로 내려오겠다는 생각은 안하게 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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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i
yami@koal_lala_re·
인용으로 실례합니다. 80년생, 어릴적부터 만화의 독자였고 현재 웹툰 작가입니다. 며칠전 블루스카이에 썼던 글과 비슷한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다소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양해부탁합니다. 한국은 자국 만화시장이 있던 나라로, 초기에는 주로 대본소를 통한 대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군부독재 당시 심한 사전, 사후 검열이 있었죠. (폭력성이나 선정성만이 아니라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사회의 어두운 면, 예를 들면 주인공의 집이 가난하게 묘사된다는 점 조차도 수정의 대상이었습니다. ) 또한 1972년 정병섭 군 사망사건으로 만화=사회악이란 프레임화되어 만화책 보는것이 금지되고 만화가, 만화계종사자들을 고발하기도 했죠. 80년대까지도 5월 5일이면 만화를 모아 태우는 행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82년 '보물섬'이란 월간만화잡지가 창간됩니다. 어떻게? 바로 발간주체가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씨가 이사로 있던 육영재단이었습니다. (박근혜씨 개인은 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후 독자층을 온가족으로 잡은 잡지와 순정만화잡지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88년부터 타겟층을 더욱 세분화한 잡지들이 쏟아졌죠. 주간 소년만화잡지 아이큐점프를 시작으로 90년대 말까지 수십종의 만화잡지가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큐점프에 연재된 '드래곤볼'이 단행본으로 나오며 다른 잡지들도 단행본이 나오게 됩니다. (보물섬이 나오던 시기에도 잡지연재분을 묶은 단행본이 나오기는 했으나 아주 인기작만이 가능한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가 대표적입니다.) 이 시기에 일본만화의 해적판 단행본도 급증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잡지가 수십종이 나올만큼 만화독자층이 늘었다. 2)만화 독자층이 단행본 형태와 가격에 익숙해졌다. 3)BUT 잡지에 연재된 만화가 아니면, 사실상 단행본으로 나올 수 없다. 3)이 다른 나라에 별로 없는 특이한 점인데요. 바로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 때문입니다. 한국은 (1910~1945), 무려 30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했습니다. 때문에 1945년 독립 이후에도 일본 문화는 사람들에게 반발이 심했고 금기시 되었죠.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이란 총 4단계에 걸쳐, 금기시되던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는 내용인데요. 1차 개방이 98년입니다. 그러니까 1998년 전까지 일본 만화는 잡지 연재를 거친다는 꼼수를 써야만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었던겁니다. 하지만 잡지의 수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일본 만화 단행본을 불법, 해적판으로 찍는 곳들이 생긴겁니다. 그러나 98년 이후 만화잡지를 만드는 대형 출판사들이 그간 해적판으로 나온 작품들까지 죄다 정식 라이센스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애초에 품질이 조악했던 해적판들은 밀려났고, 틈새수요를 노린 극소수의 해적판도 2000대 초반에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에 대한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은 십여년간 해적판이 나도는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긍정적인 시각은 그동안 한국 만화가 일본 만화에 대응할 정도로 체급을 키워갈수있게 보호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97년, 한국의 원로 만화가 이현세 작가님의 작품 '천국의 신화'가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2003년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언론은 '역시 만화는 불량한 것' 이라는 마녀사냥을 반복했습니다. 군부독재시절의 검열을 겪은 작가분들은 '또냐' 라는 심정이 되었고... 이때 펜을 꺾은 작가분도 계십니다.) 만화책은 서점만이 아니라 문방구에서도 유통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 문방구에서는 만화책을 싹 치웠습니다. 그리고 1998년 IMF가 찬물을 끼얹습니다. IMF로 경제가 어려워져서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는것은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대여점입니다. 이전에도 대여점(7~80년대의 대본소와 달리 일반 단행본을 대여)은 있었지만, IMF로 실업자가 늘어나자 정부에서 대여점을 장려한것입니다. 소규모로 시작할수 있는 자영업이라는거죠. 사람들이 대여점에서 빌려보고 단행본을 사지 않으니, 작가들의 수입은 쪼그라들고 출판사도 골치였습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죠. 심지어 대여점은 만화를 사다가 대여가 잘 안되는 작품을 반품해버렸습니다. 이러니 작가들은 대여가 잘 되는 만화를 강요받기도 했고요. 출판사는 단행본이 대여점에 팔리는 숫자를 상정하여 찍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당시 고등학생이고 만화가를 꿈꾸고 있었는데,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한국에서는 글렀다, 시장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만화독자와 지망생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겁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더 큰 타격이 옵니다. 스캔본의 출현입니다. ADSL이 대중화되면서 집집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능해졌죠. 대여점에서 책을 빌린 자들이, 다 스캔해다가 올려놨습니다. 이제는 대여점조차도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한국 출판만화시장은 정말... 죽지는 않는, 링겔 꽂아서 겨우 살아만 있는 상태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완전 폐허가 된 판에 웹툰이 등장합니다. 웹툰의 시작은 현재와 완전히 모습이 다릅니다! 2001년 개인 홈페이지에서 '컷이 없는 스크롤 형태의' 일기같은 짧은 만화가 연재됩니다. '마린블루스' 그리고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라는 작품들입니다. 이들은 큰 인기를 얻어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포털사이트 DAUM에서 강풀 작가님의 '순정만화'가 연재되며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웹툰'이란 시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즈음의 웹툰은 출판만화를 연두에 두지 않고 웹툰을 그리는 작가, 출판만화를 준비하다가 웹툰으로 방향을 돌린 작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건 출판만화에서 튕겨진 작가들로 구성되었다고 보면 될겁니다. 이 즈음의 웹툰은 대부분 작품을 작가 1인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웹툰의 절반은 그럴겁니다. 외국에 수출되는 웹툰에 스튜디오 작품이 많은것 뿐입니다.) 그리고 NAVER도 후발주자로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하죠. 이때의 웹툰은 작가에게는 고료를 지급하지만, 소비자에게는 무료였습니다. 일종의 신문만화같은 개념이었던거죠.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빨리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출판만화가 빈사상태이지않습니까? 그러니까 거기로 갈 인재들이 웹툰으로 빨려들어옵니다. 그리고 극화를 연재해요. 컬러로!주간으로! 퀄높은 극화를. 적지만, 그래도 고료 받고 작품 발표할데가 사실상 웹툰밖에 없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웹툰은 분량도 퀄도 점점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몸이 버틸리가 없죠. '웹툰은 일상툰이나 해야지, 극화로는 돈 못벌고 몸만 망가진다' 는 인식이 생겼죠. 그때 떠난 작가분들이 또 많고요... 그러다 DAUM이 '유료화' 를 시작합니다. 첫 유료화는 아주 조심스러웠고, 수익 배분도 작가에게 대단히 유리했습니다. 작가와 연재처는 어느정도 분량을, 어디부터 유료화할 것인지 긴밀하게 상의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화만 유료' 인 경우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며 '완결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료화'가 생겼는데 NAVER도 이걸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작가가 돈독이 올랐다'는 댓글로 대표할수 있겠죠. 하지만 웹툰의 연재주기와 분량, 퀄리티등을 보면 올것이 당연히 왔을 뿐이라고 봐야할겁니다. 일단 연재처 측에선 고료 상승부담을 유료분으로 덜 수 있었습니다. 작가도 수입이 늘고요. 또한 작품이 무료, 공짜라는 인식, 웹툰의 잘못 끼워진 단추이자 성장동력이었던 그것을 바로잡을수 있다는 팁도 따라왔죠. 완결후 유료화가 자리잡을 즈음 또다른 유료화가 등장합니다. KaKaopage카카오페이지의 '미리보기' 입니다. 소비자가 무료웹툰 이번주 연재분을 보고서, '돈을 내면' 다음 주 연재분을 '미리' 볼 수 있게 된거죠. 물론 그 미리 본 분량은 다음주면 '무료'가 됩니다. 하지만 미리,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결제하게 되는 시스템. (모 님께서는 이것을 당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페이스북 소셜 게임(예: 팜빌)에서 힌트를 얻었을 거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걸로 한국웹툰의 유료시스템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봐도 됩니다. 연재할때 미리보기, 연재끝나면 전체유료화. 약간의 변형은 있어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DAUM과 NAVER라는 양대 포털 (+잠시 파란과 야후)이 지배하던 웹툰계에 웹툰을 서비스하는 웹툰전문사이트들이 생깁니다. 레진코믹스, 봄툰, 미스터블루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이트들은 무료분은 거의 없는 철저한 유료정책입니다. 이어서 불법사이트가 탄생합니다. 유료웹툰, 성인용 웹툰을 긁어모아서 한 사이트에 모아놓고 무료로 제공하죠. 이들은 사이트에 띄운 사기, 도박등의 배너로 수입을 얻는다고 합니다. 웹툰을 미끼로 쓰는 것입니다. (현재는 DAUM을 전신으로 하는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와 투믹스 등 다른 사이트들도 이런 불법사이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추정 피해액'을 산정했지만, 실제로 불법 사이트가 닫힌 기간동안 트래픽이 상승하는 데이터를 얻은것이 동력이 된 모양입니다.) 이후 코비드 19등으로 디지털 컨텐츠 사용이 늘어났고, 웹툰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됩니다. 스튜디오 제작 웹툰이 늘어났죠. 원 글에서 말씀하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수준의 분업제' 로 제작되는 웹툰입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현재진행입니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이 스튜디오 제작 웹툰은 한국 웹툰의 일부일 뿐입니다. 해외에 연재되는 작품에 스튜디오 제작이 많은 이유는 초장기 연재가 가능하고 (수익을 많이 낼 수 있음) 퀄리티가 안정적이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저 역시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고, 극화라도 1~2명 정도의 어시스턴트와 작업하는 작가분이 많습니다. 사실, 한국 웹툰의 다양성은 이런 개인 작가분들이 지키고 있다고 봐도 될겁니다. (참고로 선우 훈 작가님@sunwoo_hoon 은 '무료일 때 작품이 더 다양했다. 그때는 뭐가 잘 팔릴지 몰랐으니까' 라고 말씀하시기도) 한국 입장에서는 웹툰이 성장하여 산업화되면서 처음으로 불법 해적판의 피해국 위치가 되었는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꽤 특이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원글의 의 답변입니다. 저 개인은 전부터 봤기 때문입니다. 80년대부터 많은 잡지와 단행본과 애니를 보아왔거든요. 젊은 독자들은 '만화를 웹툰으로 처음 접한 세대'도 있지요. 그런 독자들도 일본의 만화를 보는 이유라면,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기 때문'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YouTube 와 넷플릭스등의 각종 OTT서비스 덕분에 애니메이션은 쉽게 접할수 있습니다. 그 팬층이 나아가 단행본도 구입하고 팬문화를 만들고 있는거라고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al9999@pal9999

日本の漫画(海賊版含む)が各国の漫画産業に与えた影響、韓国編。 ここまでの話では現地の漫画産業が壊滅して日本漫画がその市場を独占する、みたいな話ばかりだったので、そうならなかった国の話をしてみたいと思う。つまりお隣の韓国さんだ。 韓国漫画の特徴としては日本漫画の影響が強く、ジャンルも多様で、検閲制度が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成長したってのが特徴。 さらに日本の漫画(海賊版)の流入があっても並列的に存続できるほどの作家層と作画能力の高さも併せもっていた。 しかし1997年アジア通貨危機で多くの漫画雑誌が廃刊。出版社の漫画部門が廃止縮小され、ベテラン作家は引退、若手は他業種への転職を余儀なくされた。 他の国ならここで日本漫画の市場独占で終わったのだが、韓国はここからwebtoonという形に移行した。紙を捨てて主戦場をスマホに移行して世界的な成功を収めたってのが最大の特徴であり、違い。 なので韓国の話は如何に崩壊したのか、という話でなく、崩壊からどうやって立ち直ったのか?という話が主軸になる。 韓国漫画の決定的な決断は「紙を捨てる」というコペルニクス転換だった。 これは記録媒体という話でいえば、巻物主体の記録構造から、中綴じ本への移行くらい大きなパラダイム転換だった。(もっとも人によっては巻物形式の復活だという人もいる) 2000年代初頭にこの決断が行われた。これは日本の漫画とは同じ土俵で戦わない、新しい土俵を作る、という試みと言っていい。 webtoonは先にも述べたが、紙の漫画が中綴じ本形式なのとは決定的に違う。スクロール方式で縦に読む。巻物形式なのでページ概念が消失する。ページをめくる中断がなく、そしてフルカラーでアニメーション、音楽、音響を差しはさむことが可能ってのが最大の強み。 これらは紙の媒体とは全く別のメディアといってよく、それが故に大ヒットした。現在、webtoonでは韓国は覇権を取っており、ほぼこの市場を独占している。 ここで重要なのが紙媒体の作家からwebtoonに転向した作家は上手く適応できなかった事。全く別のメディアなので紙の経験をそのまま持ち込むと失敗するって事なんだろう。webtoonで成功した作家はほぼ韓国の新世代の作家達だ。 そして制作方式も完全に従来の漫画家とは違っている。 webtoonはアニメスタジオ並みの分業制が敷かれており、原作ライター、メインイラストレーター、ラインアーティスト、カラリスト、背景アーティスト、アシスタント、アニメーター、音楽家、編集者とチームを組んで行われる。 小規模なスタジオ(5~10人)から大規模なスタジオ(50~100人)まであり、ハッキリ言って、制作には金がかかる。 しかもプラットフォームに3~5割とられ、残りをスタジオと作家達で分配する仕組み。韓国ではwebtoon作家の労働問題が深刻化したこともある。 そしてここから問題が派生するのだが、制作に金がかかる以上、「売れない作品は作れない」という問題が立ちはだかる。 結果として作品がアルゴリズムが選ぶ確実なヒットパターンに収束しており、ジャンルがどうしても狭いという問題がある。 ここは紙の漫画との製作費の違いであり、紙の白黒漫画は低コストで描ける為、実験的な作品がつくりやすい。それが紙の漫画の多様性を守っている。 他にも色々と違いはあるのだが、個人的にはこの二つの形式が共存するのか、どちらか片方に収束するのか、それを興味深く見守っている。 紙でいえば巻物が中綴じ本に収束するのに数百年を要したが、紙の中綴じ本漫画は巻物方式のスマホのwebtoonに収束するのか否か。 それはこれからのお楽しみ、といった所である。 最後にwebtoon発祥の韓国のユーザーに聴きたいのは「なんでまだ日本の漫画をよく読むのか?」という事である。実質的に韓国は紙の漫画を最初に捨てた国なのに、日本の漫画は未だによく読んでいる。韓国のユーザーを見てると、日本の大ヒット漫画はほとんど読んでる。個人的に興味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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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혁 ری ٹویٹ کیا
수철
수철@water__cleaner·
누가 매미를 여름 버러지라고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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