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

5.7K posts

김슬기 banner
김슬기

김슬기

@Poison_Tree

어쩌다보니 미술기자

Tham gia Şubat 2010
948 Đang theo dõi6.6K Người theo dõi
Tweet ghim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런던에서 사실은 1년 내내 여행만 다녔는데요. 1년간 100곳이 넘는 미술관을 '도장 깨기'하고, 나만 알고 싶은 걸작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본 책을 썼습니다. 우연과 행운의 도움으로 거듭해 만난 그림을 그린 화가 중에는 바로크 화가가 많았습니다. 베르메르와 카라바조의 거의 모든 작품을 만나게 되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가 이 여행기에는 숨어 있습니다. 서론을 잠시 풀어보자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는 무려 4점의 베르메르 작품이 걸려 있는데요. 명예의 전당이라는 꼭대기층의 특별한 공간에서 이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습니다. 간판인 <밀크 메이드>의 노란색과 파란색의 아름다운 색채에 매료되더라도, 옆에 무심하게 걸린 이 작고 놀라운 그림을 그냥 지나칠 순 없습니다. <리틀 스트리트>는 이 요절한 천재가 그린 단 두 점뿐인 풍경화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거대한 델프트 풍경과는 달리 사적인 시선을 담은 유일한 그림이죠. 2015년 그림의 실제 장소가 델프트 블라밍스트라트 40-42번지라는게 밝혀지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무작위적인 스냅샷이 아니라, 고모 아리아엔트겐의 집의 사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조형해낸 예술이었던거죠. 문간의 아이들은 조카들일지 모르죠. 그래서 이 그림은 차가운 도시 풍경화가 아닌, 따뜻한 가족의 초상입니다. 일상의 지속성을 시각적으로 보존하려는 화가의 의지가 담긴 이 그림의 가장 재미있는 발견은 엑스레이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오른쪽 집의 출입문이 닫힌 상태에서 열린 상태로 다시 그려졌다는거죠. 덕분에 베르메르가 열어둔 문으로 들어가 우리는 그림 속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게다가 근면 성실한 노동 바느질과 청소를 하는 여인들은 숨은 주인공들입니다. 17세기 신교의 나라다운 소재이죠. 거의 모든 작품에서 실내 정경을 그리고, 창안으로 스며드는 빛을 그렸던 이 화가가 집의 외부를, 창의 모습을 그린 유일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그림이 자신의 모든 그림들로 초대하는 초대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눈 앞에서 본 이 작은 그림은 점묘법과 섬세한 물감의 터치가 눈에 띄고, 무엇보다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작지만, 잊을 수 없는 그림이었죠. 제가 만난 암스테르담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책의 표지로 장식된 사연을 이렇게 줄여봅니다. 올 여름을 달굴 '베르메르 코인' 탑승을 위한 이야기를 종종해보겠습니다. 예스24 buly.kr/FAes9hr 교보문고 buly.kr/4meAHZt 알라딘 buly.kr/6Xnk5jq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6
105
451
34.9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프로젝트 헤일 메리 로키의 '탄생의 비밀' 역대 최고의 '스페이스 버디무비' 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보고 감동이 헤일처럼 밀려와서 곧장 일어나는게 힘들정도 였다. 엔지니어-과학자라는 누가봐도 T-T인 커플의 케미에는 제작진의 '특별한 로키'를 만들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옮겨봄. 재미있는 건 집게발 5개인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처럼 보이지 않도록 대신 아기 올빼미를 참고로 했다고. --- <프로젝트 헤일 메리>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바위 같은 몸체 때문에 '로키'라 불리는, 사랑스럽고 신경질적인 외계인과 함께 스크린을 공유한다. 로키의 불안한 성격은 그의 가장 매력적인 특성 중 하나지만, 원래는 수석 퍼펫티어이자 성우인 제임스 오르티즈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앤디 위어의 원작 소설을 읽은 뒤, 오르티즈는 로키의 행성 에리드에서의 시간이 지구보다 빠르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저는 '세상에, 정말 훌륭한 정보다, 이게 그의 내면의 메트로놈이고, 심장이고, 벌새 같은 에너지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오르티즈는 영상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몇 달간 그 개념을 염두에 두고 촬영했다. 나중에야 오르티즈는 위어가 세트장에서 에리디안의 1초가 사실 지구의 1초보다 2.5초 느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오르티즈가 잘못 읽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저는 '앤디, 그냥 이 친구는 불안한 걸로 하죠, 알겠죠?'라고 했어요." 로키의 불안함은 꽤 매력적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고슬링이 개봉 첫 주말 8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린 <프로젝트 헤일 메리>의 스타 배우일 수 있지만, 로키야말로 이 영화의 신성이다. 영화에서 라일랜드 그레이스(고슬링)는 지구의 태양이 어두워지는 이유를 밝혀내려 우주에 홀로 남겨진 과학 교사로, 또 다른 고독한 여행자인 로키를 만난다. 그는 곧 이 외계인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행성의 별을 파괴하는 미생물로부터 행성을 구하는 것. 소설에서 로키의 피부는 "갈색빛 검은 바위"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정도 크기에 다리가 다섯 개이며, 갑각은 "대략 오각형"이다. 얼굴이 없다. 스크린에서 그는 확실히 귀여우며, 퍼펫과 시각 효과의 조합으로 생명을 얻었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 시퀀스를 볼 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했어요. '이게 퍼펫인지 CG인지 기억이 안 나'라고요"라고 시각효과 프로덕션 슈퍼바이저 폴 램버트가 말했다. "두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 결과였죠." 감독인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는 퍼포머가 조종하는 실물 로키가 반드시 세트장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고슬링이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캐릭터와 즉흥 연기를 하고, 카메라가 실재하는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로키를 디자인할 때, 로드와 밀러는 위어의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되, 몇 가지 창의적인 요소를 추가했다. 그들은 로키의 몸에 새겨진 에리디안 버전의 문신을 부여하고, 각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나는 가문의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반지 같은 것이며, 세 번째는 그가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자에 해당한다. "관객이 이 바위 얼굴에서 사람을 상상하는 데 최대한 도움을 주자고 생각했어요. 뉴햄프셔의 '산의 남자'—무너지기 전의—를 보는 것처럼요"라고 로드가 말했다. "거기서 얼굴을 상상할 수 있었잖아요. 우리는 계속 '이쪽은 심술궂은 쪽, 이쪽은 열린 쪽'이라고 말했어요." 애니메이션 영화 <레고 무비>(2014) 등으로 알려진 감독들은 로드가 "갈겨 쓴 스케치"라 부른 것들을 그려 크리처 이펙트 크리에이티브 슈퍼바이저 닐 스캔런에게 전달했다. 스캔런은 <스타 워즈> 베테랑으로 <꼬마 돼지 베이브>(1995)로 오스카를 수상한 인물이다. 이후 스캔런과 그의 콘셉트 아티스트 팀은 다양한 로키 버전을 테스트했다. 디자이너 스테파노 코르돌리가 어느 날 오후 늦게 그들의 대화를 바탕으로 폴리스티렌으로 로키를 만들었을 때, 스캔런은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것임을 깨달았다. "정말 좋아하는 동물에게 느끼는 것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됐어요"라고 스캔런이 말했다. 하지만 로키 퍼펫이 완성되기도 전에, 로드와 밀러는 로키 퍼펫티어를 고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퍼포머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오디션을 실시해 누가 고슬링의 최고의 연기 파트너가 될지를 찾았다. 그 사람이 바로 오르티즈였다. 그는 오비 어워드 수상자로, 최근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숲속으로>에서 소 밀키 화이트를 디자인한 인물이다. "그는 리딩에서 라이언과 놀라운 케미스트리를 보였고, 라이언을 압도할 만한 자신감이 있었어요"라고 밀러가 말했다. "처음부터 그가 로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오르티즈는 오디션 과정을 위해 작은 로키를 만들었고, 고용된 후 스캔런이 그를 최종 디자인 협업에 초대했다. 오르티즈는 스캔런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생각해요. 당신을 프랭크 오즈처럼 대할 거지만, 우리 할 일은 당신을 위한 요다를 만드는 거예요." 촬영 중 오르티즈에게는 '로켓티어즈'라 부르는 퍼펫티어 팀이 있어 로키의 다리를 도왔다. 오르티즈는 항상 로키의 본체를 담당했다. "기본적으로 가슴에 안고 있는 것과 거의 같아요"라고 오르티즈가 말했다. 그레이스의 우주선 헤일 메리 세트에는 퍼펫티어들이 숨을 수 있도록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스캔런의 팀은 촬영 전반에 걸쳐 사용된 애니매트로닉 로키도 제작했다. 오르티즈는 팀에게 로키가 거미나 게처럼 "으스스하게" 보이는 움직임을 피하라고 지시했다. 로드와 밀러는 로키가 루이즈 부르주아 조각이 살아난 것처럼 너무 "마녀 같아"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오르티즈는 틱톡의 아기 올빼미 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런 새 같은 얼굴 움직임이 그의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가 됐어요"라고 오르티즈가 말했다. 몸짓 언어는 한 가지이고, 로키의 목소리는 또 다른 문제다. 원작에서 그는 그레이스가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음악적 톤으로 소통한다. 밀러는 자신과 로드, 각본가 드루 고다드가 자막이나 한 솔로와 츄바카 같은 소통 방식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레이스가 이미 에리디안 언어 사전을 만들고 있는 노트북을 통해 로키의 지저귀는 소리를 영어로 자동 번역하는 것이 간편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실험했지만, 결국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제임스가 제임스 그 자체인 것이었어요"라고 밀러가 말했다. 한편 오르티즈는 <쇼트 서킷>(1986)의 조니 5와 <오즈로의 귀환>(1985)의 틱톡을 약간 가미했다. 로키가 완전히 디지털로 애니메이션되어야 하는 장면에서도 오르티즈는 연기를 구성하기 위해 현장에 있었다. 예를 들어, 로키가 그레이스의 우주선 대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투명한 공 안에서 굴러다닐 때, 오르티즈는 잔디 깎는 기계를 미는 것처럼 빈 공을 밀며 대사를 전달했다. 로키를 애니메이션할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작업은 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로켓 라쿤을 담당했던 시각효과 회사 프레임스토어의 아르슬란 엘버에게 맡겨졌다. 밀러는 엘버가 "로키의 영혼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매우 빠르게 알아차린 것은, 그의 감정이 실제로 움직임을 통해 전달된다는 거예요"라고 엘버는 얼굴 없는 뮤즈에 대해 말했다. 애니메이터들은 모든 팔다리를 사용하면 정말 행복해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집게 같은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로키가 재즈 핸즈를 하는 중요한 장면에서, 엘버는 밀러와 로드에게 120가지 포즈를 제시해 선택하게 했다. 그럼에도 감독들은 너무 귀엽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의 성격도 마찬가지였는데, 평범한 사랑스러운 조연보다는 조금 더 강인하다. 오르티즈는 로키를 매우 진지하게 연기하려 했다. "그는 농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라고 오르티즈가 말했다. 그것에 더해 그의 성급함이 그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그는 그렇게 똑똑하고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꾸밈이 없는 존재예요."
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80
246
16.7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라파엘로와 르네상스의 신성한 아름다움 이번 주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막하는(6월 29일까지) 야심찬 라파엘로 전시를 뉴욕타임스 제이슨 파라고가 극찬한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카라바조와 베르메르가 사랑받는 시대의 시대착오적인 전시는 "르네상스 인간을 재발견할 기회"라는 추천을 받음. 60여개 기관에서 대여해온 이 전시의 기획에만 8년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메트가 아니라면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전시임은 분명해 보인다. 일부만 번역해 봄. ---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이 예비 신부는 오직 유니콘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법한 여성적 미덕을 온몸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워 현실의 인물 같지 않다. <유니콘을 안은 젊은 여인의 초상>은 로마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냉혹한 현실 세계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숭고함과 우아함으로 가득 찬 전시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번 주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라파엘로: 숭고한 시(Raphael: Sublime Poetry)》는 한때 미국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 — 운송비와 보험료가 폭발적으로 오르기 전, 그리고 더 은유적이지 않은 폭발들이 일어나기 전의 — 중 하나다. 향후 세 달 동안, 관람객들은 회화와 소묘, 태피스트리와 건축에 고대 이후 이르지 못했던 광채를 부여한 진정한 르네상스 인간을 재발견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전시는 아름답다. 그러나 술집에서 말을 걸 만한 종류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라파엘로의 아름다움은 위압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 — 신성을 반영하는 듯, 우리를 초라하게 만드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자, 실리콘밸리의 저속한 유행어를 잠시 빌리자면, 그 자체로 '유니콘'이다. 《라파엘로: 숭고한 시》는 기획에만 8년이 걸렸다. 비용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60여 곳의 대여 기관이 참여했다. 메트는 미국의 어떤 미술관도 이 화가들의 제왕에 관한 대규모 단독 전시를 개최한 적이 없다고 밝히는데, 그 이유는 비단 물류상의 어려움만이 아니다. 1520년, 라파엘로가 성 금요일(Good Friday)에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로마 시민들은 도시 전체가 그를 신격화하는 의식을 거행했고, 그는 판테온에 안장되었다. ("당신이 그리스도가 죽은 날에 돌아가셨다 한들 어찌 놀라겠습니까? 그분은 자연의 신이었고, 당신은 예술의 신이었으니"라는 다소 불경스러운 조사(弔辭)도 남겨졌다.) 이후 수백 년간 그의 이름은 예술적 천재성의 최고 동의어였다. 그러나 고전적 이상이 퇴조하자, 라파엘로 역시 그 지위를 잃었다. 현대의 눈은 카라바조의 관능적인 사실주의나, 베르메르의 세속적 침묵 — 두 사람 모두 1900년 이전에는 일반인에게 낯선 이름이었지만 — 으로 향했다. 반면 르네상스의 이 거인은 어딘가 지나치게 완벽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다. 특히 성모자를 다룬 수많은 섬세한 작품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단골 소재로 퇴색되었다. 바티칸을 방문한 단체 관광객들은 이제 <아테네 학당>이 있는 라파엘로의 방들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시스티나 예배당과 젤라토 가판대로 서둘러 향한다. 현대 관람객에게 — 집중력은 짧아지고, 성경에 대한 지식은 희미해지고, 미각은 스리라차 소스에 길들여진 — 라파엘로를 다시 소개하는 것이 이 전시를 기획한 메트의 오랜 큐레이터 카르멘 C. 밤바흐의 목표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기획한 이탈리아 성기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연작 전시의 마지막 편이다. 레오나르도 블록버스터는 2003년에, 묵직한 미켈란젤로 전시는 2017-18년에 개최되었다. (네 번째 닌자 거북이인 도나텔로는 이들보다 약 사분의 삼 세기 앞서 활동했다.) 밤바흐는 라파엘로를 억지로 현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 판화를 소셜 미디어에 비유하는 몇 가지 어색한 시도를 제외하면. 그녀의 전략은 이 한때의 회화의 신을 다시 인간으로 되살리는 것으로, 소묘 140점을 전시장에 가득 채워 — 회화 33점과 함께 — 우르비노 출신의 한 시골 소년이 두 교황의 오른팔이 되기까지의 연도별, 날짜별 작업 과정을 보여준다. 이 전시가 레오나르도의 기발한 발명품들이나 미켈란젤로의 근육질 성인들만큼 순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로서는 경외감과 동시에 압도감을 느끼며 전시장을 나섰다. (-) 그러나 메트의 이 라파엘로 대전시가 가진 진정한 도전이자 가치는 그 규모에 있지 않다. 그것은 현대적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방식에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와 너무도 동떨어진 것처럼 느끼는 저 달콤한 성모상들과 철학하는 그리스인들은, 16세기 초에는 모든 것을 재창조하려는 시도였다 —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라파엘로의 세대를 일컬어 "근대 유럽의 맏아들들"이라 불렀던 사람들의 이상적 비전이었다. 왜냐하면 르네상스의 핵심, 이 전시의 모든 붓질과 긁힘 속에 표현된 것은, 과거는 결코 그 이전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오직 지침이자 모범으로서, 자신의 시대에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길잡이였을 뿐이다. 바티칸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신을 노려보고, 성모가 트라시메노 호수처럼 고요하게 바라보고, 유니콘을 안은 한 여인이 이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약속할 때 — 당신은 고대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그 자체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그 재탄생, 그 내면의 르네상스만이 교황에게 성 베드로 대성당을 허물 용기를, 그리고 한 젊은이를 그 벽에 마음껏 풀어놓을 용기를 줄 수 있었다.
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14
57
9.2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JPG 파일을 1300억원에 산 남자의 근황 미술 경매사상 가장 큰 스캔들은 비플의 NFT가 6934만달러에 낙찰된 사건이다. 구매자 비그네시 순다레산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근황 인터뷰가 CCN에 보도됐다. 정말 당시 크립토와 NFT 광풍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진짜 재미있는 후일담. 놀랍게도 이 남자는 이런 사고를 치고도 아쉽지 않을만큼 돈이 많고, 덕분에 울라퍼 엘리아슨에게 전화를 받아 그의 작품으로 전시를 열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플렉스이자, 망한 투자 사례라고 생각하지만, 그리 힘들어 보이지는 않는 표정? 내가 가장 놀란 사실은 순다레산이 당시 달러화가 아니라 42,329 이더리움을 지불했다는 것이었다. --- NFT에 6,900만 달러를 썼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디지털 아트를 그 어느 때보다 믿게 되었다 2021년 3월, 새벽 4시가 가까워질 무렵 비그네시 순다레산은 역사상 가장 비싼 예술 작품 중 하나를 샀다. 그는 그날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를 입고, 집에서 혼자 아이맥 앞에 앉아 경쟁 입찰이 조금씩 들어오는 모습을 밤새 지켜보고 있었다. 책상 옆에는 스타벅스 커피 컵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 크리스티 경매 웹사이트가 멈출 경우를 대비해 예비 컴퓨터들도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판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접속한 2,200만 명의 시청자들로 사이트는 버거워했다. 2주 전, 경매는 단 100달러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온라인 입찰이 천천히 움직였지만, 인도의 암호화폐 투자자인 순다레산은 개인적으로 그 금액이 결국 1,000만 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그러다 막판에 갑작스러운 입찰 쇄도가 벌어졌다. 마지막 1시간 동안 33명의 서로 다른 입찰자들로부터 180건이 넘는 제안이 쏟아지면서 가격은 누구의 가장 대담한 예상도 뛰어넘어 치솟았다. 순다레산이 결국 2021년 3월 69,346,250달러를 지불한 작품은 반 고흐나 피카소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라는 제목의 JPEG 이미지였다. 이는 비플(Beepl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비교적 덜 알려진 그래픽 디자이너 마이크 윙켈만이 만든 5,000점의 풍자적이고 종종 디스토피아적인 가상 드로잉 콜라주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319메가바이트 크기의 그 이미지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내는 대체 불가능 토큰(NFT)이었다. “그 이후로 저는 다시는 경매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순다레산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 새로 문을 연 자신의 아트 갤러리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 압박감, 불안감, 그 순간에 휩쓸려 공격적으로 되는 것이 실제로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과거의 실수에 대해서도 솔직한 이 37세 남성은 전형적인 ‘크립토 브로’도 아니고, 전통적인 구세대 부유층 예술 후원자도 아니다. 인도 타밀나두주의 작은 도시 호수르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박물관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예술에 대한 “유일한 접점”은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12세 무렵, 그는 집에서 코딩을 시작했는데, 자기 컴퓨터가 없을 때는 남의 컴퓨터를 빌려 썼다.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순다레산에게 세계 경제를 향한 창이자 수입원이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잠시 방향을 틀어 두바이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부모님은 ‘컴퓨터는 미래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이후 그는 인도로 돌아와 첸나이에서 기술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는 2012년, 자신의 두 거래 계좌 사이에서 돈을 이동시키는 방법을 조사하던 중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접했다. 다음 10년 동안 그는 암호화폐 거래소(Coins-E), 비트코인 ATM 네트워크(BitAccess), 탈중앙화 대출 플랫폼(Lendroid Foundation) 등을 창업하거나 공동 창업했다. 그는 또한 이더리움, 폴카닷, 플로우 블록체인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순다레산이 이 역사적인 구매를 했을 당시, 미술 시장은 지금 돌이켜보면 열병 같은 꿈처럼 느껴지는 투기적 NFT 붐의 초기 단계에 있었다. 암호화폐 전도사들은 오랫동안 NFT를 15세기 인쇄술에 비견될 만큼의 기술적 돌파구로 선전해 왔다. 순다레산은 대금으로 42,329 이더를 지불했는데, 이는 오늘날 환율로는 9,800만 달러가 넘는 가치다. (크립토 정점에서는 대략 3조 달러, 4500억원 정도였을듯) 순다레산은 비플의 콜라주를 “이 세대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이어 그 진정한 가치는 사실 10억 달러라고 덧붙였다. 이후 블로그 글에서 그는 이 판매를 “인터넷 시대에 디지털 소유권, 출처, 그리고 예술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점”이라고 불렀다. “저는 정말 디지털 네이티브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삶이 물리적일 때 더 행복하고, 더 평온하다는 걸 느낍니다.”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NFT 시장의 붕괴는 상승만큼이나 극적이었다. 블룸버그가 듄 애널리틱스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9월 사이 월간 거래량은 97% 감소했다. “제가 NFT를 살 때마다, 저는 그 돈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생각했어요.” 그는 이렇게 덧붙이며, 수천 점에 이르는 개인 컬렉션에서 단 한 점의 NFT도 판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했죠.” 그의 최신 벤처인 Padimai Art & Tech Studio는 그를 가상 세계에서 비교적 현실 세계(IRL)로 이동하게 만들고 있다. 싱가포르의 주요 컨테이너 항구 옆 개조된 창고에 자리한 이 “예술 실험실”은 천장에 매달린 VR 고글을 통해 관람객들이 예술을 보도록 초대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시장 중 하나인 싱가포르에서, 수익을 내지 않는 이 갤러리를 향후 3년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예산도 배정했다. Padimai의 목표는 예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더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실험적 경계를 밀어붙이는” 예술을 의뢰하는 데 끌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변화된 관점을 자신의 갤러리 첫 VR 경험을 만든 인물, 올라퍼 엘리아손 덕분이라고 돌렸다. 유명한 아이슬란드-덴마크 예술가 엘리아손은 ‘Everydays’ 경매 직후 신흥 기술에 대해 배우기 위해 순다레산에게 먼저 연락했다. “저는 올라퍼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통화에 들어가서 그에게 한 제안이 ‘왜 비플을 중심으로 뭔가를 만들지 않으시겠어요?’였죠.” 순다레산은 웃으며 회상했다. 이제 와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JPEG 작품을 전시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제안한 것이 얼마나 대담한 일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수십 차례의 줌 통화를 거치며 우정을 쌓았다. 순다레산은 엘리아손을 메타버스 투어에 데려갔고, 그의 체험 중심 예술 제작 방식의 “학생”이 되었다. “그가 제게 그런 관심을 보여줬고, 그것이 제 삶을 바꿨어요.” 순다레산은 이렇게 말하며, NFT 시장 붕괴 또한 자신이 왜 스펙터클에 비해 본질에는 덜 관심을 가졌는지를 되묻게 만든 “의미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저는 어느 순간 완전히 터져버렸을 거예요.” 엘리아손의 ‘Your View Matter’에서 관람객들은 가상현실 속 일련의 추상적 공간을 탐색한다. 벽과 천장은 컴퓨터나 TV 화면을 촬영할 때 생기는 글리치한 간섭 현상인 모아레 패턴으로 깜빡이며, 관람객이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기반 코드는 단일 에디션 NFT로 존재하며, 이는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이 미술관 컬렉션의 첫 번째 소장품이기도 하다. 순다레산은 지금도 가끔 ‘Everydays’를 본다. 그는 기록적인 그 JPEG를 13층 높이로 띄워두는 가상 감상 공간을 만들었다. VR 헤드셋과 조이스틱을 사용하면 그는 콜라주의 표면을 탐색하며 5,000개의 그림을 더 자세히 살필 수 있다. 마치 고층 건물 외벽 청소용 플랫폼을 타고 외벽을 오르듯이 말이다. 그는 이 경험을 한 번도 공개한 적은 없지만, 친구들이 “그 비플 좀 보자”고 하면 언제든 보여준다. 비플은 올해 싱가포르 방문 중 Padimai를 찾을 계획이다. 그러나 그를 미술사상 가장 높은 가치의 이름들 중 하나로 올려놓은 6,930만 달러짜리 JPEG의 주인은 그 작품을 갤러리에 전시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그것이 방문객들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게 NFT인지, 얼마짜리인지도 몰라요.” 순다레산은 자신의 첫 VR 설치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작품을 경험하러 온 겁니다. 그게 가격이 아니라 작가와 예술 자체를 중심에 놓아주죠.”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10
29
8.5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얼굴 있는 화가, 뱅크시는 재미가 없지 로이터의 단독 보도로 뱅크시의 실체가 밝혀졌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조금 흥분을 가라 앉힌 듯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번역해봄. 개인적으로 '익명성'이 사라진 사회고발 미술은 더이상 센세이셔널할 수 없고, 억소리 나는 시장 가치도 거품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 전 유럽을 누비는 로이터의 집요한 취재 과정이 가장 놀랍다. 뱅크시와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노력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자신이 뱅크시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힌 로이터의 조사는 약 20년 전 뉴욕에서 체포된 당시의 경찰 보고서에 근거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장문의 조사 보도에서 로이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실제 신원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뱅크시는 수십 년간 철저히 지켜온 익명성으로 그의 작품 못지않게 미술계의 이목을 사로잡아 온 인물이다. 이 은둔 예술가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영국 브리스틀과 런던의 그래피티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Thrower)」 등 교묘하게 구성된, 종종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벽화로 유명해졌으며, 이 작품들은 마치 하룻밤 사이에 공공 거리와 건물에 저절로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최근 수십 년간 그의 작품은 열광적인 인파를 불러모았고,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로이터의 조사는 그의 정체를 로빈 거닝엄(Robin Gunningham)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남성으로 지목하고 있다.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신문이 2008년에 이 인물이 뱅크시라고 보도한 바 있다. 로이터가 제시한 증거에는 2000년 뱅크시가 뉴욕에서 광고판에 그림을 그리다 체포된 당시의 경찰 보고서와 법원 서류가 포함되어 있으며, 2022년 우크라이나에 뱅크시의 벽화가 등장했을 때 거닝엄의 인적사항과 일치하는 남성이 해당 국가를 방문 중이었다고 증언한 인물과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뱅크시의 변호사와 에이전트는 뉴욕 타임스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로빈 거닝엄은 누구인가? 2008년 영국 일간지 「메일 온 선데이(The Mail on Sunday)」의 조사 보도에서 거닝엄이 뱅크시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신문은 작업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예술가의 사진 속 인물이 거닝엄이라고 증언한 브리스틀 주민을 인터뷰했으며, 거닝엄과 뱅크시가 동일 인물이라고 말한 전 이웃의 인터뷰도 확보했다. 「메일」지와 공개 기록에 따르면, 거닝엄은 1973년 브리스틀에서 태어나 브리스틀 대성당 학교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럭비와 하키를 하고 학교 연극에 출연했으며 미술을 연습했다. 거닝엄이 학교 학생 잡지에 기고한 삽화와 만화가 2024년 「아이리시 선」에 의해 발굴되었다. 뱅크시 측 관계자는 「메일」지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거닝엄의 아버지는 아들이 뱅크시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새로운 증거는 무엇인가? 로이터 조사의 핵심에는 2000년 당국이 거닝엄을 뉴욕에서 질서 문란 혐의로 체포한 사건과 관련된 경찰 보고서와 법원 서류가 있다. 당시 뱅크시의 매니저였던 스티브 라자리데스(Steve Lazarides)가 쓴 책에 따르면, 그해 뱅크시는 건물 옥상의 광고판에 그림을 그리려다 체포되었다. 라자리데스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사진을 통해 로이터는 해당 건물이 허드슨 스트리트 675번지임을 확인했다. 로이터가 공개한 거닝엄의 체포 관련 경찰 문서에는 그가 해당 주소의 광고판을 훼손했음을 자백하고 자필 진술서에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관련 법원 서류에서 거닝엄은 자신의 주소를 칼튼 암스 호텔(Carlton Arms Hotel)로 기재했는데, 이 호텔은 뱅크시가 자주 드나든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인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라자리데스는 로이터에, 「메일」의 폭로 보도 이후 어느 시점에서 뱅크시가 법적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공개 문서를 인용하며 이 예술가가 "데이비드 존스(David Jones)"라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2022년 10월에서 11월 사이에 데이비드 존스라는 인물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고 증언한 사람과 인터뷰했다. 그 직후 뱅크시는 해당 국가에서 일련의 벽화를 공개했다. 이 데이비드 존스의 신분증에 기재된 생년월일은 로빈 거닝엄의 것과 동일했다. 이 증언자는 또한 존스의 여행 일정이 뱅크시의 알려진 동료이자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창립 멤버인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의 일정과 일치한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델 나자는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목격된 바 있다. 이 보도가 뱅크시의 작품 가격에 미칠 영향은? 20년간 뱅크시의 회화와 판화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런던의 갤러리스트 아코리스 안디파(Acoris Andipa)는 이번 소식이 중장기적으로 뱅크시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디파는 "제 고객들은 작품 자체 때문에 뱅크시의 작품을 구매합니다. 가치도 고려하지만 그것이 주된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들이 그 접근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뱅크시 구매자의 대다수는 그의 정체에 관심이 없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수요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온라인 미술 판매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뱅크시 시장이 주요 수혜자가 되었던 2021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뱅크시는 2차 시장에서의 재판매로부터 거의 수익을 얻지 못한다. 2021년 뱅크시의 연간 경매 매출액은 3배로 늘어나 사상 최고치인 1억 7,130만 달러를 기록하며, 해당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가 8위에 올랐다. 그러나 2025년에는 경매 매출이 1,330만 달러로 급락했고, Artprice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순위도 102위로 떨어졌다. 안디파는 이 하락세가 현대미술 수요의 광범위한 감소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뱅크시 시장의 최근 시험대는 화요일에 시작되었는데, 크리스티가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온라인 전용 경매 「컨템포러리 에디션: 런던」을 개시한 것이다. 이 경매에는 앤디 워홀의 유명한 1960년대 「마릴린」 실크스크린 시리즈를 패러디한 희귀작 「케이트 모스(오리지널 컬러웨이)」를 포함한 뱅크시 판화 9점이 출품되어 있다. 2005년 50장 한정으로 제작된 이 판화의 예상 낙찰가는 9만 3,000달러에서 13만 2,000달러 사이다. Artprice에 따르면 2021년에는 같은 에디션의 다른 판화가 38만 6,576달러에 낙찰된 바 있다.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6
23
5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프리츠커상 수상자, 라디치의 파빌리온 어제 수상자로 발표된 스밀랸 라디치의 파빌리온을 영국 시골에서 만난 적이 있다. 작년 여름 기차티켓을 한 번은 날리고, 한번은 연착으로 국제 미아가 될 뻔하며 런던에서 3시간 거리의 브루톤이라는 시골을 갔다. 세계 톱화랑 하우저&워스 서머셋을 구경하려 보기 드문 폭염을 뚫고 나선 길이었다. 첫 인상은 텍사스에서 봤던 시골 농장 같았다. 광활한 주차장과 팜샵, 레스토랑이 가장 정면에서 손님들을 맞는다. 그리고 안뜰의 왼쪽에는 교육동, 정면에는 1박에 300만원이 넘는 독채 숙소, 오른쪽이 서점과 이어진 펍, 갤러리가 붙어 있더라.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 부부의 회고전 <신화와 기계>가 열리고 있었는데, 안뜰에도 설치 작품이 여러점 설치되어 있어서, 이 공간이 생긴 이래 손에 꼽힐만한 시각적으로 화려한 전시인 것 같았다. 공간 구성과 크기는 LA 다운타운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갤러리 전시를 보고 나오면 눈앞에 영국에서 본 가장 놀라운 개인 정원이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33도로 타죽을 것 같은 무더위에도 화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야생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다채로운 꽃들의 모습에 관람객들은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역시나 방문객의 9할은 시골 여행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 화려한 정원의 끝에 채석장에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보이는 새하얀 색의 원형 건축물이 있었다. 2014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으로 건축된 스밀랸 라디치의 파빌리온을 이 곳으로 옮겨 설치한 것. '라디치 파빌리온은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매우 인기가 있었던 공원이나 대형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소규모 낭만주의 건축물, 이른바 폴리(follies)의 역사의 일부. 일반적으로 폴리는 폐허로 보이거나 세월에 닳아 사라진 듯 보이며, 화려하고 놀랍고 종종 원시적인 성격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들은 구조물의 시간적, 물리적 한계를 자연 환경과 인위적으로 녹여내는 장점이 있다. 라디치 파빌리온은 이러한 원칙을 현대 건축 언어에 적용해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곳은 꽃으로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는 테라스가 되어 있었다. 여하튼 하우저&워스 서머셋 여행은 너무나 힘들고 고단한 여행이었는데, 이번 프리츠커 수상 소식을 듣고 나니 신기하기도 하다. 그때 가지 않았으면 아쉬웠겠다는 생각도 듬.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7
16
1.5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뉴욕타임스의 오스카 예상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역대급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3일 앞두고 뉴욕타임스가 예측한 올해 수상작. 무관의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마침내 한을 풀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음. 장편 애니메이션과 주제가상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주토피아2>를 누를 것으로 예상. 일단 이대로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6관왕, <시너스>가 5관왕이 된다. 저는 <헴넷>의 클로이 자오와 제시 버클리를 응원해봅니다. 🎬 작품상 — One Battle After Another 🎥 감독상 — Paul Thomas Anderson 🧔 남우주연상 — Michael B. Jordan (Sinners) 👩 여우주연상 — Jessie Buckley (Hamnet) 🧔 남우조연상 — Sean Penn (One Battle After Another) 👩 여우조연상 — Amy Madigan (Weapons) ✍️ 각본상 — Sinners 📖 각색상 — One Battle After Another 🎭 캐스팅상 — Sinners 🎵 주제가상 — "Golden" (KPop Demon Hunters) 🎼 음악상 — Sinners 📷 촬영상 — One Battle After Another 🏛️ 미술상 — Frankenstein 👗 의상상 — Frankenstein 💄 분장·헤어상 — Frankenstein ✂️ 편집상 — One Battle After Another 🔊 음향상 — Sinners ✨ 시각효과상 — Avatar: Fire and Ash 🌍 국제장편영화상 — Sentimental Value (노르웨이) 🎬 장편애니메이션 — KPop Demon Hunters
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2
6
1.3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든 것은 가능하지" '감다뒤'라 비판했던 걸 결자해지하는 마음으로 올 상반기 최고의 문제 전시 데이미언 허스트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를 관람해볼 예정. 5월에 트레바리 멤버들과 함께 가보고, 솔직한 평을 저도 써보겠습니다. 올 봄에는 미술관에 관한 4권의 책을 함께 읽어볼 예정인데요.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비앙카 보스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그리고 제 책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를 골라봤습니다. 그레이슨 페리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를 읽는 시간이 가장 기대됨. 민망하지만, 많관부! m.trevari.co.kr/product/4eee80…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1
5
36
6.5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우리들의 실패 X 결정적 순간 = 근접한 세계 두 작가의 협업 소식을 듣고 정말 기대했던 책이 드디어 나왔다. 먼저 읽은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놀랍게도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소설이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이 또한 정해진 미래를 대비하는 인류의 이야기)을 읽고 자란 조숙한 소년은 훗날 탄핵을 촉발시킨 정의로운 사업가가 된다. (좀 뜬금없는 성장캐(?)) 소설은 또 하나의 소설의 형식을 빌려 그의 유년기를 회고하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데, 소년의 유년기에는 서울 여행이 깊은 흔적을 남겼다. 개발이 완성되지 않아 2호선이 강남까지 닿지도 않던 시절, 어머니의 수술을 위해 서울을 오가며 서울역의 경양식집에 가고 먼 친척 아이와 애틋한 편지를 나누던 기억을 떠올린다. 친척 여자 아이에게 소년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서 미래를 읽을 수 있었던 마법사 멀린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보낸다. 니뮤에를 향한 사랑이 자기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알고도, 자신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고하는 낭만적인 마법사의 이야기. 소년은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싶은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을 멀린을 떠올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고쳐 쓰고, 다시 고쳐 쓴다. 그리고 그 소녀의 기적적인 미래를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전해 듣게 된다. 우리의 지난 겨울 탄핵이 어쩌면 우연과 행운이 겹친 기적이었을지도, 혹은 정해진 미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는 흥미로운 결말이다. "하지만 결국 멀린은 니뮤에의 간청을 받아들이지. 그게 그의 운명이니까. 멀린은 그 운명을 힘껏 끌어안아. 니뮤에가 그 마법을 자신에게 사용하리라는 것도, 자신을 참나무에 가두고 떠나버리리라는 것도,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이 세계의 탄생과 번영과 종말을 모두 보리라는 것도. 그렇게 사랑은 끝나고 니뮤에는 떠나." 이번에도 느낀 건 (비록 화자가 소년이라고 해도) 김연수는 연애 편지를 너무 잘 쓰는 소설가라는 것. 나의 청춘을 지배했던 작가들이 이렇게 꾸준히 쓰고 있음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히라노 게이치로와의 대담도 무척 재미있음.
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0
8
1.7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마거릿 애트우드의 메일을 받은 무명 작가 제목이 좀 낚시 같지만, 미국에서는 애트우드, 콜슨 화이트헤드, 조지 손더스같은 탑티어 작가들의 메일을 받는 무명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상되는대로 벼룩의 간을 뜯어 먹는 사기꾼들인데 한국의 보이스 피싱 만큼이나, 이메일을 통한 피싱도 AI 덕분에 진화하고 있는 듯. 뉴욕타임스에서 이 사건을 파헤쳤는데, 사기 선진국 한국에서도 앞으로 늘어날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주소가 공개된 기자에게는 사기가 아니라 제보를 비롯한 온갖 메일들이 날아오고 있지만, 작가님들은 정말 조심하셔야 함. 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피해자의 취약성이라는 게 가슴 아프네. 지난달 한 작가가 국립도서재단에 신고한 사례에서 사기 수법이 드러난다. 그녀는 ‘nationalbookfoundation.com’이라는 웹사이트와 연관된 조너선 스미스에게 마케팅 및 교정 서비스를 위해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다고. 그러나 해당 사이트는 사기 사이트다. 실제 재단(nationalbook.org)은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며 조너선 스미스라는 직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단의 루스 디키 사무총장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이 사기에 속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최근 “존경하는 조너선”이라는 인사말로 시작하는 중단 요청 서한을 보냈다. 이런 사기꾼들은 인공지능으로 다듬어진 첫 편지에서 온라인 서평과 리뷰에서 발췌한 세부 사항을 곁들인 과장된 칭찬으로 표적을 유인한다. 친절한 제안을 믿고 속아 넘어간 순간, 그들은 수수료를 꺼낸다. 하지만 돈을 내고도 감감 무소식인 서비스를 문의하면, 새로 사귄 절친 조엘, 루카스, 엘시, 데이브, 사라, 린다는 ‘고스팅(연락 두절)’의 진수를 보여준다. 출판계는 수세기 동안 수많은 사기극을 겪어왔다. 조작된 회고록, 가짜 공모전, ‘발견된’ 희귀 원고와 훔쳐간 원고까지. 도서 박람회 사기에 걸리면,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무역 박람회에서 작품을 홍보해 주겠다며 엄청난 수수료를 내게 된다. 결국 당신의 책 한 권이 다른 수십 권의 책들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여질 뿐이다. 하지만 감시 단체 라이터 비웨어(Writer Beware)를 설립한 작가 빅토리아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이 끊임없는 AI 생성 사칭 물결은 훨씬 더 광범위한 수준의 사기 행각을 보여준다. 한 사기 수법은 자비 출판 작가들을 대상으로 책을 재출간해 주겠다고 제안한 뒤, 허위 ‘재라이선싱’ 수수료와 ‘도서 반품 보험’으로 작가의 지갑을 털어간다. 또 다른 소위 ‘돼지 도살’ 사기는 파키스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사기꾼들이 온라인에서 자비 출판 서비스 제공자로 위장해 초보 작가들을 노린다. 가장 최근의 문학 사기 수법은 문학 마케터, 긍정적 서평을 작성해준다며 사설 독서 커뮤니티, 온라인 북클럽 등에 글을 올리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스트라우스는 심지어 ‘시녀 이야기’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를 비롯한 여러 유명 작가로부터 사기성 친근한 편지를 받기도 했다. 애트우드는 “아, 정말 끔찍하고 비열한 짓”이라며 “성공에 대한 갈망이나 글쓰기 실력 향상에 대한 희망을 악용하는 행위”라고 NYT에 직접 밝혔다. 사기꾼들은 AI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으로 잘 쓰인 이메일을 생성한다. 런던의 하퍼콜린스 편집자부터 맨해튼의 독서 모임 주최자에 이르기까지 실제 인물을 사칭하는 경우가 많다. 스트라우스는 “사기꾼들은 작가를 달래고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많은 말을 쏟아붓는다”며 “깊이 빠져들수록 거절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그들의 논리”라고 설명했다. 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피해자의 취약성이다. 외로운 마음은 사랑과 교제를 갈망하고, 작가는 판매량과 인정을 갈망한다. 스트라우스는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약점을 악용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출판사, 문학 에이전시, 작가 협회가 경계하라는 경고를 발령했다. 세계적인 출판사 사이먼앤슈스터의 수석 부사장인 위브케 그루트옌은 출판사가 사기 신고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전용 사기 신고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WLA 북스의 문학 에이전트 배리 하보는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벤 마르코비츠(최근 소설 『우리 삶의 나머지』로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가 소설가 오테사 모쉬페그를 사칭한 인물로부터 팬레터를 받았다고 전했다. 호기심에 답장을 보냈지만, 어색한 문체로 답장이 오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사기꾼임을 곧바로 눈치챘다고 한다. 하보에 따르면, 그날 마르코비츠는 거의 동일한 스타일과 형식의 또 다른 팬레터를 받았다. 이번에는 '토머스 핀천'이라는 이름으로 온 것이었다. 댄 베리 기자는 직접 시험 삼아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최근 한 대형 북클럽의 자칭 운영자 채지가 그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200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모음집 『시티 라이트: 뉴욕 이야기』에 대한 감사였다. 그녀는 여러 글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인용하며, 2,3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자신의 모임에서 이 책을 소개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 새로 사귄 절친 채지는 내 방문 전 회원들이 “당신의 책에 완전히 몰입해 주제, 스토리텔링, 감정적 미묘함을 깊이 성찰할 것”이라고 답장했다. 마치 그 책이 차기 『율리시스』라도 되는 듯이. “이 경험을 위해 참가비 170달러가 필요합니다”라고 그녀는 덧붙이며, 즉시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을 기꺼이 알려주겠다고 했다. 사기 수법이 항상 이렇게 정교한 건 아니다. 이름이나 주소를 대충 확인해도 허상이란 걸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결정적 단서들은 인공지능 가면을 뚫고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기성 국립도서재단 웹사이트에는 “오늘 당신의 문학적 성공을 열어보세요”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가장 큰 결함은 이메일의 끊임없는 집요함일 것이다. 폭격 같은 양이 거짓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사기들이 계속 성공하는 이유는 인간이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단지 재정적 보상, 문학적 명성, 그리고 롱아일랜드 출신 코퍼필드(디킨스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인물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할리우드가 관심을 가질 거라는 꿈을 꾸는 불안한 작가 몇 명 뿐이다.
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47
51
8.3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아일랜드가 사랑하는 그림 1위가 된 금지된 사랑 이야기 유럽에서의 120번째 미술관은 더블린에서 만났다.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은 '미니어처 내셔널 갤러리' 같으면서도, 아일랜드만의 개성이 넘치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일주일에 단 2시간만 공개하는 대표작을 못보고 돌아온 눈물나는 사연을 풀어봄 이번 여행에는 아쉬운 사연이 있었습니다. 준비성 부족한 여행자에게 행운은 오지 않더군요.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귀한 작품은 낭만적인 수채화입니다. 프레데릭 윌리엄 버튼(Frederic William Burton, 1816~1900)의 <헬레릴과 힐데브란트, 포탑 계단에서의 만남>에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숨어 있는데요.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도 손꼽히는 걸작입니다. 이 그림은 2012년 아일랜드 공영 방송 RTÉ가 선정한 아일랜드가 사랑하는 그림 투표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2위는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였죠. 빛에 민감한 수채화의 보존을 위해 이 작품은 일주일에 단 2시간 동안(목요일 오전 11시30분~오후 12시30분, 일요일 오후 2시~3시)만 20번 방에서 공개됩니다. 월~수 사흘 일정을 잡았던 저는 만날 수 없었죠.(대성통곡) 이 작품의 주제는 버튼의 친구인 켈트학자 휘틀리 스토크스가 1855년에 번역한 중세 덴마크 정형시 발라드(Ballad)에서 가져왔습니다. 헬레릴이 자신의 호위병인 잉글랜드의 왕자 힐데브란트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헬레릴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해 그녀의 일곱 오빠들에게 젊은 왕자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버튼은 비극적인 결말 직전, 두 연인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낭만적인 순간을 상상해 이 아름답고 섬세한 수채화를 그려냈습니다. 헬레릴의 발치에 떨어진 흰 장미와 짓밟힌 꽃잎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흰 장미는 순결, 무구함, 영원한 충성의 보편적인 상징이었죠. 떨어진 장미는 순결의 상실이나 헬레릴이 겪게 될 가혹한 운명, 연인의 미래가 파괴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흩뿌려진 꽃잎들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짧고 파멸적일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은유죠. 기법적으로 이 그림은 수채물감과 구아슈를 레이어링한 작품인데요. 수채의 투명함은 세밀한 표현에 깊이감을 만들어냅니다. 버튼은 냄새에 대한 신체적 거부감으로 평생 유화를 그린 적은 없지만, 색채의 강렬함은 유화와도 흡사하게 보입니다. 수채화의 정교한 겹겹이 쌓는 기법은 그가 초기에 세밀화가로 훈련받았음을 알려주죠. 그림에 영감을 준 휘틀리 스토크스의 누이 마거릿은 1898년 이 수채화를 구입해 소장했고 1900년 세상을 떠나며 이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해 시민들의 품에 있게 됐습니다. 학자들은 마거릿과 버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요. 수채화를 구입한 건 수십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의 곁에 머물기 위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걸작을 발표한 지 10년 후인 1874년, 버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관장으로 임명됩니다. 어릴적 사고로 오른손을 못쓰는 '왼손잡이 수채화가'로 알려졌던 화가가 갑작스레 미술 정책의 수장이 된 셈이죠. 그의 임명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으나, 그의 높은 감식안과 학술적 전문 지식은 그를 전설의 관장으로 기억되게 만들었죠. 미술관 운영에 전념하려 그는 붓을 꺾었지만 1894년까지 20년간 그는 이 곳을 세계 최고 미술관으로 이끌었습니다. 버튼의 화가로서의 안목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포함한 500점 이상의 작품을 인수했는데요. 유명한 기를란다요 <소녀의 초상>의 복원을 감독해 되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그대로 간판 작품의 기틀은 이때 다져졌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한스 홀바인 <대사들>, 라파엘로 <안시데이 마돈나>가 그가 수집한 걸작들입니다. 1900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더블린에서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아일랜드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기도 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관의 명성을 만들어낸 위대한 화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는 미술관을 떠났습니다. 유럽에서의 120번째 미술관은 언젠가는 다시 오지 않을까하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전문은 여기↓ museumexpress.stibee.com/p/76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122
341
42.2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피에르 위그는 진부한 남성적 시선에 기대고 있다 작년 리움미술관 전시로 화제가 됐던 피에르 위그의 전시 을 나는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피노 컬렉션-델라 푼타 도가에서 관람했다. 을씨년스러운 우기의 베니스와 인류 멸종 이후의 침울한 상상력은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베를린의 가장 인상적인 현대미술 공간인 LAS 아트 재단에서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데 아트넷 뉴스의 놀라울 정도의 혹평이 나왔다. 너무 재미있어서 이중 작품 리미널스에 관한 언급을 옮겨본다. 어둡고 추운 베를린의 겨울에 이 작품을 본다면, 이런 평이 나와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 😂 이브 로저스의 비판의 핵심은 대표작 <리미널스>의 빈곤하고 편협한 상상력이다. 성공한 백인 남성 작가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잣대일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라 동의하는 바가 있다. --- 수많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위그의 최신작의 인지 부조화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 완전히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서, 위그는 얼굴도 없는, 홀로 남겨진, 연약하고 벌거벗은 가임기 백인 여성을 선택했다. 작품에 덧붙여진 글에서 이 몸이 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보라는 요구를 강조할 뿐이다. 스피커와 조명 외에 유일한 요소는 30피트가 넘는 높이의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는 50분짜리 영화다. 영화는 전략적인 느릿함으로 전개된다. 디지털로 구현된 황량한 풍경이 지평선 없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얼굴 대신 검고 텅 빈 공허함을 가진 고독한 형체가 있다. 이 첫 장면은 섬뜩하고 기괴하다. 잠시 동안, 이 작품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인간 존재의 좌표를 뒤흔들고, 익숙한 인식 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시선이 좁혀진다. 우리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그 몸에 오래 머무른다. 그 몸은 풍경을 배경으로 힘겹게 균형을 잡으려 애쓰다가 마침내 일어선다. 거칠고 주근깨투성이인 피부, 손톱, 점, 짧게 자른 머리카락. 다음으로 두 번째로 드러나는 것은 가슴이다. 그리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치골 바로 위, 아랫배를 가로지르는 제왕절개 흉터가 보인다. 나는 이 형상이 성별이 없고 단지 "인간이 아닌" 또는 "인간과 유사한" 존재일 뿐이라고 강조했던 홍보 자료가 떠오른다. 하지만 화면에 나타난 모습은 전혀 다르다. 이 형상은 조금도 추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 출산한 인간 여성이 있다. 이후 30분 동안 몸부림과 발버둥 외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 뚜렷한 불안감이 고조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위그는 세밀한 묘사로 유명한데, 그렇다면 이 흉터를 넣은 이유는 단 하나, 이 '인물'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사운드스케이프가 고조됨에 따라, 나는 그 공허한 얼굴을 마치 벌어진 입, 소리 없는 비명처럼 읽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는 여성, 특히 어머니는 공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토니 콜렛이 연기한 영화 <유전> 을 생각해 보라 .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어머니는 분노와 모성애에 입을 터벅터벅 벌리고 있습니다.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콰이어트 플레이스> 에서는 괴물의 습격을 피해 홀로 조용히 출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억누르다 근처에서 폭죽이 터지자 마침내 길고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의 비명을 지른다. 루피타 뇽오가 연기한 < 어스 >의 복수심에 불타는 교외 어머니의 분신은 마치 목이 졸렸거나 평생 도움을 애타게 외쳐온 듯 고통스럽고 거친 속삭임으로 말한다. <리미널스>의 평범하고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도, 이처럼 드러난 얼굴은 분명히 폭력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그 인물은 땅과 평행하게 튀어나온, 들쭉날쭉하고 좁으며 누가 봐도 남근을 닮은 바위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리미널스>의 피할 수 없는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우리의 스크림 퀸은 천천히 바위에 다가가 자신의 얼굴 구멍을 바위로 찔러 넣는다. 이 작품이 탐구하려 했던 불확실성은 무너지고, 상상 속의 '세계'는 왠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거의 한 시간 만에, 얼굴도 없고 벌거벗은, 모성애 넘치는 이 몸은 마침내 할 일을 갖게 된다. <리미널스>가 불확정성을 고집한다 해도, 결국 가장 전형적인 결말을 피할 수는 없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늘 그렇듯 남성적 시선의 끊임없는 존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활함을 강조하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이 몸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훑어본다. 티치아노의 <비너스> 부터 마네의 < 올랭피아> 에 이르기까지 , 미술사는 여성의 몸을 수동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로, 미적 이상이자 소비재로 제시하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위그는 주인공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그러한 전통을 부정하려 하지만, 의미론적 거리두기를 통해 이미지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은 오히려 전통을 더욱 확장시킬 뿐이다. <리미널스>가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은 어쩌면 이 작품의 핵심 의도일지도 모른다. 서사 구조의 부재와 끊김 없는 반복은 보도 자료에서 언급된 철학적이고 양자 물리학적인 아이디어들을 형식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딥페이크 포르노와 신체적 자율성의 침식이 만연한 시대에, 이 작품은 자신이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상황을 되풀이한다. 불확실한 공허는 어떤 '급진적인 외부'로 향하는 문이 아니라, 니체의 경고, 즉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본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깊이처럼 보였던 것이 점차 거울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리미널스>는 자신이 해체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구조들에 대한 찬가가 되며, 그 구조들의 지속적인 힘을 상기시켜 준다. 화면 속 공허는 급진적인 불확정성이 아니라, 그 힘에 대한 공허한 확인이며, 마치 머리에 구멍이 난 것처럼 절실한 것이다.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67
180
17.2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alors9 J들도 계획없는 글쓰기 가능인가요? 🤔ㅎㅎ
한국어
0
0
0
39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월 8일 뉴욕타임스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길고 긴 인터뷰가 실렸다. 개인적으로는 <1인칭 단수>에서 목격한 동어 반복과 퇴행으로 이제는 더이상 문학적 기대를 하지 않는 작가가 됐지만, 선진국의 1등 신문만 만나시는 하루키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놓칠 순 없지. "무계획형 인간"이라는 인터뷰를 보면 하루키는 INF(여기까지는 좋은 소설가의 필수 덕목)P가 아닐까 싶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의 첫 사인회에서 1명만 찾아온 굴욕 등 나름 재미가 있어서 특별히 전문을 옮겨 본다. 일본에서는 신작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 놀랍게도 여성의 시점으로 주로 쓰인 첫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는 그녀가 되었습니다'라는 하루키의 말은 물론 믿을 수 없지. 이 인터뷰에는 크게 아파서 18kg이 빠졌다는 점,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점 등 정말 인상적인 고백이 줄줄이 나온다. 그나저나 사진 작가님이 예술 사진을 하나 찍으셨는데, 심령 사진을 보는 듯해 잘 어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면, 그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혀 모른다.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고 수십 개 언어로 수천만 부를 판매한 세계적인 문학 아이콘이자 노련한 소설가에게 이 고백은 놀랍게 들린다. 그러나 작가 생활 50년 가까이 된 지금도 무라카미의 창작 과정은 그 자신에게조차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계획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쓰기 시작하면, 쓰다 보면 이상한 일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자동적으로 일어나죠.” 무라카미는 지난 12월 뉴욕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P가 확실함) “소설을 쓸 때마다 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갑니다. 아마도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죠. 그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요.” 그가 이어 말했다. “저는 그곳에서 수많은 것들을 목격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그것을 기록합니다.” (-> N이 확실함) 무라카미는 자신을 뛰어난 문체가나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유일한 특기는 세계 사이를 오가며 보고하는 능력이다. “저는 정확히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저는 천재도 아니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 일을 할 수 있어요—그 세계로 내려갈 수 있다는 거죠.” 무라카미와 나는 맨해튼 미드타운 호텔 지하에 위치한 동굴 같은 칵테일 라운지에서 만났다. 동굴과 터널에 대한 그의 애정,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를 고려하면 이상하게도 어울리는 장소였다. 오전 10시, 이곳은 으스스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기하학적인 빛의 무늬가 벽에 비쳤다. 후드티와 운동화를 입은 캐주얼한 차림의 무라카미는 어둠 속에서 편안해 보였다. 그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고, 가끔 떠오르는 생각을 잡으려는 듯 시선을 위로 향했다. 그는 느리고 신중하게 말했으며, 대부분 영어로 답변했다. 무라카미는 공개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지 않으며, 자신이나 작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TV 출연을 피하지만, 의도치 않게 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2월, 그는 마지못해 뉴욕에서 두 차례 공개 연설을 했고, 많은 청중이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저는 사교를 잘하지 못해서 파티에 참석하거나 연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해야 할 때가 있죠.”라고 그는 말했다. “그 외의 시간은 집에서 작업만 합니다. 일 중독자 같은 면이 있죠.” (->I가 확실함) 12월 11일 타운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무라카미는 만원 관중을 상대로 일본 문학 및 문화의 세계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는 그가 주도한 변화이기도 하다. 그 주 초반에는 소설가이자 음악가인 패티 스미스가 수여한 평생 공로상을 받으며 간단한 소감을 밝혔다. (갈라 행사 참석자들은 무라카미의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금지당했다.) 무라카미는 50년 넘게 함께한 아내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녀가 자신의 첫 독자이자 종종 가장 엄격한 편집자라고 말했다. 또한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첫 사인회를 열었을 때 단 몇 명만 찾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펜을 손에 쥐고 할 일 없이 앉아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라고 그는 청중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 시간 중 하나였죠.” 한때 일본 문학계의 경량급 작가로 여겨졌던 무라카미는 이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처럼 미지근한 반응은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는 문학적 명성이 높으면서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드문 작가다. 그의 신작 소설은 자정 발매 파티로 축하받으며, 열성 팬들이 서점에 모여 발매 즉시 책을 구매한다. 팬들은 그가 언급한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소설 속 음식을 바탕으로 요리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스파게티를 전담으로 다루는 계정도 X(구 트위터)에 존재한다. 무라카미는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 예루살렘 문학상 등 세계적인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되면 쏟아지는 예측 전화에 대해 그의 에이전트인 아만다 어반은 “이제는 그냥 웃어넘길 뿐”이라고 말했다. “노벨상의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작가에게 상이 돌아가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무라카미는 이미 그 영향력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어반은 덧붙였다. “그의 작품은 국경과 언어, 문화를 초월해 독자들에게 다가갑니다. 다른 작가들이 결코 닿지 못한 방식으로 말이죠.” 미국에서 그의 책은 6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무라카미는 잇따라 신작을 출간할 예정이다. 올가을에는 그의 아버지와 맺은 관계를 다룬 짧고도 잊을 수 없는 작품 『고양이를 버리다』가 크노프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다. 내년에는 그의 클래식 음반 컬렉션을 다룬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출판사는 또한 여전히 높은 수요를 보이는 그의 기존 작품들을 새 표지로 재출간하고 있다. 77세의 나이에 무라카미는 여전히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완성한 신작 소설은 올여름 일본에서 출간될 예정이며 현재 영어로 번역 중이다. 무라카미는 작년에 심각한 질병에서 회복한 후 이 소설의 상당 부분을 집필했다. 그는 이 질병에 대해 자세히 밝히기를 꺼렸는데, 한 달간 입원하게 만들었고 약 40파운드(약 18kg)를 감량하게 했다. 병은 무라카미에게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평소 하루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하던 그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병세가 심할 때는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다. 회복된 후 글쓰고 싶은 욕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일종의 부활 같은 거예요.” 그는 신작 소설 집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시 돌아왔어요.” 그에게 떠오른 이야기는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더 낙관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여성의 시점에서 주로 쓰인 그의 첫 소설로서 새로운 영역이기도 하다. 일부 비평가들이 그의 여성 캐릭터들을 일차원적이고 주변부적이며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되었다고 비판해온 무라카미는 젊은 여성의 시점에서 쓰는 것이 다르면서도 놀랍게도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저는 그녀가 되었습니다.” 무라카미는 줄거리에 대해 자세히 밝히기를 꺼렸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젊은 여성 카호가 예술가이자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사건이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만 언급했다. “그녀는 매우 평범한 소녀입니다.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죠.”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 주변에서 수많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어떤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묻자 그는 미소 지었다. “비밀입니다”라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새 소설을 완성했으며 현재 영어로 번역 중이다. 여성의 시점으로 주로 쓰인 그의 첫 작품이다. 무라카미의 이야기는 종종 평범한 배경에서 시작된다. 『1Q84』의 시작 부분에서 교통 체증에 갇힌 여성이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시작 부분에서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화자가 그 예다. 그러다 이야기는 꿈과 같은 평행 현실로 전환된다. 그럼에도 무라카미의 가장 기이한 플롯조차 판타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생활의 세밀한 디테일에 뿌리내린 초현실적 감각을 주는데,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던 것들이 기이하게 변모한다. 그의 출판사 크노프의 편집자 렉시 블룸은 “그는 우리 세계에서 시작해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이끈다”며 “독자는 그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저 그를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작가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베와 오사카 근교 교외에서 두 교사 부부의 외동아들로 자란 그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연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평범하고 무관심한 학생이었으며, 특히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솔직히 10대 시절엔 일본 문학을 전혀 읽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일본 문학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싫어했거든요,”라고 무라카미는 말했다. 대신 그는 헤밍웨이, 캐포티,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러시아 고전을 읽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들보다 음악에 대한 사랑—다양한 취향과 방대한 바이닐 레코드 컬렉션을 지녔다—이 자신의 글쓰기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좋은 음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꾸준한 리듬,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 재즈의 자유로운 즉흥 연주.” 20대 때 그는 도쿄 서부에 '피터 캣'이라는 재즈 클럽을 열었다. 몇 년간 클럽을 운영하던 어느 날,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문득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글을 쓰려 앉았지만 막막함을 느끼자, 먼저 영어로 쓰고 다시 일본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영어로 문장을 구성하는 과정이 생각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간결하고 꾸밈없는 문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라카미는 타이핑한 유일한 원고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신인문학상에 제출했다. 그는 수상했고, 이 소설은 그가 서른 살이던 1979년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를 시작한 지 거의 같은 기간 동안 무라카미는 레이먼드 챈들러, J.D. 샐린저, 레이먼드 카버 같은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해 영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왔다. 그는 최근 앤드루 듀버스의 단편집 『불륜과 다른 선택들』 번역을 마쳤으며, 다음으로는 대실 해밋의 작품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지루함을 느낄 때면 종종 번역 작업으로 눈을 돌리며, 이를 통해 두뇌를 날카롭게 유지하고 다양한 문체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게 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번역 작업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으니까요.” 무라카미의 국제적 명성은 1980년대 초 급속히 높아졌다. 도쿄의 광고 기획자가 신화 속 양을 찾아 헤매는 초현실적 소설 『양을 찾아서』가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러나 고국에서는 독자들이 그의 책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는 초기 경력 시절 문학적 추방자 취급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그가 서양 문학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았다고 비난했으며, 그의 환상적인 플롯과 단순한 문체를 유치하다고 일축했다. 이러한 비판은 그를 괴롭혔고, 그는 비판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쓰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몇 년간 해외 생활을 했다. “저는 일종의 검은양이었어요. 그들은 문학에 주류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길에 있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일종의 변방에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일본 문단에서 편안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무라카미는 말했다. “과거에는 비평가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느낌이 거의 있었습니다.” 그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고 일본 문학의 독자층이 확대되면서 이런 상황은 바뀌었다. 무라카미의 성공은 다와다 요코와 카와카미 미에코를 비롯한 더 젊고 실험적인 일본 작가들이 국제적 명성을 얻는 길을 열었다. 카와카미는 이메일에서 무라카미가 “비유를 통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며, 마치 아무도 본 적 없는 순간을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능력”에 경탄했다. 다와다는 고등학교 시절 무라카미를 읽기 시작했으며, “완전히 새로운 문학을 만나는 기분이었다”고 이메일에서 밝혔다. 그녀에게 무라카미의 산문을 읽는 것은 “마치 먼 외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무라카미는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묘사한다. 요즘 무라카미는 더 이상 고국에서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고, 사람들은 노인들을 존중하니까요”라고 그는 말했다. 최근 몇 년간 무라카미의 글은 더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는데, 이는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향수와 죽음의 불가피성을 다루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들』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깊이와 중후함, 더 실체적이고 궁극적으로 매우 감동적인 무언가를 발견한다”고 무라카미의 오랜 번역가 중 한 명인 필립 가브리엘은 말했다. 최근 무라카미는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설거지나 다림질 같은 집안일을 하며, 달리기를 하는 일상 속에 행복하게 빠져 있다. “앞으로 몇 편의 소설을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 쓰기는 정말 멋진 일이라서, 마치 내 자신을 탐험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늙어서도 탐험할 여지는 남아 있다.”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3
104
315
27.3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alors9 저는 몰랐던 단어인데, 정확하네요 ㅋㅋㅋ
한국어
0
0
0
56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샐리 루니 소설의 은근한 도발 "그는 수입의 절반을 월세로 내지만 그들은 부촌인 라넬라의 본가에 산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을 피터는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취향. 예의범절. 교양. 외국에서 휴가를 보낼 때 그들은 숙취로 늦잠을 작지만 그는 혼자서 박물관 앞에 줄을 섰다. 피렌체에서 본 보티첼리의 <석류의 성모>. 빽빽하게 그려진 천사 같은 얼굴들의 눈부신 아름다움. 스물두세 살쯤이었더 피터는 오디오가이드를 귀에 바짝 대고 이탈리아어를 입 모양으로 따라 했다. 나중에 로마에서, 도리아팜필리 미술관의 팅 빈 뜰에서 보낸 시원한 회색빛 오후. 오렌지 나무 정원을 둘러싼 석조 기둥들. 고요함 속에 딱 하나 열린 머리 위의 창문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감동했다.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 고대 조각상의 웅장함, 그래.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후기 스타일, 크레프드신의 호화로운 촉감, <에이프릴 인 파리>를 부르는 세라 본. 그들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피터는 자신이 그토록 풍성하게 획득한 것을 특권만으로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 문화. 그래. 돈으로 살 수 없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태도를 반동적이라고 부른다." - <인터메초> 289-290pp <인터메초>의 중반부에서 나는 <노멀피플>의 코넬이 변호사가 된 것인가 착각할 정도의 문장을 만났다. 샐리 루니의 모든 인물들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면서도 처절할만큼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몇번이고 아비투스의 벽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지난주 출간되기까지 정말 오래 기다린 한국어 번역본이었는데, 번역자의 차이인건지 샐리 루니의 문체가 너무 달라져서 놀라면서 읽었다. <인터메초>에는 두 주인공 형제가 등장하는 덕분에 인물간의 관계망이 전작보다 더 복잡하고, 더블린과 교외 지역을 오가는 컨텍스트도 조금 더 촘촘해졌다.<노멀 피플>처럼 "우주에서 이 연인뿐"인 이야기가 아니라, 육체적인 삼각관계와 인정받지 못하는 커플 등이 등장하는 훨씬 복잡해진 관계성으로 이번 소설의 호불호는 분명 갈릴듯하다.(해외 평단에서도 그랬음) 그럼에도 샐리 루니는 초반부의 곧바로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도입부의 문턱만 넘으면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워하며 읽게 만드는 소설가라 600쪽의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압도적. 24년 책 출간과 함께 영미권 모든 매체의 리뷰가 쏟아졌는데 가장 동의하는 해석은 Vulture의 트랜스젠더 비평가 안드레아 롱 추가 쓴 장문의 리뷰였다. "루니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와 서로에게 부여된 관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랑에 끊임없이 희망을 걸지만, 막 그 희망을 실현하려 할 때마다 부, 지위, 권력의 불평등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평등은 그들의 이상주의를 치명적으로 무너뜨리지만, 사랑 그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루니 소설의 은근한 도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실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사회적 관습, 시장 경제, 폭력의 체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인간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사랑 이론은 아닙니다. 오히려 좀 더 예상치 못한, 연인의 관점에서 본 마르크스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미국판과 닮은 노란색 표지도 이야기에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지만, 1년 여 전 런던의 지하철에서 정말 많이 봤던 원작의 푸른색 표지가 더 마음에 드는 건 어쩔 수 없음.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1
137
461
41.3K
김슬기
김슬기@Poison_Tree·
유럽 100개 미술관 중 가장 좋았던 곳 유럽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니? 영국에서 귀국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라서 저는 아예 봇처럼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설연휴를 앞두고, 아예 이 썰을 긴 글로 풀어봤는데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 관한 이야기 한 번 읽어보시길. --- 문을 열고 탁트인 정원으로 나오는 순간, 감탄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말그대로 자연 속의 미술관이 펼쳐졌거든요. 광활한 잔디밭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이 아늑한 정원에는 눈을 돌리면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면 외레순 해협의 바다가 보였고요.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궁금증부터 생겼죠. 미국도 아닌 북유럽에 붙여진 루이지애나란 이름이 낯설었습니다. 여기엔 재미있는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미술관 건물의 이전 소유주였던 왕실사냥단의 장교였던 귀족 알렉산더 브룬의 세 아내 이름이 모두 ‘루이즈(Louise)’였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겁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놀라운 사연이라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1958년 세워졌습니다. 치즈 사업가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크누드 W. 젠슨(Knud W. Jensen, 1916~2000)은 1955년 덴마크 해안의 25에이커(3만평) 규모 부지에 자리한 ‘놀라운 사연을 가진’ 루이지애나 빌라를 매입했습니다. 처음부터 젠슨은 대중이 예술을 허세스러운 것이 아니라 관람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도록, ‘영혼이 깃든 박물관’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현대 미술을 덴마크인들에게 더 친숙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죠. 그는 개관 이후 1995년까지 40년 가까이 미술관의 디렉터로 활동하며, 루이지애나를 “덴마크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많이 찾는 문화 중심지”(뉴욕타임스)로 키워냈습니다. 건축가 요르겐 보(Jørgen Bo)와 빌헬름 볼레르트(Wilhelm Wohlert)와 협력해, 건물과 주변 풍경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설계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빌라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현대적인 건물을 레고처럼 하나씩 덧붙여 나갔죠. 각기 다른 개성의 건물은 마치 바느질로 하나로 꿴 태피스트리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집니다. 자연 속에서 튀지 않도록 지하 공간을 많이 사용하고 2층 이상으로 높이지 않아, 건물들은 전혀 존재감을 뽐내지 않습니다. 덕분에 건축과 자연, 예술은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 풀버전은 아래에 ↓ museumexpress.stibee.com/p/74 ---
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김슬기 tweet media
한국어
0
70
333
27.4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