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X가 느닷없이 자동번역이 되면서 한국 대통령이 갑자기 팔레스타인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그 단초가 된 포스팅은 명백한 선전선동 가짜뉴스다.
만약 2차 한국전쟁 발발후 국군이 평양 건물 옥상에서 북한 아동을 고문후 내던지고 있다는 11초 영상을 이스라엘 총리가 공유하면 한국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까.
총장님 고맙습니다.
---
헌법과 법률이 마련해둔 사법시스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확정된 재판을 번복할만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다면 재심절차를 거치면 됩니다. 진행 중인 재판에서는 적법절차와 증거능력, 증명력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차분히 따져 유무죄를 결정지으면 될 일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법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법부의 재판권과 행정부의 수사권을 침해하고 삼권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국정조사는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법 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민주공화국은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비록 더디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미리 정해둔 법치주의와 사법시스템을 믿고 지켜봐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호소합니다.
[ 인권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코스튬, 그 속의 비릿한 진실 ]
내가 아프면 타인도 아프다니,
이토록 눈물겨운 '선택적 인류애'가
또 어디 있을까?
이스라엘을 향해 보편적 인권과
인지상정을 일갈하는 그 입술을 본다.
참으로 고귀하다.
하지만 그 고결한 문장들이
내뱉어지는 순간,
우리 머릿속엔 37번의 잔인한 칼질과
붉게 물든 거실 바닥이 겹쳐진다.
1. 도살을 '연애'로 치환하는 마술
조카가 내연녀를 18회,
그 어머니를 19회 찔러 죽였다.
한 가문의 우주가 난도질당했다.
그때 당신은 법정에서 무엇을 했나?
'심신미약'이라는 방패를 들고 감경을 읍소했다.
그뿐인가.
대선 후보라는 자가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 참혹한 살인을 '데이트 폭력'이라 명명했다.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그 비릿한 수사학.
여성이 죽어나간 자리에 남은 건
인권이 아니라, 표를 계산하는
정치꾼의 '언어유희'뿐이었다.
2. 죽음 곁에서 춘 기괴한 '산타 댄스'
주변인 6명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당신은 산타 복장을 하고 춤을 췄다.
타인의 죽음이 배경음악인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들이 생을 포기할 때
흔들어대던 그 골반의 리듬감을
국민은 기억한다.
내 곁의 죽음에는 무감각하면서
멀리 있는 중동의 고통에는
심장이 뛴다니, 이건 공감이 아니라 '연기'다.
3. 위선의 유통기한은 끝났다
남이 하면 반인권적 행동이고,
내가 하면 '변호인의 권리'인가?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제 눈에 이슬 맺힌 척하는
그 위선에 구역질이 난다.
진정한 인권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트위터 한 줄에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변호했던 살인마의 칼날에
스러진 모녀의 원혼 앞에
무릎 꿇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우리는 '가짜 눈물'에 속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권을
소품으로 쓰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약자의 고통을 자기 방탄의 재료로 삼는
비루함을 더는 묵과하지 말자.
"당신이 말하는 그 인권에,
당신 조카에게 죽어간
모녀의 몫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이 질문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신다면 RT로 응답해 주십시오.
우리의 분노가 기록될 때,
비로소 가짜 인권의 시대는 저물 것입니다.
<한국 대통령의 인권옹호 발언 이스라엘 새겨 들어야>
일제 전시체제에서 위안부 강제 징용공 같은 노예 강요, 탄광, 군수기지에서 감금 학살 생매장, 화학 생체실험, 관동대지진 학살을 겪은 민족이다.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는 데 대해 인권적 차원에서 잘못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이재명대통령을 적극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