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etheriali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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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therialisX
@AetherialisX
Above the line of perception.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 삶에서 겪는 자잘한 경험들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흔히 이 플랫폼에서 보이는 행태만 봐도 많이들 느끼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먼저 친한 척 다가오다가도 자신이 생각하는 흐름에 조금이라도 맞춰주지 않으면 갑자기 상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세우고, 자신들만이 믿는 종교에 작은 의문이라도 품는 순간 사탄이니 이단이니 하는 별 천박한 소리를 가져다 붙일 정도로 인간은 아주 얕은 레벨에서조차 철저히 이기적이 된다. 그런데 수경 원의 돈이 움직이고 이 행성의 자원을 다루는 최상위 영역에서는, 누군가가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는가. 일상생활에서조차 길을 걷다가 남을 위해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들이 대다수인 세상이지 않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에 잠식당해 평정심을 잃는 것 또한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다. 패턴들을 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윤곽은 이미 충분히 선명해지고 있을 뿐이다. UN에 가입한 193개국 모두가 2015년 UN 총회에서 “Agenda 2030”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들로 구성된 이 프레임워크는 각국 정책 방향을 동일 축으로 정렬시키는 기준이 되었고, 한 국가도 빠짐없이 전부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구조의 범위를 보여준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폐허 위 재개발, 해안 지구 개발, 인프라 재건, 물류와 에너지 거점 재설계 같은 이야기들이 이미 정책과 투자의 프레임으로 나오고 있다. 전쟁이 단순한 파괴가 아닌, 이후 재건과 개발까지 이어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재건 비즈니스”라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란의 폭격을 방치하고 그 위에 새 인프라를 올리는 흐름은 단순한 결과라기보단, 엘리트들의 “메가시티” 구상을 위한 부지 정리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이미 예고된 순서처럼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다음 단계는 봉쇄다.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2022년 발표한 “석유 소비 절감을 위한 10개 계획”과 이후 에너지 위기 대응 권고안들을 보면 재택근무, 대중교통 이용, 차량 사용 감소, 항공 이동 축소 같은 개인 행동 제한이 핵심으로 반복된다. 2020년 팬데믹 당시 이동 제한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패턴이다. 그때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였고 이번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명분일 뿐, 통제의 문법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이런 권고를 발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private jet을 타고 이동한다. 통제를 요구하는 쪽과 감수하는 쪽이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은 식상할 정도지만, 대중은 그들 중 하나를 골라 "정의로운 영웅"이라 지칭한 채, 모든걸 맡기고 소음에만 하루하루를 소모할 뿐이다. 디지털 ID와 CBDC 논의가 주요 국가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소비와 이동을 조건부로 제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더 이상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권고 한도를 초과하는 순간 결제 자체를 막는 구조 역시 이미 구현 가능하다. 개인의 돈이 개인 것이 아닌 세상의 설계도는 이미 완성 단계에 가깝다. 코로나를 통해 구조는 대중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대한 실험을 끝냈다. “공동의 목적”이라는 프레임 앞에서 대중은 거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상납하고, 그 프레임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스스로 공격하며 구조의 통제를 내부화한다. 미국 의회가 특정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사업 관계 때문에 입을 닫을 뿐이다. 사업관계가 거창해보인다면, 당장 내일 월급을 위해 입을 닫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백신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조차 사회적 관계 앞에서는 침묵하며, 기후변화 담론이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느끼면서도 낙인이 두려워 말하지 못하고, gender ideology가 교육에 반영되는 것에 불만이 있어도 혐오자로 찍힐까 봐 침묵한다. 얼굴 없는 플랫폼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정의로운 척을 하지만, 실상 현실세계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라며 스스로 노예의 챗바퀴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침묵들이 쌓여 구조를 만든다.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앉아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이 상태가 바로 구조가 원하는 최적의 상태다. 여론이라는 감옥의 벽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본의 흐름을 보면 더 명확하다. Lockheed Martin, RTX 같은 방산 기업의 주요 주주에는 BlackRock, Vanguard, State Street 같은 자산운용사가 올라와 있고, 이들은 전 세계 수많은 개인의 연금, ETF, 인덱스 펀드 자금을 운용한다. 결과적으로 수억 명의 개인 자금이 이 구조와 연결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 채 수익률만 확인하고, 그 수익을 자랑하며 스스로 이 구조를 강화시킬 뿐이다. 긴장이 고조될수록 방산 산업의 수익 기대는 올라가고, 무기 산업은 어느 한쪽만 상대하지 않으며 수익이 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다. 개인이 무엇에 투자하느냐는 결국 어떤 세상을 지지하느냐와 연결되고, 자신의 수익률과 욕망을 쫓는 선택이 결국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직접 파괴하는 모순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희생되는 제물에는 자기 자신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은 대부분 망각될 뿐이다. 지금 진행되는 사회 해체 또한 일정한 공식이 존재한다. 남성을 약하게 만들고, 여성을 남성화하며, 교육을 조작의 도구로 삼고, 진실을 공격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가정을 흔들고, 강함을 독성으로 낙인찍으며, 음식을 가짜로 채우는 흐름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남성 테스토스테론 레벨의 장기적 감소 경향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출산율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역사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각각은 독립된 문제처럼 보이지만 방향은 모두 일치한다. 약한 개인과 분열된 가정은 저항하지 못하게 되고, 통제는 이 조건에서 더욱더 완벽하게 작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흐름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음모론자”로 프레임되어 격리될 뿐이다.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은 결코 안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의 책임자였던 Joe Kent는 2026년 사임하며 이란이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 내부 최고 수준 인사조차 공식 명분과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전쟁이 단순한 안보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까지 드러났다. 전쟁은 위협 때문이 아닌 이해관계와 자본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BlackRock 같은 자산운용사는 방산과 재건 양쪽 모두와 연결되어 있기에 폭탄이 떨어질 때와 재건이 시작될 때 모두 돈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개인들이 감당하게 된다. 기름값으로, 장바구니 물가로, 인플레이션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며 개인들의 삶이 압박받는 동안 그들은 더 부자가 될 뿐이다. 영화를 볼 때 대중은 저항하는 자들을 응원한다. 픽션에서는 구조가 보이기 때문에 저항이 자연스럽고 그것을 지지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르다. 같은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고, 픽션이나 가상세계에서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척을 실컷 해보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낙인, 손해, 보복을 두려워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대신 나서주길 바라지만, 막상 나선 자가 있으면 그 깊은 본질을 보려 하기보단 소수가 지지하는 것을 보고는 조롱에 동참한다. 상황에 대한 인지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남들이 조롱하니 같이 조롱해대며 스스로는 “우월하다” 믿고 살아가는 게 현실일 뿐이다. 이 두려움과 망각에 가까운 거짓 우월감이 구조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이 상태가 유지되는 한 구조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개인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에만 이 흐름은 끊어진다. 공개 여론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생을 소음 속에 묻힌 채 스스로 구조를 유지하는 연료로만 살아갈 뿐이다.









사이비 구분하는 법. 신격화 : 지도자를 마치 인류를 구원할 영적 지도자로 여기는 순간,, 아시죠? 부처님도 "자신 안의 등불을 따라가라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고 그안의 등불을 따라가세요. 타인에게 의지하는 순간, 자신의 신념을 바치는 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