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therialisX

424 posts

AetherialisX banner
AetherialisX

AetherialisX

@AetherialisX

Above the line of perception.

Katılım Şubat 2025
1 Takip Edilen384 Takipçiler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나는 어릴 때부터 잠을 참 안 잤다. 어머니 말씀대로면 “잠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애”였다. 매일을 버티다가 기절하듯 잠깐 자고, 다시 에너지가 폭발하는 패턴이었다. 학교 졸업 후 애널리스트로 일을 시작한 후에도, 반강제이긴 하지만 주말 없이 하루 4시간만 자면서 다녔지만 그 와중에도 짬이 나면 운동을 하러 가든 놀러 갔다. 30대에 들어서면서 그 정도의 체력은 아니었지만 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한 번에 오래 자지 못한다. 쳇바퀴 위에서만 돌던 생활을 지나, 출근 시간이라는 외부 규격에서 벗어난 생활을 시작한 후부터는 패턴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한창 바쁠 때는 말그대로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폴 서울 도쿄 순으로 지구를 한 바퀴를 도느라 몸의 리듬이 모두 깨져 비몽사몽이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러 몸의 리듬이 그 지역의 일출과 일몰에 맞춰 살기 시작하면, 이게 습관이 아닌 반복되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된다. 나는 하루에 잠을 두 번 잔다. 밤 12시쯤 잠들고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깬다. 억지로 깨는 게 아니라 그냥 아주 상쾌하게 깨어난다. 개인적으로는 하루 중 이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데, 이때는 참 맑게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된다. 그래서 이때는 글을 쓰거나 머릿속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게 몇 시간 지나서 해가 뜰 때가 되거나 해가 뜨고 나면 다시 졸려지고, 다시 잠들었다가 9-10시 전에 저절로 깬다. 개인적으로는 이 패턴에서 가장 상쾌하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이것이 개인적인 특이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억지로 맞춰진 삶의 패턴을 벗어난 후에 깨달은 패턴이기에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다. 역사학자 Roger Ekirch는 16년에 걸쳐 500개 이상의 역사자료를 분석했다. Homer의 “Odyssey”부터 중세의 일기, 법정 기록, 의학 문서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밤을 두 번에 나누어 잠을 잤다. 프렌치로는 premier somme, 이탈리안으로는 primo sonno, 스페니쉬로는 primer sueño, 영어로는 first sleep 이라고 불리는 단어들은 문화적 유행이 아닌 전 대륙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생물학적 기록일 뿐이다. 첫 번째 수면과 두 번째 수면 사이의 시간을 프랑스인들은 “dorveille”라고 불렀다. 깨어 있으나 잠든 것과 같은 상태라는 뜻이다. 1500년대의 의학 문서는 이 "dorveille"의 시간을 "가장 깊은 사유와 명료한 대화가 가능한 시간"으로 기록했고, 나아가서는 아이를 갖기에 가장 좋은 시간으로 권장하기도 했다. 인공조명이 없는 환경에서 이 구간은 인류가 가장 또렷하게 의식을 확장하던 핵심 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는 이것들은 문제로 분류된다. DSM-5(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ition)는 수면 중 각성이 반복되고 다시 잠들기 어렵거나 낮 동안 기능이 떨어질 때 이를 불면증으로 본다. 이 기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준은 수면은 한 번에 이어져야 한다는 가정만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어긋나는 게 생긴다. 관찰된 패턴이 기준을 만든 게 아닌, 먼저 만들어진 기준이 무엇을 문제로 볼지를 결정한다. 8시간 연속 수면이라는 모델은 자연스럽게 나온 결론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에 작동해야 하는 시스템과 더 잘 맞는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은 끊기지 않았고, 이 안에서 인간도 끊기지 않아야 했다. 이때부터 이런 요구가 표준이 되었고, 이후에는 이 표준에서 벗어나는 패턴이 문제로 정의됐을 뿐이다. 필요한 형태가 먼저 정해지고, 그다음에 정상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구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시끄러운 Artemis 2 크루와 관련된 NASA의 우주 비행 데이터도 같은 방식으로 다뤄진다. Orion 우주선에는 고프로, Nikon D5, Z9 Mirrorless 등 32개의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었다. 4K 촬영 능력은 이미 확인됐지만, 실제로 전달되는 것은 아주 저화질이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한 대역폭 등을 이유로 내밀지만, 우리가 보는 건 전체가 아닌 선택된 일부일 뿐이다. 문제는 이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특정 범위 안에서만 보게 되면, 그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한 건 애초에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게 된다. 수면에서와 같은 구조다. 가능한 범위가 먼저 정해지고, 그 안에서 정상과 비정상이 나뉜다. 이 구조가 외부에 있을 때는 그나마 의심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내부로 들어오면 그 의심마저 사라지게 된다. 종교는 이 구조가 내부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해를 끼친 대상과 관계를 회복하는 대신, 더 높은 존재에게 용서를 구하려 한다. 피해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책임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 자신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책임을 지는 것은 어렵다. 관계를 복구해야 하고,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반면 전능한 존재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훨씬 간단하다. 그리고 그 용서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인간에게 다시 책임을 질 이유는 급격히 약해진다. 이 차이가 선택을 만든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뀌기 전에 먼저 용서를 확보하고, 이 순간부터는 변화는 필요 조건이 아닌 선택 사항이 될 뿐이다. Rockefeller 또한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시장을 집어삼킨 사업가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의 신앙이 진심이었는지 아닌지가 아닌, 바로 이런 종류의 인간에게 신앙이 얼마나 유용하게 작동하는지다. 나쁜 인간에게 신앙은 교정 장치가 아닌 방어 장치가 된다. 이때 신앙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사람을 그대로 둔 채 자기 설명만 바꿔줄 뿐이다. 약탈은 있었지만 회개했으니 괜찮고, 파괴는 있었지만 신이 용서했으니 끝났고, 피해는 인간에게 남았지만 정리는 신과 했으니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어떤 인간들에게 종교는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수선의 의무 없이 순결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짓밟고도 신 앞에서만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망가뜨린 관계는 그대로 둔 채, 자기 영혼만 구원받았다는 확신 속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용서는 회복이 아닌 면책이 된다. 겉으로는 정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 어떤 신앙은 교정 장치로 작동하고, 어떤 신앙은 면책 장치로 작동한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 개인의 신앙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 개인은 아무것도 바꾸고 있지 않는 것과 다른 것이 없다. 수면에서는 각성이 문제로 정의되고, 정보에서는 원본이 선택적으로만 드러나고, 종교에서는 책임이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 먼저 틀이 정해지고, 그 틀 안에서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이런 기준이 유지되는 한, 같은 방식의 해석만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대부분 여기서 끝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기준을 의심하지 않는다. 본질은 그대로 둔 채,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만 수정할 뿐이다. 그래서 틀린 기준은 그대로 둔 채로, 계속 틀린 곳만을 고친다.
한국어
4
1
18
609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로마의 콜로세움은 감정 소비 구조였다. 사람을 모아두고 시선을 묶어둔 채, 그 안에서 충돌을 반복하게 만든다. 내부에서는 생존과 명예의 문제였겠지만, 외부에서 보면 구조를 건드리지 못하는 범위 안에서 허용된 싸움이었다. 누가 이기고 죽는지는 중요했지만 그것으로 시스템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감정은 격렬하게 소모되는데 구조는 견고하게 유지된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정치와 종교에서 반복되는 선악 구분 방식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우리”와 “그들”로 나누고 감정을 소모하는 패턴이 그대로 반복된다. 이때 판단은 사실이 아닌 해석에서 출발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건을 따라가기보단 먼저 해석을 만들고, 그 해석에 맞는 정보만 남긴 채 나머지를 제거한 상태를 판단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특정 인물에 의미를 집중시킨다. 한 명을 선택해 영웅으로 만들고 기대와 감정을 투영한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의존으로 이어진다. 강력한 지도자나 영웅에게 의존하는 순간, 개인은 자신의 맥락을 그에게 위임하고 스스로 구조의 부품으로 기능하게 될 뿐이다. 문제가 드러나면 대상을 폐기하고 다른 대상을 찾아 같은 과정을 반복할 뿐, 개인이 바뀌지 않는 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걸 단순히 무지로만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정보는 과잉이고 시간은 부족한 상태에서 판단은 빠르게 요구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검토할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가장 비용이 낮은 “레이블링” 방식이 선택될 뿐이다. “MZ”, “꼰대”, “음모론자”, “이단” 같은 레이블은 복잡한 맥락을 압축하는 도구인 동시에 사고를 중단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레이블이 붙는 순간 더 볼 필요가 없어지면서 내용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건 과거와 단절된 현상이라기보단 형태만 바뀐 연속에 가깝다. 과거에는 레이블이 사람을 제거하는 데 쓰였다. “Witch” 나 “빨갱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청취가 중단되었고, 실제로 사람 자체가 물리적으로 제거되기도 했다. 지금은 사람 대신 생각이 제거된다. 레이블은 위험을 줄이는 대신 사고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능하며, 플랫폼은 이 경향을 더 빠르게 증폭한다. “A는 선이고 B는 악이다” 같은 문장은 정보를 전달하기보단 왜곡된 방향만 제시한다. 단순할수록 빠르게 퍼지고, 퍼질수록 맥락은 제거된 채 반응만 남을 뿐이다. 이 구조는 일상의 언어에까지 침투한다. 반복되는 대화는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 유지되고, 우리는 대화보다는 부여된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이 안에서 오래 머물면 사람은 자신을 이름표로 이해하게 된다. 외부의 분류와 실제 개인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imposter syndrome은 개인의 불안이라기보단, 레이블로 사람을 규격화하려는 환경이 만들어낸 구조적 소외에 가깝다. 나 역시 이 간극 안에서 오랜 시간을 괴로움 속에 보냈다. “Divide et impera. 분열시켜 통치하라”라는 방식은 형태를 바꾸며 여전히 이어진다. 과거에는 종교와 계급이었고 지금은 세대, 성별, 이념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의도된 지배 구조로만 보는 것 역시 또 다른 단순화에 가깝다. 사람들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반복한다. 하지만 구조는 개인을 완전히 규정하지 못한다. 콜로세움 안에서도 글라디에이터는 자신의 싸움 방식을 선택했고, 레이블이 붙어도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존재했다. 분열을 먹고 사는 구조 속에서도 맥락을 끝까지 붙잡은 개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구조를 바꾸기보다 그 안에서 다르게 움직임으로써 균열의 가능성을 남겼다. 이건 영웅 서사라기보다, 각자가 자신의 맥락을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 결국 이 구조를 벗어나는 길은 역설적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하나 됨은 강력한 구호 아래 뭉치는 획일화된 또다른 레이블을 말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각자의 맥락을 회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분류가 제공하는 “빠른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끝까지 듣는 느린 맥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구조에는 작은 균열이 생긴다. 먼저 분류하면 그 이후는 필요 없어지지만, 먼저 들으면 그다음이 남는다. 결론보다 과정을, 이름표보다 그 뒤의 맥락을 따라가는 이 고비용의 청취가 공유될 때, 분열을 기반으로 유지되던 구조는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각자의 맥락을 가진 주체로서 서로 연결되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출구다.
한국어
4
7
20
767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The 20 year training that I did not even know was happening is over. Time to come out to the world. The game begins now.
English
4
1
14
355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한동안은 주변 사람들을 “각성”시키겠답시고 꽤 열정적으로 설득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배워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다가, “지구가 둥글다” 같은 사실조차 직접 확인해본 적 있냐는 식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검증해보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flat earther”라는 레이블로 모든 이야기를 묵살시키려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내 요점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누가, 어떤 경로로 우리 안에 심어줬는지 한 번이라도 의심해본 적 있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내용으로 반박된 것이 아닌, 레이블이 붙는 순간 대화 자체가 자동적으로 차단됐다. 비슷한 일은 다른 영역에서도 반복됐다. 빌리어네어 밑에 있을 때 받았던 유혹들과, 거기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실제로 치러야 했던 대가를 꽤 오래 친하게 지낸 동생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형,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같은거에 들어가는 법 좀 알려줘. 나 이제 애가 둘이라 뭐라도 할 수 있어”였다.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아이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집단에 스스로 들어가고 싶다는 그 구조적 모순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엄과 그 이후 상황을 설명해줘도 “나는 중도야. 모두를 존중해”라며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자신 나름대로는 “사회생활”을 위한 정답처럼 내뱉는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도 모른 채, 이재명이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소리마저 덧붙였다. 언론에서 주입된 “일 잘한다”는 이미지를 아무 근거 없이 그대로 반복할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내용이 아닌 레이블로 닫고, 검증 없이 주입된 것을 반복한다. 이 반응은 특정 사람의 문제라기보단, 상황이 바뀌어도 그대로 반복된다. 그리고 이건 개인 간의 대화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방식은 역사적 발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 세계 200개 이상의 문화권에 “대홍수 신화”가 남아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힌두교의 마누 신화, 마야의 Popol Vuh, 호주 원주민의 Dreamtime 설화 등, 서로 접촉한 적 없는 문명들이 신의 경고, 압도적인 물, 선택된 생존자, 새로운 시작이라는 동일한 구조를 독립적으로 기록했다. 학계는 이것을 빙하기 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집단 기억의 변형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 잠긴 문명들은 어디 있는가. 2000년 12월, 인도 국립해양기술원(NIOT)이 구자라트 해안 오염 조사 중 Gulf of Cambay 해역 수심 30-40m 아래에서 격자 형태의 구조물을 포착했다. 5마일 길이, 2마일 너비의 인공 구조물, 도자기, 인골이 인양됐고 목재 시료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9500년 전으로 나왔다. 수메르 문명이 등장하기 5000년 전, 비슷한 규모의 문명이 이미 존재했다는 결과였다. 인도의 타밀 Sangam 문학은 기원전 3세기부터 “Kumari Kandam”이라 불리는 잠긴 대륙과 반복적인 대홍수 “Kadal Kol”을 기록해왔다. 서로 다른 층위의 기록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의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발견 직후 dredging 방식으로 회수된 시료는 층위가 통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반박이 뒤따랐다. 그렇게 확정도, 완전한 반박도 없이 조사는 흐지부지됐고, 공식 결론은 “자연 지형일 가능성”으로 수렴됐을 뿐이다.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온 발견이 조용히 묻히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같은 흐름은 현재에도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Indian Ocean 한가운데 위치한 Diego Garcia 기지는 언론과 국제 감시기관의 접근이 전면 차단된 채 운영된다. 미국 정부는 수년간 어떠한 피의자도 이 기지에서 수용하거나 이송한 적 없다고 공식 부인했지만, 2008년 영국 외무장관 David Miliband는 비밀 압송 항공기가 이 기지를 경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UN 고문방지 특별보고관이었던 Manfred Nowak은 이 기지 주변 해역에서 운영된 선박들이 비밀 구금과 고문에 활용됐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 섬의 원주민 Chagossians는 1960년대 기지 건설을 위해 강제 추방됐고, 미국은 영국에 1400만 달러를 비밀리에 지불했다. 추방의 실무를 책임졌던 영국 외무부 관리 Anthony Stephens는 1970년 내부 메모에 이것이 “변명할 수 없는 인권 침해”였다고 기록했지만, 이 기록은 비밀에 부쳐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기밀 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됐다. 이 기지는 현재 16개의 군사 지휘 체계를 수용하며 위성 추적, GPS 제어, 핵잠수함 운용을 담당한다. 그리고 인도양 해저에는 수십 년간의 측량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 분류되지 않은 빈 바다를 수십 년간 이 규모로 조사한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Gulf of Cambay의 수중 구조물과 Diego Garcia의 해저 측량은 같은 인도양 위에 있지만, 이 둘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설명하는 공식적인 시도는 없다. 앞에서 본 흐름과 다르지 않다. 발견이 나오고, 반박이 붙고, 접근은 제한되고, 시간이 지나면 일부만 남는다. 이 방식은 개인 간의 대화에서부터, 역사적 발견, 군사적 운영까지 같은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패턴을 읽는 능력이다. 누군가 말해줘서가 아닌, 스스로 보는 순간, 더 이상 던져진 소음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
한국어
7
8
41
1.3K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트럼프가 미국을 “God” 아래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을 때, 특정 종교 집단은 일제히 환호했다. 그러나 그 “신”은 누구이며, 그 존재를 정의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인구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은 즉각 “악마의 언어”가 되지만, 자신들이 설계한 교리를 따르지 않으면 영원한 불지옥에 떨어진다는 협박은 “성스러운 진리”로 통용된다. 이 압도적인 인지적 비대칭 자체가 이미 거대한 통제 구조의 민낯을 드러낼 뿐이다. 흔히들 말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 논의 또한 철저히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특정 신이나 종교를 비난하고자 하는 글이 아닌, 그것들을 무기로 모순만으로 둘러싸인 인간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이 동시에 찬양하고 있는 Elon Musk, Donald Trump 같은 인물들 또한 Antichrist가 된다. 이 인물들은 “구원자”, “변화를 가져올 인물”, “진실을 드러낼 존재”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실제로는 이런 레이블링 아래 전혀 다른 이해관계와 권력 구조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데이터, 인프라 같은 영역에서 개인의 행동과 선택을 점점 더 정밀하게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가 확장되고 있음에도, 대중은 그 흐름은 보지 않고 인물 자체에 의미를 투사한다. 오히려 이 장치들을 스스로 “혁신”이라 부르며, 자신들이 투자한 주식의 가격을 끌어올려 주는 구세주처럼 찬양할 뿐이다. 이 변화가 완성된 이후, 지금 쥐고 있는 그 숫자들이 어떤 의미로 남게 되는지까지 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정 종교와는 무관한 “Christ Consciousness”의 가치를 겉만 가져와, 그것을 이용해 전혀 다른 목적을 정당화하는 구조일 뿐이다. 그렇다면 매주 교회에 출석해 십일조를 바치고, 정해진 의례를 통해 한 주간의 탐욕을 면죄받으려는 행위는 무엇인가. Christ의 삶과 무관하게 살면서 오직 “형식”만으로 구원을 거래하려는 이 기만적 시스템이야말로 Antichrist가 작동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이다. 이 의례를 관리하는 기관들이 어디에 줄을 대고 있는지는 이미 공개된 장부 속에 기록되어 있다. 미국 최대의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AIPAC은 2024년 선거 사이클에만 45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으며 의회를 통제했다. 이 거대 로비의 핵심 동력은 오히려 유대계가 아닌, 10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Christians United for Israel(CUFI) 같은 복음주의 단체다. 신도들의 순수한 헌금은 “성경적 의무”라는 명분 하에 특정 국가의 군사 작전을 지원하고 이란을 압박하는 로비 자금으로 치환된다. 직접 찾아보시라. IRS에 신고되어 있는 합법적인 “로비 비즈니스”일 뿐이다. 이 정점에서 목사들은 private jet이라는 구름 위의 성좌를 누린다. Kenneth Copeland는 신도들의 고혈로 산 2000만 달러짜리 private jet을 타고 사설 공항과 스키 리조트를 오간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며 벤틀리를 타던 조형기의 서사는 이 구조의 흔한 한국 버전에 불과하다. 이건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구조일 뿐이다. Creflo Dollar는 6500만 달러에 달하는 Gulfstream G650을 사기 위해 신도들에게 “1인당 300달러”라는 구체적인 수금액을 제시했다. 이들에게 물질적 풍요는 신의 은총이며, 가난은 신앙심의 결여일 뿐이다. 이 “번영복음”이라는 기괴한 교리는 신도들이 가난해질수록 목사는 축복받는 착취의 피라미드를 정당화한다. 수십 년간 십일조를 강요하다 최근에야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었다”고 고백한 Creflo Dollar의 사례는 코미디에 가깝지만, 그가 가로챈 수천억 원의 세월은 결코 환불되지 않는다. 이 프레임 밖에서 신을 우주적 에너지로 이해하거나, 명상과 수련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는 즉각 “사탄의 유혹”으로 규정된다. 결국 Antichrist의 범위는 이 폐쇄적인 해석 체계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자유로운 개인”으로 무한히 확장될 뿐이다. 질문을 지우고 복종을 파는 것이 종교가 거대 구조의 부품으로 기능할 때 나타나는 최종 진화 형태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보기는커녕, 자동적으로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차단을 하고 뒤에서 욕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거짓과 사기의 정신승리가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이 구조 속에서 “진짜 인간”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SNS는 내면의 성찰이 아닌, 타인에게 승인받기 위한 “이상화된 persona”를 전시하도록 설계되었을 뿐이다. 디지털 환경은 우리를 연결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가짜 자아 뒤로 우리를 고립시킨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피트니스형”, “영성형”, “전문직형”, “투자자형”, “애국자형” 같은 미리 조립된 정체성을 쇼핑하고, 그 가면 뒤에 숨어 집단적 소속감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점점 자각하는 이들에게 이 연극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된다. 관계에서 마주하는 상대가 고유한 영혼을 가진 존재인지, 아니면 알고리듬이 추천한 정교한 유형물인지가 즉각 파악될 뿐이다. 슬픈 현실은 후자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인구 조정은 악마화하는 자들이 정작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찬양하고, 버스를 타고 온 빈곤한 이들의 돈으로 자신들의 private jet의 연료를 채운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디지털 이미지로 상납한 대중은, 이 거대한 모순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을 향해 집단적인 조롱의 돌을 던지며 스스로의 정신승리를 정당화할 뿐이다. 구조는 이렇게 완성된다. 가장 신성한 곳에서 가장 세속적인 착취가 일어나고, 대중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른다.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며 "정의의 편"에 서 있다는 가짜 위안 속에 오늘도 구조의 연료가 되어 타들어 갈 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AetherialisX@AetherialisX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 삶에서 겪는 자잘한 경험들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흔히 이 플랫폼에서 보이는 행태만 봐도 많이들 느끼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먼저 친한 척 다가오다가도 자신이 생각하는 흐름에 조금이라도 맞춰주지 않으면 갑자기 상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세우고, 자신들만이 믿는 종교에 작은 의문이라도 품는 순간 사탄이니 이단이니 하는 별 천박한 소리를 가져다 붙일 정도로 인간은 아주 얕은 레벨에서조차 철저히 이기적이 된다. 그런데 수경 원의 돈이 움직이고 이 행성의 자원을 다루는 최상위 영역에서는, 누군가가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는가. 일상생활에서조차 길을 걷다가 남을 위해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들이 대다수인 세상이지 않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에 잠식당해 평정심을 잃는 것 또한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다. 패턴들을 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윤곽은 이미 충분히 선명해지고 있을 뿐이다. UN에 가입한 193개국 모두가 2015년 UN 총회에서 “Agenda 2030”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들로 구성된 이 프레임워크는 각국 정책 방향을 동일 축으로 정렬시키는 기준이 되었고, 한 국가도 빠짐없이 전부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구조의 범위를 보여준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폐허 위 재개발, 해안 지구 개발, 인프라 재건, 물류와 에너지 거점 재설계 같은 이야기들이 이미 정책과 투자의 프레임으로 나오고 있다. 전쟁이 단순한 파괴가 아닌, 이후 재건과 개발까지 이어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재건 비즈니스”라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란의 폭격을 방치하고 그 위에 새 인프라를 올리는 흐름은 단순한 결과라기보단, 엘리트들의 “메가시티” 구상을 위한 부지 정리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이미 예고된 순서처럼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다음 단계는 봉쇄다.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2022년 발표한 “석유 소비 절감을 위한 10개 계획”과 이후 에너지 위기 대응 권고안들을 보면 재택근무, 대중교통 이용, 차량 사용 감소, 항공 이동 축소 같은 개인 행동 제한이 핵심으로 반복된다. 2020년 팬데믹 당시 이동 제한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패턴이다. 그때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였고 이번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명분일 뿐, 통제의 문법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이런 권고를 발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private jet을 타고 이동한다. 통제를 요구하는 쪽과 감수하는 쪽이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은 식상할 정도지만, 대중은 그들 중 하나를 골라 "정의로운 영웅"이라 지칭한 채, 모든걸 맡기고 소음에만 하루하루를 소모할 뿐이다. 디지털 ID와 CBDC 논의가 주요 국가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소비와 이동을 조건부로 제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더 이상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권고 한도를 초과하는 순간 결제 자체를 막는 구조 역시 이미 구현 가능하다. 개인의 돈이 개인 것이 아닌 세상의 설계도는 이미 완성 단계에 가깝다. 코로나를 통해 구조는 대중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대한 실험을 끝냈다. “공동의 목적”이라는 프레임 앞에서 대중은 거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상납하고, 그 프레임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스스로 공격하며 구조의 통제를 내부화한다. 미국 의회가 특정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사업 관계 때문에 입을 닫을 뿐이다. 사업관계가 거창해보인다면, 당장 내일 월급을 위해 입을 닫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백신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조차 사회적 관계 앞에서는 침묵하며, 기후변화 담론이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느끼면서도 낙인이 두려워 말하지 못하고, gender ideology가 교육에 반영되는 것에 불만이 있어도 혐오자로 찍힐까 봐 침묵한다. 얼굴 없는 플랫폼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정의로운 척을 하지만, 실상 현실세계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라며 스스로 노예의 챗바퀴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침묵들이 쌓여 구조를 만든다.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앉아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이 상태가 바로 구조가 원하는 최적의 상태다. 여론이라는 감옥의 벽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본의 흐름을 보면 더 명확하다. Lockheed Martin, RTX 같은 방산 기업의 주요 주주에는 BlackRock, Vanguard, State Street 같은 자산운용사가 올라와 있고, 이들은 전 세계 수많은 개인의 연금, ETF, 인덱스 펀드 자금을 운용한다. 결과적으로 수억 명의 개인 자금이 이 구조와 연결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 채 수익률만 확인하고, 그 수익을 자랑하며 스스로 이 구조를 강화시킬 뿐이다. 긴장이 고조될수록 방산 산업의 수익 기대는 올라가고, 무기 산업은 어느 한쪽만 상대하지 않으며 수익이 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다. 개인이 무엇에 투자하느냐는 결국 어떤 세상을 지지하느냐와 연결되고, 자신의 수익률과 욕망을 쫓는 선택이 결국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직접 파괴하는 모순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희생되는 제물에는 자기 자신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은 대부분 망각될 뿐이다. 지금 진행되는 사회 해체 또한 일정한 공식이 존재한다. 남성을 약하게 만들고, 여성을 남성화하며, 교육을 조작의 도구로 삼고, 진실을 공격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가정을 흔들고, 강함을 독성으로 낙인찍으며, 음식을 가짜로 채우는 흐름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남성 테스토스테론 레벨의 장기적 감소 경향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출산율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역사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각각은 독립된 문제처럼 보이지만 방향은 모두 일치한다. 약한 개인과 분열된 가정은 저항하지 못하게 되고, 통제는 이 조건에서 더욱더 완벽하게 작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흐름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음모론자”로 프레임되어 격리될 뿐이다.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은 결코 안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의 책임자였던 Joe Kent는 2026년 사임하며 이란이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 내부 최고 수준 인사조차 공식 명분과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전쟁이 단순한 안보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까지 드러났다. 전쟁은 위협 때문이 아닌 이해관계와 자본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BlackRock 같은 자산운용사는 방산과 재건 양쪽 모두와 연결되어 있기에 폭탄이 떨어질 때와 재건이 시작될 때 모두 돈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개인들이 감당하게 된다. 기름값으로, 장바구니 물가로, 인플레이션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며 개인들의 삶이 압박받는 동안 그들은 더 부자가 될 뿐이다. 영화를 볼 때 대중은 저항하는 자들을 응원한다. 픽션에서는 구조가 보이기 때문에 저항이 자연스럽고 그것을 지지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르다. 같은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고, 픽션이나 가상세계에서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척을 실컷 해보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낙인, 손해, 보복을 두려워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대신 나서주길 바라지만, 막상 나선 자가 있으면 그 깊은 본질을 보려 하기보단 소수가 지지하는 것을 보고는 조롱에 동참한다. 상황에 대한 인지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남들이 조롱하니 같이 조롱해대며 스스로는 “우월하다” 믿고 살아가는 게 현실일 뿐이다. 이 두려움과 망각에 가까운 거짓 우월감이 구조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이 상태가 유지되는 한 구조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개인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에만 이 흐름은 끊어진다. 공개 여론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생을 소음 속에 묻힌 채 스스로 구조를 유지하는 연료로만 살아갈 뿐이다.

한국어
5
7
28
1.7K
Faith
Faith@HisMyrtle·
@AetherialisX I Love Your Authenticity and Audacity. Lastly, INTEGRITY.😄😎👍 Never stop, Instead keep on keeping on.
English
1
0
2
42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The New Workout Plan” - Kayne West, 2004
AetherialisX tweet media
English
2
1
13
475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철인님, 저는 개인적으로 시원한 가을이나 추운 겨울을 좋아해서 봄이 오는것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네요 ㅋㅋ 그래도 철인님께서 이렇게 꽃얘기를 해주시니 저도 다시 한번 더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고싶은 생각이 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철인님도 저도 꽃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하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세월이 남지 않았을까요? 😉 언제나 건강 잘 챙기시고, 어떤 것에도 굴하지 말고 앞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시길 저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한국어
1
0
3
58
철인 Yoon Again
철인 Yoon Again@habanero0301·
Aetherialis님 한국은 봄이 찾아와서 나무에 꽃이 피고 있습니다. 좀아까 보영님께서도 꽃인사를 해주셔서 저도 봄인사를 드려봅니다. 꽃 얘기하니까 이제 진짜 나이가 들려나봐요😂 이러다 엄마아빠 카톡처럼 이상한 시 적혀있는 꽃사진보내고 그런 감성으로 변하는 걸까요 그건 아직 싫은데 ㅋㅋㅋ 암튼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봄같이 화창한 하루 보내세요! 🫶☝️
한국어
1
0
4
84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 삶에서 겪는 자잘한 경험들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흔히 이 플랫폼에서 보이는 행태만 봐도 많이들 느끼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먼저 친한 척 다가오다가도 자신이 생각하는 흐름에 조금이라도 맞춰주지 않으면 갑자기 상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세우고, 자신들만이 믿는 종교에 작은 의문이라도 품는 순간 사탄이니 이단이니 하는 별 천박한 소리를 가져다 붙일 정도로 인간은 아주 얕은 레벨에서조차 철저히 이기적이 된다. 그런데 수경 원의 돈이 움직이고 이 행성의 자원을 다루는 최상위 영역에서는, 누군가가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는가. 일상생활에서조차 길을 걷다가 남을 위해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들이 대다수인 세상이지 않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에 잠식당해 평정심을 잃는 것 또한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다. 패턴들을 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윤곽은 이미 충분히 선명해지고 있을 뿐이다. UN에 가입한 193개국 모두가 2015년 UN 총회에서 “Agenda 2030”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들로 구성된 이 프레임워크는 각국 정책 방향을 동일 축으로 정렬시키는 기준이 되었고, 한 국가도 빠짐없이 전부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구조의 범위를 보여준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폐허 위 재개발, 해안 지구 개발, 인프라 재건, 물류와 에너지 거점 재설계 같은 이야기들이 이미 정책과 투자의 프레임으로 나오고 있다. 전쟁이 단순한 파괴가 아닌, 이후 재건과 개발까지 이어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재건 비즈니스”라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란의 폭격을 방치하고 그 위에 새 인프라를 올리는 흐름은 단순한 결과라기보단, 엘리트들의 “메가시티” 구상을 위한 부지 정리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이미 예고된 순서처럼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다음 단계는 봉쇄다. 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2022년 발표한 “석유 소비 절감을 위한 10개 계획”과 이후 에너지 위기 대응 권고안들을 보면 재택근무, 대중교통 이용, 차량 사용 감소, 항공 이동 축소 같은 개인 행동 제한이 핵심으로 반복된다. 2020년 팬데믹 당시 이동 제한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패턴이다. 그때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였고 이번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명분일 뿐, 통제의 문법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이런 권고를 발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private jet을 타고 이동한다. 통제를 요구하는 쪽과 감수하는 쪽이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은 식상할 정도지만, 대중은 그들 중 하나를 골라 "정의로운 영웅"이라 지칭한 채, 모든걸 맡기고 소음에만 하루하루를 소모할 뿐이다. 디지털 ID와 CBDC 논의가 주요 국가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소비와 이동을 조건부로 제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더 이상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권고 한도를 초과하는 순간 결제 자체를 막는 구조 역시 이미 구현 가능하다. 개인의 돈이 개인 것이 아닌 세상의 설계도는 이미 완성 단계에 가깝다. 코로나를 통해 구조는 대중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대한 실험을 끝냈다. “공동의 목적”이라는 프레임 앞에서 대중은 거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상납하고, 그 프레임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스스로 공격하며 구조의 통제를 내부화한다. 미국 의회가 특정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사업 관계 때문에 입을 닫을 뿐이다. 사업관계가 거창해보인다면, 당장 내일 월급을 위해 입을 닫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백신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조차 사회적 관계 앞에서는 침묵하며, 기후변화 담론이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느끼면서도 낙인이 두려워 말하지 못하고, gender ideology가 교육에 반영되는 것에 불만이 있어도 혐오자로 찍힐까 봐 침묵한다. 얼굴 없는 플랫폼에서는 그 어느 누구보다 정의로운 척을 하지만, 실상 현실세계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라며 스스로 노예의 챗바퀴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 침묵들이 쌓여 구조를 만든다.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앉아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이 상태가 바로 구조가 원하는 최적의 상태다. 여론이라는 감옥의 벽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자본의 흐름을 보면 더 명확하다. Lockheed Martin, RTX 같은 방산 기업의 주요 주주에는 BlackRock, Vanguard, State Street 같은 자산운용사가 올라와 있고, 이들은 전 세계 수많은 개인의 연금, ETF, 인덱스 펀드 자금을 운용한다. 결과적으로 수억 명의 개인 자금이 이 구조와 연결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 채 수익률만 확인하고, 그 수익을 자랑하며 스스로 이 구조를 강화시킬 뿐이다. 긴장이 고조될수록 방산 산업의 수익 기대는 올라가고, 무기 산업은 어느 한쪽만 상대하지 않으며 수익이 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다. 개인이 무엇에 투자하느냐는 결국 어떤 세상을 지지하느냐와 연결되고, 자신의 수익률과 욕망을 쫓는 선택이 결국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직접 파괴하는 모순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희생되는 제물에는 자기 자신 또한 포함된다는 사실은 대부분 망각될 뿐이다. 지금 진행되는 사회 해체 또한 일정한 공식이 존재한다. 남성을 약하게 만들고, 여성을 남성화하며, 교육을 조작의 도구로 삼고, 진실을 공격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가정을 흔들고, 강함을 독성으로 낙인찍으며, 음식을 가짜로 채우는 흐름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남성 테스토스테론 레벨의 장기적 감소 경향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출산율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역사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각각은 독립된 문제처럼 보이지만 방향은 모두 일치한다. 약한 개인과 분열된 가정은 저항하지 못하게 되고, 통제는 이 조건에서 더욱더 완벽하게 작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흐름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음모론자”로 프레임되어 격리될 뿐이다.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은 결코 안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의 책임자였던 Joe Kent는 2026년 사임하며 이란이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 내부 최고 수준 인사조차 공식 명분과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전쟁이 단순한 안보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수준까지 드러났다. 전쟁은 위협 때문이 아닌 이해관계와 자본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BlackRock 같은 자산운용사는 방산과 재건 양쪽 모두와 연결되어 있기에 폭탄이 떨어질 때와 재건이 시작될 때 모두 돈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개인들이 감당하게 된다. 기름값으로, 장바구니 물가로, 인플레이션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며 개인들의 삶이 압박받는 동안 그들은 더 부자가 될 뿐이다. 영화를 볼 때 대중은 저항하는 자들을 응원한다. 픽션에서는 구조가 보이기 때문에 저항이 자연스럽고 그것을 지지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르다. 같은 구조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고, 픽션이나 가상세계에서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척을 실컷 해보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낙인, 손해, 보복을 두려워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대신 나서주길 바라지만, 막상 나선 자가 있으면 그 깊은 본질을 보려 하기보단 소수가 지지하는 것을 보고는 조롱에 동참한다. 상황에 대한 인지조차 하지 못하면서,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남들이 조롱하니 같이 조롱해대며 스스로는 “우월하다” 믿고 살아가는 게 현실일 뿐이다. 이 두려움과 망각에 가까운 거짓 우월감이 구조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이 상태가 유지되는 한 구조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개인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에만 이 흐름은 끊어진다. 공개 여론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생을 소음 속에 묻힌 채 스스로 구조를 유지하는 연료로만 살아갈 뿐이다.
한국어
4
4
25
2K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A more direct projection of Neuralink itself can be seen in Black Mirror Season 1 Episode 3, “The Entire History of You”, and Season 4 Episode 2, “Arkangel”.
AetherialisX tweet mediaAetherialisX tweet mediaAetherialisX tweet mediaAetherialisX tweet media
English
1
0
10
295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Starting to see more posts about Neuralink being implemented in patients, where they are able to play video games afterwards using their minds and all. And of course the comments are full of “Elon Musk is a god” type reactions. As mentioned few times in earlier posts, this is how it always comes. Something benevolent, a breakthrough, or a solution. Framed as helping patients, improving lives, positioned as pure innovation. Control never shows up looking like control. It comes disguised as convenience, as progress, as something you would seem irrational to even question. By the time it settles in, it is already normalised. Seems like we are already walking into the world depicted in Black Mirror Season 1 Episode 2, “Fifteen Million Merits”. The strange part is not that it is happening. It is that people are welcoming it while wasting so much time and energy on noise.
AetherialisX tweet mediaAetherialisX tweet mediaAetherialisX tweet mediaAetherialisX tweet media
English
4
3
14
1.8K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habanero0301 Religious obedience follows authority, whether right or wrong. Spiritual integrity follows what is right, regardless of authority.
English
1
0
3
102
철인 Yoon Again
철인 Yoon Again@habanero0301·
+ 자기도 그저 특정 종교 선택한 신도일뿐이면서, 비종교인 혹은 생각이 다른 신도 앞에서 꺼드럭대며 지말만 다 옳고 질문하면 사탄 이단 취급하는 인간들도 사이비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종류 불문.
비캬캬캬🧠 뇌과학 무의식@0801vika

사이비 구분하는 법. 신격화 : 지도자를 마치 인류를 구원할 영적 지도자로 여기는 순간,, 아시죠? 부처님도 "자신 안의 등불을 따라가라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고 그안의 등불을 따라가세요. 타인에게 의지하는 순간, 자신의 신념을 바치는 꼴입니다.

한국어
3
0
7
257
Faith
Faith@HisMyrtle·
@AetherialisX 있죠, 정말 궁금코, 몰라서 여쭤보는 거예요.🤔 맞아요, 저 무식해서 그래요. What does that index finger exactly mean?! Huh?! I'm really wondering.
한국어
1
0
1
39
AetherialisX
AetherialisX@AetherialisX·
찢재명을 욕하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 까기 시작하는 건 도움이 안 되는 걸 넘어, 애국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대놓고 일부러 그러는 반대 의도를 가진 자들에 가깝다. 팩트만을 가지고 제대로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들이 보인다. 거짓 비판이 역효과인 이유는 구조의 문제에 있다. 없는 말로 쌓은 비판은 한 번 들키는 순간 전체가 뒤집히고, 팩트가 섞여 있다 한들 같이 묻혀버릴 뿐이다. 그 한 가지가 나머지 모두를 무력화시키게 되고, 이건 언제나 전략으로 사용되기에, 가짜 비판을 양산하는 쪽이 오히려 그 전략에 먹이를 공급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찢재명 욕을 지어내는 사람들이 단순한 무지에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진영을 소모시키려는 건지 구분은 어렵지만, 결국 둘 다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끼리 싸우는 데 에너지가 소진되고, 진짜 문제를 볼 여력이 없어진다. 제대로 된 대통령도 아닌 호소인 따위에게 비판할 수 없는 걸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 아닌가. 근데 그걸 놔두고 지어낸 이야기로 채우기 시작하면, 진짜 문제들이 소음 속에 사라진다. 소음이 쌓이는 동안 진짜 문제는 시효가 지나고, 논의할 타이밍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다. 무지든 의도든 효과는 같을 뿐이다. 이 설계는 현재 더 거대한 피의 현장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금 한국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 구조가 훨씬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을 시작했고,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언론이 그걸 보도하자 반역죄로 기소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란이 AI로 만든 영상들, 테헤란에서 미군 특수부대가 억류된 장면, 이스라엘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장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CVN-72)이 피격되는 장면들을 트럼프는 전부 가짜라고 규탄했다. 미국은 더 나아가 선전이 아닌 실전에 AI를 사용 중이다. 미군은 Project Maven을 포함한 다양한 AI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고, 방대한 데이터를 수초 안에 분석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다. 그 분석의 결과가 뭔지 알고 있나. 전쟁 초반 2월 28일, 이란 남부 Minab의 여학생 학교가 타격 목표로 지정됐다. 최소 175명이 죽었고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순수한 어린애들이 죽은 걸 보면서도 무작정 눈감고 응원이 가능한가. 군사 기지였던 건물이 학교로 바뀐 걸 시스템이 반영하지 못한 구식 데이터를 사용한 것이 이유다. 트럼프는 처음에 이란이 자국 어린이들을 죽였다고 주장했고, 당연히 증거는 없었고, 나중에는 잘 모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직접 타임라인대로 찾아보시라. 175명의 순수한 어린 영혼들은 도대체 무슨 죄인 것인가. 그들의 인생은 도대체 왜 그렇게 먼지보다 못하게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정말 당신들의 눈에는 진정한 정의로 보이는가. 반역이라는 단어가 나온 맥락을 보면 더 선명해진다. WSJ이 사우디 프린스 술탄 기지에 주둔한 미군 공중급유기 5대가 피격된 사실을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것 또한 이란의 AI 가짜 선전물 목록에 끼워 넣으려 했지만 결국 사실로 확인됐다. 그냥 자기에게 불리한 뉴스였을 뿐이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보도를 가짜로 분류하고, 그 가짜를 퍼뜨리는 행위를 반역으로 규정하면, 불리한 현실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반역이 된다. 진실이 권력의 효용에 의해 정의되는 순간, 사실 관계는 의미를 잃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보이는 장면이 있다. 다카이치 총리와 트럼프의 면담 과정에서 Pearl Harbour 관련 질문이 나오며 영상이 시끄럽게 돌아다녔다. 그 장면에 대해 자칭 “우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옹호하기 위해 일본 기자를 향해 “저런 질문은 왜 하는 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고, 그 댓글들이 높은 공감을 얻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질문은 진실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 자체를 문제 삼는 순간,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답에 맞춰 생각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경제 쪽은 더 냉정하게 보인다. 저번 글들에 언급한 대로, 이란이 Hormuz 해협을 막았고, 전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역사적으로 하루 평균 138척이 통과하던 이 수로는 지금은 하루 다섯 척도 안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3월 초에는 단 한 척의 유조선도 통과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연루된 선박을 타격 대상으로 선언했고, 전쟁 시작 이후 18척 이상의 상선이 공격받았다. 결과적으로 보험료가 폭등하면서 선사들이 자발적으로 항로를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봉쇄는 정작 이란만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가 이 전쟁으로 이익을 보고 있다. Hormuz 공급이 막힌 결과로 러시아 석유가 유럽과 중국에 더 중요해졌다. 트럼프 행정부 재무장관 Scott Bessent는 유가 상승을 명분으로 러시아산 석유 선적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했다. Bessent는 이 조치가 러시아에 유의미한 재정적 혜택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럼 제재는 애초에 왜 한 것이 되는 것인가. Kremlin은 이 결정을 환영하며 추가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중이다. 러시아가 유럽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러시아의 제재를 풀어준 상황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해협 통과를 사실상 허용받고 있다. 공급 다변화도 해놨고, 전략 비축량도 있고, 석유 의존도 자체가 낮다. 중국 외교부는 해협의 안전과 안정은 국제 사회 전체의 이익이라고 말하면서도 군함은 보내지 않았다. 피해를 모두 받는 건 나머지 국가들일 뿐이다. 전쟁 시작 이후 브렌트유는 70달러 초반에서 119달러대까지 급등했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역시 전쟁 시작 이후 갤런당 약 80-90센트 이상 상승하며 소비자 부담을 크게 끌어올린 상태다. 석유는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바로 줄지 않는다. 출근을 해야 하고 물류가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급 부족이 해소되거나, 수요가 결국 20% 이상 떨어질 때까지는 유가는 계속 오를 뿐이다. 전체 인구의 20%가 이동을 포기할 만큼 기름값이 올라야 그제서야 상승세가 꺾일 것이다. Analyst 애들은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얘네들 전망이 전혀 의미 없다는 것을 전제한들, 결과적으로는 트럼프 진영의 석유 재벌들에겐 좋은 소식이 된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에겐 아니다. 트럼프는 전쟁 초반 미 해군이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호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에너지장관 Chris Wright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만 말하는 중이다. 보호가 미뤄지는 와중, 트럼프는 유조선 선원들에게 겁내지 말고 그냥 지나가면 된다고 말만 하는 중이다. 그러고는 1년 동안 모욕하고 협박하고 고립시켜 온 동맹국들에게 해협 통제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호주, 프랑스, 영국. 떠돌아다니는 가짜뉴스들과는 다르게 이 나라들은 전부 결과적으로 거절했다. 직접 스스로 찾아보시라. 그렇다면 이 전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영토와 자원, 무기 판매, 체제 교체, 분열의 영구화, 그리고 그 분열을 이용한 사회 재편의 패턴은 또다시 반복되려 한다. 역사가 그걸 증명했고, 이란 전쟁 또한 예외가 아닐 뿐이다. 코로나와 엡스타인 파일 이후, 이젠 이 플랫폼에서조차, 물론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고 작년에 하던 소리나 하며 팔로우나 라이크 마이닝하는 부류들을 제외하고는, 참 많은 사람들이 전례 없이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 소수가 구조를 통해 다수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중으로 눈에 띄게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현재의 이 구조를 가속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일 뿐이다. 에너지 위기가 오면 디지털 화폐가 필요해지고, 이주가 폭증하면 디지털 ID가 필요해지고, 치안이 흔들리면 AI 감시가 정당화된다. 위기가 명분을 만들고, 명분이 통제를 정당화한다. 911 테러 이후 Patriot Act로 통제가 강화되는 것과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Hormuz가 막히고, 유가가 두 배가 되고,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금융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위의 목표들로 가는 과정과 시간은 훨씬 짧아질 뿐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진영 논리로 싸우는 것은 이 구조 안에서 소모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난 문재앙, 찢재명을 넘어 국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후 대통령 놀이에 신나서 그 와중에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이라는 기념시계나 만들던 기생충들을 그 어느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편을 나누는 것 자체가 설계일 뿐이다. 그리고 이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구조는 조용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의 이 모든 소음과 전쟁에서 항상 지는 쪽은 결국 한쪽일 뿐이다. Fcking civilians and young innocent children and their future. 윤석열 대통령은 돌아오신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전체 구조를 보지 못한 채 소음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이후에 오는 폭풍에 맞서 싸우기는 너무 힘들어 보인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낫고 싶은 마음. 고작 말싸움을 이겨 느껴지는 하찮은 우월감. 아직도 뭐가 뭔지를 모르는 자들을 향해 속으로 갖고 있는 우월감 같은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을 진심으로 더 많은 이들이 버리길 부탁한다. 동화 속의 식상한 얘기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만 이 모든 것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
한국어
5
6
23
871
Boyoung ボヨン
Boyoung ボヨン@Yujoo1188·
『소수가 구조를 통해 다수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중으로 눈에 띄게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현재의 이 구조를 가속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일 뿐이다.』 얼마나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게 너무나 보여서 요즘은 정보를 보면 가끔 숨이 막힐 때도 있습니다. 엡스타인 파일 등 여러 정보로 밝혀진 비상식, 비도덕, 비윤리적인 행태를 일삼아 온 엘리트들은 오늘도 여전히 그들끼리 하하호호 즐기며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이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뭉칠 수 있도록 진짜 진실을 알리고 있는 동료가 공권력으로 인해 탄압 받고, 고통 받는 모습을 본 오늘은 정말 이 세상의 부조리에 개탄스러움까지 느꼈습니다. 그런 중의 AetherialisX님의 이 글이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한국어
1
0
6
167
철인 Yoon Again
철인 Yoon Again@habanero0301·
‘질문은 진실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명언이십니다. 트럼프 대통령 아니, 윤석열 대통령께서 오셔도 이러한 질문을 피하거나 가려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지자라면, 오히려 들어온 질문에 귀기울여 지지하는 대통령의 대답에 관심을 가져야겠죠. 막을 게 아니라. 수준 낮은 정치인을 만들고 있는 것은 그 정치인 성향이 아니라, 질문조차 못하게 막으려는 무식한 국민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과 민주당을 내로남불이라고 욕하면서,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내로남불 중인 국민들. 광신도가 진짜 문제였음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더 기가막힌 것은 그 누구보다 cbdc 등 통제 감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계정들 조차 특정 종교 앞에서, 트럼프 이름 하나에 상당히 내로남불 폐쇄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유를 지키고 싶은 걸까요 아님 그저 빠수니짓을 하는 걸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 정말 놀랐습니다. 대한민국이 초위기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개개인의 호불호가 우선이 되는 현실에 참 씁쓸한 하루입니다. 본인들 하는 짓이 제일 중국 공산당 무슬림(?)같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럴리 없겠지만..🥲) Aetherialis님, 오늘 대한민국 날씨만은 참 맑네요🥹 어디 계시든 맑고 화창한 하루 보내세요 🥰❤️☝️
GIF
한국어
1
0
5
316
Faith
Faith@HisMyrtle·
@AetherialisX Long time no see.ㅋ👍😎 Hope you're doing well. Since f*, ma favorites. I'm glad that You know how to compliment. Don't be so hard on yourself. You're boots on the ground.
English
1
0
2
64
Ethan
Ethan@ArkheSource·
@AetherialisX ❤️🫡☝️ P.S. 이미지는 어떤 연결을 찾을 수 있으실 것 같아서 공유해요.
Ethan tweet media
한국어
1
0
6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