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itlenmiş Tweet
알배추Cabbage
26.4K posts


@CaB7bage0 진짜 별로 아니었어 키도 크고 약간 수줍어 하면서 진짜 괜찮게 생겼었어!! 그래서 죄송해요 그러길래 아니애요!! 장생가셨어요!! 요자친구 금장 생기실거애요!! 그랬어 ㅋㅋㅋㅋㅋㅋㅋ
한국어

아 아 죄송합니다 그러길래 아니애요 잘생기샸어요 여자친구 금장 생기실겁니다 라고 해줬어
쏠🫶🏻Sol@B_ttttttt_s
야 나 방금 22살 존잘 남자애한테 자기 이상형이라고 자기 스타일이라고 번호 따였다 3n 살이라고 하고 보냈다야 이런 일이 생기냐 할미 오늘 기분 째지는걸 🥴
한국어

알배추Cabbage retweetledi
알배추Cabbage retweetledi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내가 20살 초반에 추운 겨울 날 우리가족이 다 길바닥에 나앉은 일이 있었다.
엄마가 돈놀이를 한답시고 땡빚을 내서 여기저기 빌려줬었는데 채무자들이 대부분 잠수를 탔다.
결굴 우리 가족은 빚더미에 올랐고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그때 빨간딱지가 붙기전 아빠가 유일하게 다른 곳으로 빼돌린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 컴퓨터였다.
고3때 작가가 된 나는 당시에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자식의 일자리는 지켜주려 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시골 고모댁에 얹혀 살았다.
정말 깡시골의 기와지붕 얹어서 창호치 바른 문이 달린 고택이었다.
잘때는 거실 가운데에 커튼을 치고 한쪽은 고모에 가족, 한쪽은 우리 가족이 누워 잤다.
그 집에 간 첫날, 두꺼운 이불을 엎었는데 바람이 너무 찼다.
너무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혹여 내 울음소리가 부모님의 귀에 들어갈까봐 이불을 꽉 깨물었다.
뺨을 타고 내려간 눈물이 이불에 닿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살짝 얼더라.
다음날 부터 난 고모네 집 창고에서 글을 썼다.
거기는 난방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하여 아빠에게 난로 좀 구해달라 해서 거기에 손을 녹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당시 나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었다.
밤 9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근무를 했었던가?
편의점 근처에는 아빠가 경비로 일하는 학교가 있었다.
그때 아빠의 월급은 통장에 꽂히는 순간 전부 차압에 들어가 손도 대지 못했지만, 그래도 돈을 갚아야 하니 일을 하셨다.
나는 그 학교로 가서 경비원 숙직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시골 고모네 집에로 돌아와 오후 4시까지 글을 썼다.
네 시간 정도 눈을 부치고 일어나면 다시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생활의 반복.
그렇게 한달 반 정도가 흘렀을 때.
내가 소설 사이트에 연재하던 글의 계약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계약금으로 500만원을 받아 엄마에게 전부 줬다.
엄마는 그 돈으로 허름한 아파트에 월세를 얻었고, 우리 가족은 고모댁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그 힘든 가난의 터널을 지나왔을 때, 내가 항상 머릿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었다.
'내게는 Pen과 Fan이 있다.'
한국어
알배추Cabbage retweetle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