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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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번역과 그록 번역. 무조건 이스라엘에 우호적으로 번역하라고 되어있는듯.

조선 시대 한반도에는 약 600여 종의 전통주가 있었다. 집집마다 자기 가문의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 문화 덕분. 서울의 춘주(春酒), 평양의 벽향주(碧香酒), 김제의 청명주(淸明酒), 충남의 소곡주(素麯酒) 같은 지방 명주(名酒)들이 유명했고, 배꽃 필 때 빚는 이화주(梨花酒), 진달래 술 두견주(杜鵑酒), 100일 숙성하는 백일주(百日酒) 같은 시적인 술들도 있었다. 그러나 1907년 통감부 주세령(酒稅令), 1916년 조선총독부 조선주세령(朝鮮酒稅令)으로 가정에서 술을 빚는 행위가 금지되었고, 이 금지는 놀랍게도 1995년까지 유지되었다. 일제 36년 + 해방 후 50년 = 약 88년간의 가양주 금지. 6, 70년대까지도 세무서가 직접 시골을 돌며 술 항아리를 깨뜨리는 식으로 단속했다. 600여 종 중 대부분이 제조법과 함께 실전(失傳)된다. 같은 시기 일본의 사케가 1,200여 양조장의 다양성을 지키는 동안, 한국은 600여 종의 전통주를 잃었다. 그리고 사라진 전통주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박정희의 작품인 「소주」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쌀 막걸리와 증류식 소주가 금지되었고, 분식장려운동(粉食奬勵運動)으로 밀가루 음식이 권장되던 시대, 박정희는 수입 주정(酒精)에 물을 탄 희석식 소주를 대체주로 허용한다. 증류주 특유의 곡물 향이 없고, 알코올의 쓴맛이 그대로 혀에 박히는 그 술. 그런데 그 거친 쓴맛이 매콤한 한식과 묘하게 어울려서, 소주는 한국인에게 애증(愛憎)의 술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