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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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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라는 건 대개 그렇다. 고급 브랜드의 최신형이라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값어치 또한 높아진다. 그러나 ‘가치’라는 것은 끝내 사용하는 사람이 매기는 것. 그 기준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천천히 자라난 것일 때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불필요한 것들은 가능한 한 덜어내고, 애정이 깃든 물건들은 손을 봐서라도 다시 쓰는 쪽을 택한다. 몇 번이고 사포질을 하고, 덧칠을 거듭한 책상 위에 앉아 있노라면 새것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시간의 감각이 손끝에 맺힌다. 이쯤 되면 스스로를 십선비라 불러도 괜찮겠다 싶다. 쓸데없는 데에까지 정성을 들이는 고집스러운 취향일지도.
새것과 최신으로만 빼곡히 채워진 세계보다, 낡고 투박하더라도 내 삶과 시간을 함께 통과해 온 물건들에 더 깊은 이야기가 깃든다고 믿는다.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풍경은, 곧 나라는 사람의 흔적이자 앞으로 나아갈 궤적일 것이다. 우주 또한 그 궤적을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손끝에 스며든 시간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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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mel____ 얼마 남지 않은 우주세기 간다므에 감사한 마음으로 극장에 가겠습니다…만, 저 개찌질이 하사웨이 노아는 영 정이 가질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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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서일까.
이제는 별일 아닌 순간에도 마음이 쉽게 애잔해진다. 한때는 스쳐 지나가던 이름들이, 어느 날 문득 떠올라 오래 머문다. 굳이 자주 보지 않아도, 연락이 뜸해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되는 사람들. 그 조용한 그리움이 나를 조금씩 무겁게 만든다.
카카오톡에 뜬 생일 알림 하나를 차마 외면하지 못해 케이크를 보냈다. 손끝으로 몇 번 눌러 전한 축하였지만, 보내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는 이 사람을 이렇게 가볍게 대하고 있었던 걸까. 고작 이 정도의 방식으로 안부를 대신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사실은 그보다 훨씬 깊은 마음이었을 텐데. 함께 보냈던 시간과 웃음, 그 안에 스며 있던 애정은 이모티콘 하나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 밥벌이와 물리적인 거리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워, 나는 매일 조금씩 관계에서 물러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스스로 묻게 된다. 나는 사람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나. 혹은,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속이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나.
뻔뻔하지만, 이렇게라도 전하는 마음이 닿기를 바란다. 늘 고맙고, 늘 미안하며, 여전히 보고 싶다는 이 단순한 감정이 너무 늦지 않게 전해지기를. 선뜻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자주 주저앉는 나의 연약함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주기를.
세월이라는 장사 앞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어도, 단 하나—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끝내 변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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