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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쌍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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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쌍봐
@PLEdelden
동구권 군품과 상훈을 수집합니다. 냉전기 국가보안기관과 훈장학(Phaleristics)에 관심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Katılım Kasım 2021
445 Takip Edilen785 Takipçiler

동일인의 대독승전메달 증명서(1946)를 추가로 입수했습니다.

쌍쌍봐@PLEdelden
2. 소련 국가보안부(MGB) 요원 신분증. - 국가보안 소령 블라디미르 판텔레이모노비치 모스투노프 - MGB 르비우 철도보안국 소속 선임 작전담당관 원주인인 모스투노프는 NKVD 경찰에서 복무한 후, 전후 MGB로 편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단에는 신분증 소지자가 총기 보관 및 휴대 권한을 갖는다고 적혀 있으며, MGB 르비우 철도보안국장이 서명했습니다. 사진에는 보안기관용 김나스초르카 전투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보안기관 신분증은 원칙적으로 회수 대상이었기 때문에, 흔히 보이는 물건은 아닙니다.
한국어

CoDシリーズにそのようなことは期待してはいけない
・1942年なのに1943年式制服を着ている
・勲章に対して階級が低過ぎ
・背嚢が戦後のタイプ
・1942年なのにベルリン占領記章を付けている軍人がいる
・モシン小銃が帝政時代の名称の3ラインになっている
・1942年にT-34-85中戦車が存在する



쌍쌍봐@PLEdelden
콜옵 콜드워... 재밌게 플레이하긴 했지만, 군복 고증은 많이 아쉬웠습니다. KGB라면 군복 병과색은 붉은색이 아닌 파란색이어야 하고, 경비병의 견장에도 《СА》가 아닌 《ГБ》가 적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차르코프는 장군임에도 대령 정복을 입힌 것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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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рден 《мужества》를 수여한 것 같네요. 일반적인 경우처럼 수훈 추천서가 작성됐을지도 궁금해집니다.
朝鮮人民軍bot@KPA_bot
KCNAの方。また、参戦烈士たちにささげるロシア連邦の国家表彰、大統領政令が努光鉄国防相に渡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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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르크는 1940-50년대의 무장집단 소탕작전에도 직접 참가했는데, 리하르트 배히가 이끄는 반소 유격대를 섬멸하기 위해 조직된 12명의 MGB 작전조의 일원으로서 투입되었습니다.
먼저 보안군은 유격대에 협력하던 현지 농부 요셉 피홀란을 체포한 후 전기고문과 구타를 가했고, 반군의 은신처인 푸틀리팔루 벙커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벙커에서 3시간에 걸쳐 반군과 보안군의 교전이 벌어졌고, 결국 벙커에 있던 8명의 유격대원은 전부 사살되었습니다. 작전 종료 후 MGB는 시신을 유가족에 인계하지 않고 구덩이에 암매장했습니다.
보안군에게 살해당한 유격대의 유해는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에스토니아 보안국과 사학자들의 조사로 발굴되어 묘역에 안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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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영화 제작자인 레인 예를릭은 KGB로부터 체키스트와 "숲의 형제들"과의 전투를 다룬 영웅적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고 요청받았습니다. 예를릭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 KGB에서 고문으로 추천한 발터 뮈르크 대령은 나를 만나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할 것인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그 후 나는 단 한 번, 어떤 이름을 확인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마지못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나는 KGB의 사주를 받아 시나리오를 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셀갈 대령에게 그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만큼 어리석어서도 안 됐다. 어떻게든 교묘히 빠져나가야 했다.
나는 이제 막 1년 반 동안 이어진 고된 시리즈 작업을 마친 참이라, 가을에 곧바로 같은 주제의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푹 쉬십시오. 그리고 시작할 준비가 되면 우리에게 알려주시오."라며 동의했다. 1년이 지났다. 나는 그들에게 전화하지 않았고, 그들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던 찰나, 여름 휴가 직전 다시 탈린에 갈 일이 생겼다.
그곳에서 셀갈 대령은 내가 1년 동안 충분히 쉬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니, 이제 사건 서류들을 읽기 시작할 때라고 못 박았다. 나는 곧 다시 휴가가 시작된다고 답했다. "어디 먼 곳으로 가십니까?" 그가 물었다. 아내와 함께 바이칼 호 너머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너무나 솔직하게 대답해 버렸다. "아니요, 에스토니아에 있을 겁니다. 주로 타르투에 있겠지요."
그러자 그는 서류들을 타르투 KGB 지부로 보낼 테니, 시간이 날 때마다 가서 읽으라고 했다. 물론 내 안에서도 그 서류들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숲의 형제들"의 심문 기록을 영영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6년 뒤 에스토니아가 다시 독립하여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는 1986년 여름의 나로서는 감히 희망조차 품지 못했던 일이었다. 다만 나는 타르투로 배달된 서류 뭉치들을 다 읽고 나면, 이 일에서 깔끔하게 손을 뗄 명분을 분명히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뿐이다.
그 후 3주 가까이 서류를 읽으러 다녔다. 그 안에는 버루(Võru) 지역 유격대원들의 재판 기록이 담겨 있었는데, 그중에는 내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장소들도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겪고 있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눈앞의 서류 페이지에 적힌 사건과, 며칠 전 읽었던 다른 내용이 환상처럼 겹쳐 보였다.
며칠간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발터 뮈르크 대령이 진행 상황을 확인하러 타르투로 찾아왔다. 일이 별로 진척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그는 이런 종이 뭉치나 뒤지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본인이 그 사람들을 직접 심문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자기에게 묻고, 이제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 가지 더 확인해 볼 것이 있다며 사흘의 시간을 달라고 청했고, 그는 내게 사흘의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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