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헌 | Kim Do Heon@zenerkscd
블랙핑크 코첼라.
코첼라 헤드라이너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이런 피상적이고 가벼운 접근이 나올 수가 없다. 블랙핑크가 예쁘고 유명한 걸 보여주는 무대여서는 안됐다. 케이팝 최초, 그것도 아시아 여성 그룹으로 미국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지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서 뽑아낼 수 있는 서사가 얼마나 많나.
어제 중남미 아티스트 최초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배드 버니는 25곡 셋리스트에 라틴 음악의 역사 강의부터 고국 푸에르토리코의 열악한 상황을 비추는 보도 기능과 음악가로의 성장 서사를 알차게 눌러 담았다. 세상은 라틴음악의 깊이와 대안 음악으로의 자격, 슈퍼스타의 존재를 깨달았다.
블랙핑크의 무대는 무엇을 남겼나. 미국 내 아시안 붐의 상징? 바로 전 차례 보이지니어스가 보여준 여성의 연대? 이들의 오늘을 가능케 한 케이팝의 시스템? 케이팝이 들려주는 새로운 대안 음악으로의 가능성?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그저 엄청나게 바쁜 와중 스케줄 중 하나를 소화했을 뿐이다.
목적이 단순하니 결국 실력을 논하게 된다. 코첼라 무대에 몸을 던지던 수많은 가수와 비교하면 블랙핑크는 절대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를 맡을 수준이 아니었다. 후반가서는 좀 나아졌지만, AR에다 추임새 넣는 초반 멤버들의 가창은 끔찍했다. 백댄서들만큼 열정적인 춤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관중 규모와 휘황찬란한 장치,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쇼, 큰 무대에 맞춘 편곡에서야 지금 이 공연이 하이라이트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체 곡-멤버 솔로로 이어지는 구성은 국내 아이돌 콘서트면 족했다. 소셜 미디어 업로드용, DVD 출시용 공연이었다. 2019년에 비해 모든 면에서 후퇴했다.
블랙핑크의 코첼라 무대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막을 내렸다. 순간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지만, 이윽고 매캐한 연기만 남긴 채 어두운 공간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꿔보는 영광의 무대를 낭비했다. 케이팝은 한단계 세계 시장에서 진지하게 다뤄질 기회를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