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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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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 하나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부러움
난 재능도 없는데 꿈도 없어서
아이돌 서바이벌 이런거 나오는 사람들도 부러워햇엇음
어릴때부터 꿈을 찾은 것 같아서
떨어지고 우는 것도 좀 부러웟던것같아
그 사람들은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게 있는거니까
부랄냥돼머리@giyommigirl
사람은 누구나 재능 하나씩은 가지고 잇다는말 개구라가 분명하다 난 농담이 아니고 재능이 1나도없슴 노는것도 제대로못함띠 잘노는애들은 한번 놀때 미친듯이 놀고 현생 빠딱빠딱 복귀하던데 난 쪼끔 놀다가., 약간 공부하고.. 또 쬐깐 놀면서 불안해함 뭘하든 어중간해서 ㅈㄴ문제임 머먹고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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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 참여 도와주세요]
남자친구란 놈의 핸드폰에서
여자친구를 향해 물뽕(추정)을 먹이고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어 끔찍한 성행위를 하는 불법촬영물 440여건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판결은 '합의된 성관계'였습니다.
탄원서링크:docs.google.com/forms/d/e/1FAI…
오직 성범죄 피해자를 위해
민변이 올린 탄원서에 함께해주세요.
피해자인 지현씨(가명)는
영상물을 잊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현씨의 아버지는 피해사실을 밝히며
끔찍하다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 사건 이후 충격이 커서 생업을 위한 일도
제대로 하시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탄원서 참여로 피해자를 도와주세요.
30초면 서명 가능합니다....
지나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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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동일방직을 알아?
알몸 시위와 똥물 테러로 유명한 사건이야.
뭔가 싶지?
1970년대 한국 노동 운동사의 가장 끔찍한 사건.
동일방직에선 여성 노동자들이 두 번의 시위를 벌였어.
하나는 1976년의 일명 '나체 시위'.
70년대 여성 방직공의 생활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지?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 노조를 세우기 위해 모였어.
회사 측에서는 반길 리가 없지.
회사의 탄압에 여성 노동자들은 농성을 시작했고,
경찰의 강제 진압에 맞서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게
작업복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저항하는 거였어.
순진한 생각이었지. 절박한 마음으로 여자들이 옷을
벗고 있는데 남자 경찰이 오지 않길 바라며 작업복을 벗은 거야.
이 사건은 정말로 남자 경찰들이 손을 못 댔다더라.하는
카더라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알몸 상태의 여성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끌어내 연행했어.
실신한 사람도 있고, 다친 사람도 많았어.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어. 수치심마저 내던지고.
그럼 이 시위로, 과연 민주 노조는 세워졌을까?
끔찍한 사건은 이제 시작이야.
1978년 2월 21일.
동일 방직은 여성 노동자들이 겨우 세운 민주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남성 노동자들을 사주했지.
노조 대의원 선거 투표로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남성 수십 명이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어.
일명 똥물 테러 사건이야.
남성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미리 준비한 인분을 뿌리고,
눈과 코, 입에 바르고, 심지어 억지로 입을 벌려
입 안에 인분을 밀어 넣어 먹였어.
현장에는 경찰도 있었지만 '노동자끼리의 싸움을 우리가 어떻게 말리냐'고 웃으면서 방관했지.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강제로 인분이 입 안에 넣어지고,
'더러운 년들'이라는 조롱을 당하고 있었는데
공권력은 여성들의 그 수모를 웃음거리로 삼았어.
회사는 이 사건을 빌미로 여성 노동자 124명을 해고하고,
명단을 다른 방직 공장에 뿌려 다시는 취업할 수 없게 했어.
해고 노동자들은 명동 성당에 모여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단식 농성을 벌였지.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고 외치며.
만약 명동 성당 농성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알려지지도 못했을 거야.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민주 노조를 세우려 했어.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알몸 시위와 똥물 테러가 알려지면서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이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고, 8,90년대 노동 운동의 뿌리가 되었어.
똥물을 뒤집어 쓴 그 분들은 명예를 회복했을까?
2018년, 사건 발생 40년 만에 일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대.
우리는 이런 분들의 땀과 눈물과 온 몸을 내던진 투쟁으로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거야.
우리 삶의 토대가, 결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그리고 여성은 언제나 싸워왔고
앞으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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