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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찐덕후였던 내가 한국 지하아이돌에 빠지기까지/한국어 버전】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나는 1년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낼 정도로 K-POP에 진심인 찍덕이었다.
그런 내 일상이 바뀐 건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무렵이었다.
여행중이던 캄보디아에서 귀국하지 못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체류를 연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따뜻한 기후와 느긋한 분위기가 생각보다 너무 잘 맞아서 어느새 1년반이나 살고 있었다.
그 이후로 K-POP을 보기 위해 한국에 가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로부터 몇년 뒤, 오랜만에 환승으로 한국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홍대거리를 걷다 보니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분들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었고“뭐지?”하는 마음에 말을 걸어보니 근처에 메이드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일본의 메이드 카페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한국어 연습도 될 것 같아”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들어가 보았다.
귀여운 메이드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중 한 명이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한국에도 지하아이돌이 있어요.”
솔직히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지하아이돌을 본 적이 없었고 잘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 전환점은 갑자기 찾아왔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던 메이드 한분(신엔노유메 쿠노)가 지하아이돌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기회니까 한 번쯤은 보러 가볼까?”
그런 가벼운 마음과 약간의 불안을 안고 처음으로 겐바를 찾았다.
그곳에서 본 것은 진심으로 아이돌 활동에 임하는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일본어로 노래하고, 팬들도 일본어로 믹스를 넣는다.
그런 문화가 한국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일본의 지하아이돌 문화를 전혀 몰랐던 나는, 그들이 부르는 일본어 노래가 커버곡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타이반 겐바를 다니고, 유튜브로 과거 라이브를 찾아보다 보니 아는 그룹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오시그룹이 생기고, 오시멤버가 생기면서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나는 한국 지하아이돌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 겐바를 다니며 보이기 시작한 것들
그건 아이돌분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고생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아마 그들이 안고 있는 것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생탄제 준비 같은 걸 지켜보면 정말 쉽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만큼 당일 겐바에서 느끼는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 아이들의 존재를 더 많은 일본 오타쿠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고 트위터(X)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처럼,
한국에 지하아이돌 문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시는 분들은 아직 많을 것이다.
알고 있어도 언어와 거리의 벽 때문에 쉽게 한발 내딛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힘일지라도,
그런 분들에게‘첫 번째 입구’가 될 수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발신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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