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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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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 만우절에 던져진 지독한 농담
4월 1일. 남들 다 가벼운 거짓말로 낄낄거릴 때, 유독 한 이름 앞에서만 다들 입을 닫는다. 장국영. 죽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 세 글자는 여전히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문장이자, 박제되지 않은 날것의 슬픔이다.
부잣집 귀공자로 태어나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배경은 그에게 태생적인 우아함을 줬다. 하지만 그 매끄러운 피부 밑엔 늘 결핍과 고독이 자글자글했다.
가수로 성공해서 4대 천왕이랑 어깨를 나란히 했으면서도 그는 만족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스크린이라는 더 깊은 구덩이로 밀어 넣었는지도 모른다.
왕가위라는 지독한 변태를 만난 건 장국영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아비정전'에서 팬티 바람으로 맘보 춤을 추던 그 허무한 몸짓. 그건 연기가 아니라 갈 곳 없는 도시인의 영혼 그 자체였다.
"발 없는 새"라는 대사도 어쩌면 설정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했던 인간 장국영의 고백이었다.
그의 연기는 냉소적인 마초들이 판치던 홍콩 영화판에 균열을 냈다. '패왕별희'의 청데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그 눈빛으로 예술에 미쳐버린 영혼을 뿜어낸다. 그건 그냥 연기가 아니라 투혼이었고, 시대라는 괴물이 개인을 어떻게 씹어 삼키는지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해피투게더'에서 담배 한 대 물고 양조위를 쳐다볼 때, 거기엔 야망이랑 불안, 지독한 그리움이 다 섞여 있었다. 브래드 피트의 야성이나 정우성의 정직한 잘생김과는 결이 다른, 오직 장국영만 낼 수 있는 '상처 입은 짐승' 같은 아우라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두고 음모론을 떠든다. 24층 투신, 고소공포증, 의문의 주변 인물들. 근데 그런 팩트보다 중요한 건 그가 남긴 정서적인 찌꺼기들이다.
그는 단순히 잘생긴 배우가 아니었다. 우리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고독과 비겁함, 존재의 허무를 대신 앓아주던 무녀 같은 존재였으니까.
세상은 그를 '레슬리 청'이라 불렀지만, 우리한테 그는 언제나 아비였고 청데이였다. 만우절마다 그가 살아 돌아오는 농담 같은 기적을 바라는 건, 그만큼 우리가 기댈 곳 없는 차가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잊히지 않는다는 것. 그게 장국영이 세상에 던진 가장 완벽한 복수이자 사랑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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