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약먹는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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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약먹는 채식주의자
@coolpas433
‘인간 경제 국가’ 읽는 중 | 비트코인 공부중 | Stay Humble, Stack Sats
Katılım Kası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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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cast4640 숭고하고, 아름답고, 이것이라고 추상할 수 없는 엄청난 유연성과 포괄성 그냥 궁극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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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비트코인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예술가는 데미안허스트 ‘the currency’부터 공부해라.
edition.cnn.com/style/article/…
탈모약먹는 채식주의자@coolpas433
사토시 나카모토는 프로그래머이자 암호학자임에도, 디지털 아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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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후 무슨일이 일어날까요?
워낙 오락가락 하는 양반이라 예측이 안되네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coinness.com/news/115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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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도 예술로 먹고 살기 어렵다면, 자기 작품을 돌아봐야 한다>
NFT 예술 시장에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하며 체감한 바는 분명하다. 예술품이든 다른 자산이든, 가격 형성의 핵심에는 ‘가치’보다 ‘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유명 컬렉터가 매입하거나, Elon Musk와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언급하는 순간 가격은 즉각 반응한다. 권위 있는 미술관이 소장했다는 사실 역시 작품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결국 예술 시장에서의 ‘호재’란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 누가 그것을 선택하고 어떤 네트워크에 편입되었는가에 더 크게 좌우된다.
이러한 구조는 작품의 미적·예술적 평가와 시장 가격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부 작품은 특정 기관의 소장 여부나 상징적 지위를 이유로 유사한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는 예술 시장이 독립적인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기보다, 영향력 있는 집단과 제도적 권위가 가격을 형성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 결과 ‘가치’와 ‘가격’은 쉽게 분리된다.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더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과 서사를 갖춘 창작물은, 제도권의 인정과 무관하게도 지지하는 개인들과의 연결을 통해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과거에 비해 훨씬 적은 자원과 노력으로도 자신의 작업을 알리고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과 서사를 갖춘 창작물이라면, 소수의 지지자만으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한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존이 어렵다고 말한다면, 그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결국 문제는 구조가 아니라, 너 작품이 구려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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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고전 예술이든, 권위 있는 문화 엘리트든 간에 정부 지원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는 순간 그들은 권력 카르텔에 편입된 사적 이익 집단일 뿐이다.
사적 이익 집단은 공공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문화적 권력을 유지해 줄 이유도 없다.
Murphy와 CJJ들@Official_Murpy
전통 예술 고전 클래식이든 모던이든 모두 마찬가지. 이걸 보존 또는 창작 위해서 이제는 정치를 하고 자빠진게 문제. 진짜 당위가 있고 필요하다면 수요자인 돈 있는 사람한테 호소해야지 그런 노력이 부족 . 그러니까 수요도 없는 ㅈ같은 거 만들어놓고 예술이라고 포트폴리오 랍시고 배급 받아먹는 식충이들 개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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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예술 발레단의 지원도 멈춰야된다.
한국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 강국이다.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기생충을 통해 K-컬처는 전 세계를 휩쓸었고, 그 위상은 발레나 오페라가 없어도 충분히 증명됐다. 그런데도 국가는 여전히 수십억 원의 세금을 발레단에 지원하고 있다. 과연 이 지원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발레는 본래 유럽 귀족 문화의 산물이다. 한국 고유의 정체성과는 무관하지만, 여전히 “선진국이라면 발레단쯤은 있어야 한다”는 낡은 사고가 정책을 지배한다. 이는 서구의 기준을 따라야만 인정받는다는 사대주의적 잔재다. 한국은 이미 K-pop과 드라마로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국가가 되었는데도, 발레가 국가 위상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더 큰 문제는 문화 권력 엘리트들의 자기 보존 구조다. 발레·오페라·클래식은 “품격 있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지원을 독점한다. 국민 대다수가 체감하지 못하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년 막대한 예산을 흡수한다. 공공재, 문화 다양성이라는 명분은 결국 소수 계층의 교양 과시를 위한 포장일 뿐이다.
정부는 국립발레단 해외 공연이 국가 이미지를 높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외교적 장식품은 국민의 삶과는 아무런 연결이 없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문화 복지이지, 몇몇 나라에서 열리는 발레 갈라가 아니다. 지금의 발레 지원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인과 문화 엘리트의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적 힘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발레단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K-컬처에 있다. 발레 지원은 더 이상 “필수적 국가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 개혁과 재분배의 대상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구시대적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 세금이 쓰이는 현실, 이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다.
Bach@hambachsteak
놀랍게도 많습니다 유럽의 일류 오케스트라, 무용단 등 세계적인 예술단체들이 큰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받고 운영됩니다. 미국은 문화가 달라서 기부에 의존하지만 어쨌든 외부의 도움을 받습니다. 예술이 현대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임을 인정하고, 예술 생산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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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한때 이상과 초월을 말하던 자리를 과학에게 빼앗겨, 사회 속에서 중심적 역할을 상실했다. 그렇게 예술가 혹은 지식인은 자신을 보이지 않는 엘리트, '식자층'의 일원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사회의 쓰레기로 여겨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부랑자로 간주한다.
파이어스톤은 문화를 “인간이 자연(환경)의 한계와 우연성에 맞서 싸우며 만들어낸 정신적 산물”로 본다. 인간은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 아니라,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넘어서려는” 존재다. 이때 생기는 “환경의 제약 vs. 정신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풀어내는 방식이 바로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인간은 바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예술·종교·철학 같은 문화적 산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충족해왔다.
하지만 미래에는 기술·사회 혁명으로 인해 인간이 상상한 것을 직접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되면, 문화는 더 이상 “대체물(대용물, substitute)”로 필요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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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시대의 억압을 해소하는 행위라면,
권력에 대한 비판 없이 그 억압이 온전히 해소될 수 있을까?
표현이 소비되고 소모되는 데 그치는 수준—
즉, 포르노처럼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와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이라면,
결국 권력과 구조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예술가가
그 정부를 비판하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가?
만약 그것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면,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은
과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유롭지 않은 예술을
우리는 여전히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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