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8_urserv
#도서제공 #서평단 #나만아는단어
─ 김화진, 황유원, 정용준, 임선우, 권누리, 김선형, 김복희, 유선혜, 정수윤, 김서해 『나만 아는 단어』
사람은 짧은 편지에서조차 본인이 좋아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면 장황하게 말이 길어지는 법이랬다. 그런데, 책에 수록된 단어들이 하나같이 작가들을 붙들고, 흔들었던 것들이라면? 열 명의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가 모두 신선하고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 김선형 「Pang (n)」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봤던 페터 빅셀의 단편 『책상은 책상이다』 의 줄거리로 에세이가 시작된다. 처음 아무런 정보 없이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나 역시 해당 소설을 떠올렸더랬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내기 위해 외웠던 정답과 달리, 언어와 단어에 대한 번역가의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역가라는 직업 특성상 그의 글에는 외국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외국어를 마주할 때면 울창하고 낯선 텍스트의 숲 어귀에 서서 막막하게 안을 들여다보는 이방인의 기분이 된다(128p) 고. 이 책의 제목인 『나만 아는 단어』는 어떠한가?
저자들은 ‘나만 아는 단어’로 본인이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¹ 를 사용하기도 하고, 기존 단어에 접두사를 붙이거나² , 원래 단어의 용법을 그대로 사용하되 제 나름의 의미를 꾹꾹 눌러담³ 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단어를 수집하면서 김선형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되는 기분에 휩싸였다. 돌발적으로 의미들이 점화되며 영롱하고, 경이롭고, 시적이고, 문학적이라고. 정말 나만 아는 같다고(128p) 느꼈다.
그렇다. 나는 해당 파트가 이 앤솔러지의 서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파트를 어우른다는 느낌. 김선형의 문장을 곱씹으면서 작가들의 『나만 아는 단어』에 집중하면 이들의 언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 김화진 「최애 단편 선정 불가」
김화진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소설이 아니라 그녀의 일기장을 들춰보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망설임(「종종」), 두려움, 자책, 열등감…… 나였다면 타인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을 부분들을, 작가는 진솔하게 적어 내려간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만약 김화진이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져 있거나, 반대로 모난 점들을 벗어버리려 발버둥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지금만큼 그녀의 글을 사랑하지 못했으리라.
그녀는 전작인 『나주에 대하여』 인터뷰에서 ‘자신이 없다.못생긴 마음들을 쓸 때 이상하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약점을 내보이는데도 행복해 보였다. 내내 사랑스러웠다. ‘못생긴 마음들’ 마저 소중하게 가꾸는 사람. 그리하여 나의 마음뿐 아니라 타인에 마음에도 돋보기를 대고 있는 사람(「실망」). 매번 실패하고 실패하면서도 매번 다른사람의 주머니를 엿보거나, 자신의 주머니를 슬쩍 열어 그 속을 보여주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주머니」) 나는 이렇게 부드럽고 강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 임선우 「하지」
나의 별점 5점 보증 수표. 김화진과 반대로 임선우는 작가가 (혹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보다 직접적인 위로를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 역시 마찬가지다. 절기의 이름이자, 단편 『유령 개 산책하기』에 등장하는 반려견의 이름인 하지. 작가는 낮과 밤이 공존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최대한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개에게 그 이름을 붙였노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나는 고통이 있어야 성장한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게 꼭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로 들려서.
나는 나의 재능과 쓸모에 대해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몇 번쯤 전공과 직업을 바꾸면서 끊임없이 부적절감에 시달렸다. 직업과 직함으로 저를 소개하면서 속으로는 운이 좋아 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 언젠가는 나의 보잘것 없음이 만천하에 탄로날 거라는 생각. 이러한 감정들을 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 임선우를 만났다. 그녀는 작품 내외에서 언제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끝내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는 하지. 다 하지. 할 수 있지. 그렇게 하지라는 이름에 하루하루 힘을 받아가면서,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92p)
혹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이가 있다면 이 단편이 당신에게도 길라잡이가 되기를. 우리 ‘나름’(93p) 의 방식으로 생을 뚫고 나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선 곳이 부디 하지이기를 바란다.
¹ 임선우, 「인간만두」
² 김서해, 「겹소망」
³ 김화진, 「종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