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아니었으면 적어도 내 불행을 기원하는 시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겠지 나는 그렇게까지 혐오받을 이유가 있는 인간은 아니니까 그저 조금 무심했고 조금 삐딱했고 남들보다 덜 순진했을 뿐이야 근데 너라는 변수 하나가 끼어들면서 내 삶은 갑자기 타인의 저주를 정당화해 주는 서사가 돼 버렸어
너 하나 빠져 나갔다고 해서 내 주위가 공허해질 거라 생각을 했나 우스운 착각이지 내 주변에는 소음처럼 들끓는 인연들이 있다 허영과 위선 그리고 약간의 연민으로 얽힌 군상들 말이야 그 속에서 나는 이미 수없이 많은 얼굴을 통과해 왔고 또 얼마든지 다른 낯짝들로 나를 둘러싸게 만들 수도 있어
나는 그걸 이미 버렸어 아니 버린 게 아니라 회수 불능 상태로 방치해 둔 거지 누가 주워 가든 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그건 나한테서 발신됐지만 끝내 도달할 곳이 없었던 감정의 잔해니까 내 자존심은 이미 폐기 처리된 우편물이야 보관 기한도 끝났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반송 도장 찍힌 내 이름 하나
너 같은 부류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질리도록 봐 왔어 허세와 공허를 번갈아 뒤집어쓰고 대단한 감정이라도 되는 양 값싼 말 몇 마디로 사람 마음을 현혹하려 드는 족속들 그래서 난 늘 그랬지 한 번 스치면 기억의 변두리로 밀어 넣고 두 번 보면 망각의 수장속에 처박아 버렸어 그게 제일 간결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