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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윤리학 : 배틀 브라더스
‘게임에서의 윤리적인 선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손쉽게 ‘내 소소한 이익을 위해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느낌이 있다. 에이, 그런 건 <그냥> 윤리적인, 큰 재미가 없는 질문이다. 당신은 착하거나 나쁠 것이고, 착하거나 나쁜 선택을 할 것이다. 게임적으로 더 재미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당신은 다 무너진 용병단을 재건해낸 훌륭한 용병단장입니다. 가죽 갑옷과 벌목 도끼, 작은 방패 따위로 무장한 세 친구로 시작한 당신의 존마니 용병단은 이제 두꺼운 갑옷과 휘황찬란한 투구를 갖춘 열몇의 용병들과, 커다란 마차와 여러 수행원들을 거느린 뻑쩍지근한 ‘중견급’ 용병단이 되었습니다. 아, 그만큼 용병단원들에게 지불할 월급도 늘어났구요!
당신의 용병단에는 레온하르트, 라는 용병이 있습니다. 일용직 출신으로, 어찌저찌 살다가 ‘보잘것 없던’ 시절의 당신의 용병단에 합류하게 된 친구입니다. 보잘 것 없던 용병단장이었던 당신은 ‘몸값이 싸서’ 그를 고용했었고, 그는 싼 몸값 대비 훌륭한 역량을 선보이며 활약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손가락을 잃고(근접 전투술 -5), 귀도 잃었습니다(주도권-10). 사실 이제 당신은 그와 이별하고 싶습니다. 이제 요란찬란해진 당신의 용병단에 필요한 인재는 검투사나 방랑 기사, 혹은 ‘진짜 전문용병’ 출신의 ‘(능력치 높은)전투 전문가’들이지, 현재 당신의 용병단을 가득 채운 (월급이 싼)일용직이나 농부, 어부나 도둑 출신의 잡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그를 해고한다. 둘, 그에게 퇴직금을 주고 은퇴시킨다」
이 선택지를 처음 본 사람들은 다들 ‘뭐 퇴직금 줘야지 그동안 고생했는데’ 라고 생각하며 퇴직금을 확인하고, 멘붕하게 된다. 이 게임은 꽤나 사악한 게임이기 때문에, 비록 레온하르트는 저열한 능력치와 그에 걸맞은 싼 임금을 받고 있었지만, 엄청난 액수의 퇴직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당신이 당신의 용병단 초반을 책임져준 일용직 농부 어부 석공 도둑 쥐잡이 등을 해고하려는 고민을 하려는 시점에서 퇴직금은 엄청난 압박이 된다).
그냥 해고하면 남은 용병들의 사기가 떨어진다. 아, 좋은 팁이 있다. 레온하르트를 해고하고,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용병단을 데리고 마을에 들어가 술집에 가자. 술집에서 술을 퍼먹이면, 용병단원들의 사기가 오른다. 써야 할 퇴직금의 1/5 정도면 당신은 ‘대충’ 당신 용병단의 사기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윤리를 챙기는 것은 비싸다. 300 골드 정도로 막을 일을 1500 골드로 막아야 한다. 당신은 1500 골드를 낼 건가? 당신은 게임에서 어디까지 윤리적인 선택을 할 생각인가.
아, 또다른 방법이 있다. 그를 ‘산재처리’ 하면 된다. 장비를 모두 벗기고, 전투의 선봉에 투입하면, 높은 확률로 그는 ‘산재’ 당할 것이다. 산재를 지켜본 당신의 다른 용병단원은 트라우마에 빠지거나 기분이 나빠지겠지만 술을 사면 그만이다. 자, 당신은 퇴직금도 해고 리스크도 없이 당신의 직원을 해고하는 데 성공했다. 자, 어서 마을로 돌아가서 새로 생긴 빈 자리를 당신의 용병단의 품격에 맞는 전문 검투사나 방랑 기사, 검술의 달인 같은 사람을 고용해 채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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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가 하수의 셈법이다. 이 게임의 고수에게는 ‘보다 효율적인’ 셈법이 있다.
이 게임은, 그래픽만 봐도 알수 있듯, 세계관이나 설정이나 난이도나 제법 하드코어한 게임이다. 얼마나 하드코어하냐면, 당신의 만렙 용병이 오크 광전사가 휘두른 쇠사슬 ‘단 한방에’ 뚝배기가 터져서 죽을 확률이 17% 정도다(아주 중무장을 하고, 만렙 이후에 능력치를 더 올리고 노가다 쌩쇼를 하면 이 확률을 꽤 낮출 수 있기는 하다). 당신도 언젠가 죽듯이, 용병들도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쇠사슬을 휘두르는 오크 광전사의 앞에 서야 한다. 물론 그런 도전 없이도 용병단을 꾸릴 수 있기는 하다. 벌이가 조금 줄어들 뿐이다. 당신의 용병단에서 가장 강한 전사이자,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노예사냥꾼 이븐 아시드는 오크 광전사의 쇠사슬을 맞고 11% 확률로 대가리가 터져서 죽는다. 하 이제 슬슬 이새끼 짤라야 되는데, 싶은 일용직 출신 레온하르트는 오크 광전사의 쇠사슬 한방에 17% 확률로 머리통이 으깨져서 죽어버린다. 아, 물론이지만 이런 게임들이 그렇듯이 죽으면 끝이다. 당신이 그렇듯, 죽고 난 뒤에 부활 같은 건 없다.
용병단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전투의 승리를 위해, 누군가는 오크 광전사의 앞에 서야 한다. 운이 아주 좋으면 그는 오크 광전사의 쇠사슬을 피하는 데 성공하고, 오크 광전사는 그가 휘두른 칼날과 그의 뒤에서 동료들이 휘두른 창날에 쓰러지게 될 것이다. 운이 좋으면 그는 뇌손상이나 애꾸눈 정도가 되어 살아남게 될 것이고, 보통 정도의 운이면 그는 퇴직금 없이 퇴역하게 될 것이다. 용병단장인 당신에게, 최고의 결과다. 당신은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인원'을 퇴직금 없이 퇴역시켰고, 그의 죽음을 활용해 오크 무리를 손쉽게 학살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게임 공략들이 후반의 휘황찬란한 용병단원 육성법보다는 ‘초반에 고용하게 되는, 능력치가 별로 좋지 못한, 그리고 임금이 싼’ 용병 공략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런 게임들이 흔히 그렇듯,초반이 제일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초반용 쌈마이’ 용병들에 대한 공략은 보통 이렇게 마무리된다. ‘초반에 잘 쓰시다가 죽어야 할 자리를 찾아서 죽이면 됩니다. 그런 친구들이 용병단의 거름이 되어 용병단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죠.’
자, 당신은 어떤 윤리적인 ‘이별’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이 게임은, 상당히 빡빡하다. 물론 어느 게임이 그렇듯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조금 덜 빡빡하게 되지만, 빡빡한 사람들의 기본 공략이 이러하다 : 한 사람의 퇴직금이면 용병단의 일주일치 월급이 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윤리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