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ac(꼬냑)@supernovajunn
당신은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손오공은 근두운을 타고 세상 끝까지 날아갔습니다.
아무리 날아도 끝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다섯 개의 기둥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의 끝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부처님 손가락이었습니다.
AI로 자동화했다, Claude로 에세이 썼다, 바이브 코딩으로 앱 만들었다, 에이전트가 돈 벌어준다.
저도 AI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하루 종일 합니다. 이 글도 그 이야기입니다.
근데 가끔 멈추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맥킨지는 수십 년 동안 정보 비대칭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클라이언트는 모르는 것을 맥킨지는 알았습니다. 그게 컨설팅 수수료의 본질이었습니다.
2025년 맥킨지는 수천 명을 해고했습니다. Inc. Magazine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AI 시대는 분석 능력과 추천 능력을 점점 평등하게 만들고 있다고.
정보 비대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Gartner는 2026년까지 지식 노동자들이 정보를 찾는 데 쓰는 시간이 50%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AI가 맥락에 맞는 정보를 먼저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들보다 빨리 알았다는 우위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우위가 하루가 다르게 얇아지고 있습니다.
2021년에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나는 이미 시작했고, 남들은 아직 모른다. 이게 기회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정말 돈 번 사람은 바람잡이였습니다. 강의 팔고, 컨설팅 팔고, 커뮤니티 팔았습니다. 블로그로 돈 번 게 아니라 스마트스토어를 가르쳐서 돈 벌었습니다.
가끔 보면 지금 AI 자동화 이야기도 같은 냄새가 납니다.
나는 Claude로 이걸 만들었다. 에이전트로 저걸 자동화했다. 그러니 나만 따라오면 된다.
컴퓨터 앞에서 엔터 치면 뭔가 만들어집니다. 맞습니다. 근데 남들도 손가락이 있습니다. 나보다 엔터를 더 많이, 더 성실하게 누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더 많습니다.
MIT의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팀이 2026년 2월에 논문을 냈습니다. 주제는 이겁니다. AI가 사회의 정보 생태계 장기 진화를 어떻게 바꾸는가.
결론 중 하나가 충격적입니다. 에이전트형 AI가 맥락별 추천을 개인에게 제공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지식을 쌓으려는 노력의 유인이 사라집니다.
AI에게 물어보면 더 정확한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여파입니다. 인간이 직접 배우고 추론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던 공공 지식 풀이 서서히 고갈되고, 사회 전체의 지식 기반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걸 knowledge collapse라고 부릅니다.
모두가 같은 답을 얻는 세상에서, 그 답을 먼저 얻는다고 해서 유리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남느냐고요.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손오공이 결국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근두운이 느려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커서였습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같은 정보를 가지게 되는 순간, 경쟁의 무기는 정보가 아닌 것으로 옮겨갑니다.
신뢰. 관계. 판단의 책임. 틀렸을 때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AI가 답을 내놓을 때 그 답에 이름을 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AI가 계획을 세울 때 그 계획이 잘못됐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AI가 콘텐츠를 만들 때 그 안에 실제 경험이 담겨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게 없으면 AI 결과물은 그냥 잘 만들어진 평균입니다.
저는 오늘도 에이전트 채점 스킬 만든 것을 포스트했습니다.
자동화했다, 시스템 만들었다, 에이전트가 스스로 채점한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 저와 똑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수천 명은 됩니다. 같은 Claude를 쓰고, 같은 문서를 읽고, 비슷한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조금 일찍 시작했을 뿐입니다.
찰리 멍거가 말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워런 버핏이 말했습니다. "썰물이 빠져나가야 누가 수영복 없이 헤엄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AI라는 밀물이 들어오는 지금, 모두가 수영을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밀물이 빠지고 나면 진짜가 남습니다.
저부터 자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보를 먼저 안다고 이기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정보를 어떻게 쓰는지로 가는 것 같지만, 그것도 금방 평등해질 겁니다.
그 다음에 남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당신이 만든 것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습니다. 손가락에 이름을 새기기 전에, 한 번쯤 고개를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