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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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덩치에 안 맞게 발포스티로폼 멘탈이라 멀쩡히 살기 위해 나름의 자구책을 발명했다. 이른바 ‘마이크로(micro) 감탄하기’다. 쉽게 말하면, 별 볼 일 없고 씨잘데 없는 무수한 일들에 감탄하기다.
라면이 꼬들면으로 잘 익었을 때, 코털 정리가 말끔하게 됐을 때, 휴지에 묻어나오는 게 없을 정도로 잘 뭉쳐진 똥을 누었을 때, 레고를 밟았는데 뒤꿈치로 밟아서 별로 안 아팠을 때, 김치전을 한 번에 뒤집었을 때, 등등 등등. 그렇게 감탄하다 보면 마흔 다 되어서까지 크게 뭘 이룩한 게 없는 내 인생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대박! 나 여태 안 죽고 살아있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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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ydick119 중2때 복도서 마주친 체육선생 웃음기 보였다고 넌 뭐가 그리 재밌냐며 재밌냐! 재밌어! 하면서 싸대기 연타.. 그런 선생 하나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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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런 선생님 하나쯤 있지 않나.
복도가 나무였던 시절, 양철통에서 달팽이 점액 같은 왁스 한 주걱 푹 떠서 마대걸레로 빛을 내던 어린 날. 나뭇결을 따라 세로로 닦지 않고 가로로 닦던 나를 불러 세워 뺨따귀를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었더라. 그래서 아직도 난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 다 집에 가고 불 꺼진 교실에서. 아, 다른 남자애도 하나 있었다. 그 애의 하얀 얼굴과 테두리가 가는 안경이 기억나. 너도 그때 나처럼 창피하고 아팠을까. 기분 좋냐고 묻던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인상을 쓰고 그러다 또 뺨을 맞았을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당신의 이름을 꽁꽁 숨기는 내가 밉다. 지금쯤이면 어린 손주를 품에 안고 있을 당신이 천하에 개자식임을 온 세상이 알까 봐. 그 이름 세 글자가 불리우면 당신이 영영 죽을까 봐. 직업병인가. 당신도 살려야 할 사람으로 여기는 내가 분하다.
다들 그런 선생님 하나쯤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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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한 손으로 우리를 키웠어요. 갓난쟁이 때 화로에 손을 넣어서 오른손이 몽땅 오그라들었데요. 아버지가 너무 했지요. 어쩌자고 다섯이나 낳을 생각을 했대. 그럴 거면 오래라도 살던가. 아버지는 막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엄마가 시장에서 수제비를 끓여서 팔았어요.”
누워 있는 노인의 얼굴을 본다. 하얀 머리칼을 곱게 빗어놓은 모양이 깃털 같다. 그녀의 몸에선 어딘가 그리운 냄새가 난다. 어릴 때 울 외할머니 등에 업혀 맡았던 그 냄새다. 짤막한 오른손엔 나무 둥치에서 자라다 만 버섯 같은 손가락 세 개가 붙어 있다.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갔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저희 집이 그렇게 가난한지 몰랐데요. 저도 몰랐어요. 엄마는 돈 없다는 얘길 한 번도 안 했거든요. 여섯 식구가 방 한 칸에 복닥거리면서 살아도 그런가 보다 했죠.”
나는 잠자코 듣는다. 딸은 자기 엄마의 생전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늘어놓는다. 내가 장례지도사도 아니고, 그냥 소방관인데도 그런다. 한 번 꿈을 펼치지 못하고 아이 다섯을 키우는데 온 세월을 바친 엄마의 삶에 대하여. 그 삶은 가장 훌륭하진 않았으나 가장 아름다웠음을 증명하려는 듯. 나는 아랑곳 않고 무심히 뱉는다.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딸은 엄마의 가슴 위로 쓰러지듯 얼굴을 묻는다. 웅얼거린다. 사랑해요 엄마. 그 말을 시작으로 주변에 서 있던 다른 형제들도 하나하나 입을 연다.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슬픈 돌림 노래.
꽃을 보고 향기롭다 말할까. 바다를 보고 광대하다 말할까. 엄마의 삶도 구태여 그 가치를 증명할 이유가 없다.
엄마는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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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을까 하다 멈칫했다. 장갑 낀 손으로 꼭대기를 잡고 흔들자 담이 뿌리째 뽑혀나갈 듯 휘청였다.
‘안 되겠는데.’
하는 수 없이 옆의 철문을 타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 높았지만 육중한 몸무게를 못 이기고 담이 무너져 전쟁 폐허처럼 변하는 것보단 나았다. 올해는 꼭 살을 빼야겠다. 생각했다. 철문을 넘었다. 문을 붙잡고 늘어지듯 넘어온 탓에 문이 조금 휜 것 같았다. 젠장. 젠장.
플래시를 비추자 눈이 녹아 작은 빙상장처럼 얼어버린 마당이 나타났다. 조심조심 걸음을 놓는다고 놓았는데 발 밑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개밥그릇이 박살이 났다. 이어서 어둔 마당 한편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거기 누구쇼. 미국이었다면 총에 맞았을 거란 생각을 잠깐 했다.
“소방관이에요.”
“소방관?”
“유케어(노인 및 취약계층 대상으로 보급된 자동 화재 경보 기기)에서 신고 들어와서요.”
“아, 그거? 김치찌개 태워서 그래.”
집안으로 들어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화재상황을 점검했다. 좁은 방 한쪽 벽면에는 노인을 닮은 젊은 여자,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각각 한 장씩 걸려 있었다. 싱크대에서 까맣게 탄 냄비 하나가 가장자리가 넘치도록 물을 먹고 있었다.
“냄비 하나 사시지.”
“영감이 사 준 거야.”
이건 결말이 뻔한 얘기다. 영감님은 보이지 않았다. 환기 조금 더 하시고 주무시라 얘기한 뒤에 집을 나왔다. 새벽 네 시였다. 날이 너무 추웠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내 덕에 할머니 마음이 따뜻해졌겠네요, 말하겠지만 아닐 것이다. 추위는 추위다. 그리움은 여전히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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