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바다의 새민주🐳 รีทวีตแล้ว

[ 타국의 49재를 챙기는 ‘평화로운’
전직 대통령에게 묻는다 ]
잊히고 싶다던 퇴임 대통령의 SNS는
오늘도 눈부시게 평화롭다.
일본의 탄광과 대만의 잠수사를 기리는
그 정성스러운 추모글을 보며,
국민은 문득 기괴한 시공간의 괴리감을 느낀다.
이분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계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본인만의 도덕적 유토피아에
유폐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권초 이낙연이라는 매끈한 방패를 골라 잡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노련한 정치인의 ‘품격’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은 품격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의 서막이었다.
박근혜 사면이라는 정치적 오물을
이낙연의 입을 빌려 뱉게 하고,
정작 자신은 고결한 관찰자로 남았다.
책임은 부하에게 넘기고 공은 본인이 취하는 기술,
그것이 우리가 목격한 ‘K-정치’의 민낯이었다.
인사가 만사라던 격언은 그의 시대에 이르러
‘인사 참사’로 변질되었다.
윤석열, 추미애, 조국 등 으로 이어지는
갈등의 대서사시는 국가 시스템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특히 김현미라는 무능한 카드를 끝까지 쥐고
흔들며 부동산을 폭등하게하고,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찬 것은 단순한 실책이 아니다.
그것은 경기도 부동산을 불태워
이재명이라는 변칙적 괴물을 키워낸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짬짜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절묘했던
그 방조와 무능이 지금의 비극을 잉태한 단초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법 정의가 난도질당하고,
독재적 발상과 친중 행보 속에
국가의 기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자녀들의 문제가 발목을 잡은 인질극의 소산인가,
아니면 애초에 나라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 없었던 것인가.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든 주역으로서,
침묵은 금이 아니라 공범의 증거일 뿐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의 ‘선택적 공감’이다.
무안공항의 비극과 자국민 4만 명이 학살당한
이란의 참상, 대전을 덮친 화재 현장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분이,
돌연 일본 장생탄광의 대만 잠수사 49재를 챙긴다.
타국의 비극을 기리는 인류애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 집 안방에 불이 나 아이들이 울부짖는데,
이웃 나라 잠수사의 기일을 챙기는
그 평온함이 소름 끼칠 뿐이다.
지금이 진정 49재 타령이나 할 때인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을 통째로
이재명과 민주당에 양도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일말의 양심이 담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국가원수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자존심이며,
한때 당신을 지지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침묵으로 완성된 거대한
배신의 서사시를 여기서 멈춰라.
당신의 침묵은 더 이상 인내가 아니라,
무너지는 나라를 구경하는 잔인한 즐거움으로 보일 뿐이다.
이 글이 공감되었다면, RT를 부탁드린다.
우리의 침묵이 저들의 위선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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