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itlenmiş Tweet
캐나다 부자엄마
46.7K posts

캐나다 부자엄마
@Happyfe_et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일합니다. 영구임대아파트 출신, 지방대 자퇴생.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지. 결핍, 트라우마, 우울과 같이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 ✍🏻
Vancouver, British Columbia Katılım Eylül 2023
1.5K Takip Edilen10.9K Takipçiler

스무 살.
삼성프라자 매대 알바를 하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갈아탄다. 빽빽한 노란 옥수수알 같은 분당 아파트 중에 우리 집은 왜 없을까.
시급 2,800원, 내 인생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괜히 서러워 흔들리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눈물을 훔치던 날들.
남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때, 난 마대자루로 바닥을 닦았다. 덕분이었어. 늘 제자리라고 믿었는데, 내 길을 조금씩 넓히고 있었던 거지.
모든 멋진 일은 시간이 걸린다고.
헤매고 빙 돌아왔지만 결국 내 자리를 찾는다고. 그러니 지금 안 된다고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마, 젊음.
괜찮아 젊은 친구. 다 잘되려고 그런거야.

한국어

장항준 감독 미쳤어..진짜 일반 사람이 아님..
왕사남 수익구조 본인이 다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 모두 인센 받을 수 있게 한대..👍🏻
출처: m.youtube.com/watch?v=cMSm99…


한국어

잠을 잤다.
무거운 마음은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 낮에도 잠을 잤다. 반지하 집 창문은 앞집 아주머니가 커튼 대신 달아 놓은 녹색 식탁보로 가렸다. 창문을 덮으면 방 안은 금세 우물 안처럼 어두워졌다.
눈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세상과 나 사이에 이불 한 겹을 두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꿈속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내가 된다.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한다. 괜찮은 척 웃지 않아도 된다. 쭈삣거리지 않고고개를 들고 걷는다. 먹고 싶은 것을 망설임 없이 주문할 수 있는 내가 된다.
현실에서 난 백수다. 아니 면접도 볼 기회가 없다는 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 꽂혀 있는 도서관 책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살아가는데, 난 어디에도 꽂히지 못한 책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었다.
꿈으로 도망친다.
삼개월이었다.
현실이 힘든 나는, 자꾸 잠으로 도망쳤다.
한국어

그러니까 거기가 자연농원이었을때 난 그 동네에 살았다.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꺽으면 빛에 바랜 간판을 단 구멍가게가 있었다.
100원짜리 뽑기는 운 좋으면 붉은 벨벳 필통도 딸수 있었다. 그 날도 뽑기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멀리서 회색 먼지 뭉텅이같은 것이 분홍 혀를 내밀면 달려왔다. 동네개는 아니었다. 움직일때마다 치렁치렁한 쇠소리를 내는 동네개는 사슬에 묶어있었으니까. 누렁이니 황구니 모두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는 애는 아니었다.
벚꽃 피던 날 티끌하나 없는 흰 차에서 어른 손바닥 만한 개가 떨어지듯 쏟아 내렸다. 부를새도 없이 차는 달렸고 우리도 뒤를 쫓았다. 누군가 사람들이 놀러오는 길에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간다던 말이 떠올랐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믿었다.
아빠차를 타고 가다가 포장된 도로위에 몸 절반이 짓이겨진 개를 봤다. 흝어진 살점들이 벚꽃잎처럼 그 개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목중에 묶여 사는 동네 개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어

지킬 것이 없어서 떠날 수도 있는 거야.
한국을 떠날 때, 뉴펀들랜드를 떠날 때, 캘거리를 떠날 때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떠날 마음으로 시작했으니까.
중고시장에서 $15불 주고 산 책상이나 길가에 free라는 종이를 붙이고 있던 소파로 살림을 채웠다. 매일 신어 접히는 부분에 구멍이 난 나이키 운동화는 버리고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 나는 8조각이 난 피자 한 판처럼 내 에너지가 쪼개지는 사람이니까. 지켜야 할 것들을, 그러니까 특히 물건 같은 건 만들지 않기로 했다.
지킬 것이 없다는 건 가볍게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가볍게 살 수 있다는 건 지킬 것이 없다는 삶이기도 하고.
한국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