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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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주적 맞아요. 그래서요?" 이게 내가 고른 답이다. 왜 이 답인지 풀어보자. 북한은 대한민국의 현재 주적이 맞다. 군복무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북한 초소에서 총기교대 중 기관총이 실수로 우리 초소 방향으로 발사된 날이다. 말년 병장부터 신참까지 모두가 밤새 덜덜 떨었다. 휴전선은 그런 곳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전쟁이 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 서 본 사람한테 "북한은 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현실을 지우는 일이다. 적이 맞다. 적이어서 무섭고, 적이어서 우리는 매일 총을 들고 마주 본다. 그게 분단의 실재다. “주적이 어디냐?”에 답을 피하는 건 어떤 식으로 우아하게 비틀어도 결국 핵심을 회피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주적은 내란을 일으켜서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입니다"로 받아치는 것도 강하긴 한데, 끝까지 다그치는 상대 앞에서는 "알겠고, 그래서 북한은요?"로 다시 끌려가게 된다. 뭐라고 답을 하든 끝까지 질문이 들어오면 결국 답을 안 한 후보가 된다. "답을 안 했다"는 사실은 영상에 남고, 끝까지 다그친 쪽은 "주적은 북한"이라는 명제를 지켜낸 투사가 된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대한민국의 주적"이라 즉답하면 종북 프레임이 걸릴 자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바로 논리를 이어가면 된다. "주적이니까 협상하는 거예요. 친구랑 평화협정 맺나요?" "적이지만 끝내 같이 살아야 할 동포들이에요. 그래서 통일이 어려운 거고, 그래서 통일을 포기 못 하는 거예요." 대한민국과 북한은 현재 적대 관계에 놓여 있지만, 서로 통일의 대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게 보수 안보론과 갈리는 지점이고, 동시에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도 갈리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진보는 “북한을 적이라 규정하면 안된다”고 했고, 보수는 “북한은 주적이니 멸절해야한다”고 하고, 평양은 2024년 이후 "이제 남남이니 잊고 살자“고 한다. 진보는 그 사이에 서야 한다. 실재하는 적대는 인정하되 통일은 포기하지 않는 자리. 이 자리를 비워두면 한쪽은 보수가, 다른 쪽은 김정은과 영구분단이 채운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도 속이 끓는다. “북한을 주적이라 부르는 건 평화통일 정신에 어긋난다", “진보당의 강령이 있는데 주적 규정을 어떻게 하냐“ 그래서 이 글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은 적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지키느라 평화 의제 자체가 매번 종북 프레임에 잡혀먹혔다. 통일은 더 멀어졌다. 청년층은 진보 통일운동을 진지하게 보지 않는다. 단어를 지키는 동안 의제 전체를 잃은 거다. "북한이 주적"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통일을 포기”하거나 "북한이 외국"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김정은이 2024년 초에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선언하면서 통일을 의제에서 지웠다. 우리가 "북한은 적이 아니다"를 고집하는 동안, 정작 평양은 “대한민국은 외국"이라고 못 박은 거다. 이 비대칭을 직시해야 한다. 적이라는 사실과 통일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모순되지 않는다. 분단 자체가 그 모순 위에 서 있는 거니까. ‘적대’를 부정하면 현실을 잃고, ‘통일’을 포기하면 대의를 잃는다. 둘 다 잡아야 한다. 한국의 진보는 이 둘을 분리해서 "적이 아니다"를 평화의 전제로 삼아왔지만, 휴전선을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과 김정은의 “적대적 두국가론” 앞에 막다른 길이 되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이 문턱을 끝까지 못 넘었다. 김대중은 "적이자 동포"로 우회했고, 노무현은 "통수권자가 답할 일 아니다"로 회피했다. 노무현의 그 회피 클립은 지금까지도 종북 프레임을 강화하는 자료로 돌아다닌다. 두 대통령조차 빠져나오지 못한 함정이라면, 개별 후보의 순발력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라는 표현으로 현실을 지우는 것은 그만해도 괜찮지 않을까? 실재하는 북한과의 적대를 지우지 않고서도 충분히 통일은 이야기할 수 있다.


요즘 극우 활동가들이 진보당이나 민주당 후보를 만나면 챌린지처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주적이 어디에요?" 카메라부터 켜고 묻는다. 답이 궁금한 게 아니다. 후보가 당황하는 장면이 필요한 거다. 울산 진보당 후보는 "주적? 미국이죠"라고 답하다 당황했고, 성남 민주당 후보는 당황하다가 "당신 윤어게인이죠?"로 받아쳤다가 영상이 됐다. 두 클립은 극우 진영을 넘어 주류 남초 커뮤니티까지 퍼졌고, "역시 진보당, 민주당은 주적을 북한이라 말 못 하는 종북"이라는 프레임이 다시 잡혔다. 이대남 보수화의 백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숏츠와 릴스의 시대에 정치인은 10초, 길어야 30초 안에 나락을 가기도 하고 스타가 되기도 한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주적이다." 명제는 단순하지만 답은 단순하지 않다. 평화통일을 말하는 후보가 "북한이 주적"이라고 하면 자기 정치를 포기한 거고, "주적은 없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종북으로 찍힌다. 어느 쪽으로 답해도 지는 게임이다. 알아둬야하는 게 하나 있다. 영상을 찍는 사람과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은 같은 집단이 아니다. 카메라 든 극우 활동가와, 그 클립을 보며 낄낄대고 공유하는 이대남은 다른 사람들이다. 극우는 이미 결론을 내린 자들이라 설득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그 영상을 볼 이대남 일반이다. 이들은 극우 신념을 가진 게 아니라, 진지함을 못 견디고 위선을 혐오하며 사이다에 반응하는 정서적 소비자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강한 주장 자체가 아니라, 강한 주장을 여유 있게 던지는 태도다. 진보가 이들 앞에서 매번 지는 이유는 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톤이 맞지 않아서다. 답이 궁금한 게 아니라 장면이 필요한 사람 앞에서 적절한 대응은 그 장면을 내가 설계하는 것이다. 어차피 클립이 만들어질 거라면 거기에 내 메시지가 실리도록 만드는 것. 설득할 대상은 눈앞의 질문자가 아니라 그 영상을 보게 될 사람들이다. 두 후보가 무너진 건 순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답하는 순간 진다. 문법 자체가 바뀌었다. 정치는 이제 텍스트가 아니라 영상이고, 긴 호흡이 아니라 짧은 호흡이고, 옳은 말이 아니라 보고 싶은 말이다. 좌파가 이 문법을 두려워하면 우파가 그 자리를 먹는다. 이미 그렇다. 뉴욕의 조란 맘다니, 독일의 하이디 라이히네크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짧고 강렬한 클립 한 편으로 의제 자체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둘 다 진보 의제를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극우의 영상 문법을 자기 것으로 썼다. 짧게, 강렬하게, 유쾌하게, 여유롭게. 진보가 이 네 가지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진지함과 정확성이 진보의 자산이라는 생각은 지금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진지함은 편집자에게 좋은 먹잇감이고, 긴 정확성은 30초 안에 잘려나간다. 극우의 십자가밟기는 답을 강요하는 게임이다. 그 판에 올라가지 않는 것, 그 거부 자체를 내 메시지로 채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서 30초를 다룰 줄 모르는 진보는 아무리 옳아도 진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너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거냐고? 그건 다음 기회에…



걍 다 떠나서..이준석이 당대표에 천하람이 의원직 하는 개혁신당보다 김재연이 상임대표 하고 손솔 의원이 있는 진보당이 뭐가 어째요?






@flipthattt Not even just pink, kpop is basically entirely just. Ripped from black culture entirely

Why aren't Koreans releasing country music then? Why only genres from Black Americans? Is America imperial only when it comes to it's blackness?





왜 미국인들이 자꾸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인종이 무슨 인종이든 너는 그냥 미국인이야. 본토 한국에서도 한국계 미국인들을 한국인이라 생각하지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