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해l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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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osoi

🌊 바다해 LaMer | 콘텐츠를 만들고 해체하는 사람 / AI 시대의 일·사람·배움에 대해 씁니다. 진영보다 맥락, 동의보다 대화. / Making & unmaking content in the age of AI / Omnivore ears / 육아 계정 겸용 / 선팔맞팔대환영😍

대한민국 경기도 Katılım Nisa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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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해laMer
바다해laMer@gorosoi·
아이 키우면서 잊고 살았는데, 출판사 짬밥이 꽤 된다. 경력 단절된 지 오래지만, 얼마 전에도 프리랜서로 단행본 몇 권 내긴 했음. 최근에 그 감각이 다시 올라와서, 그때 봤던 것들을 조금씩 꺼내보려고 한다. 철 지난 편집후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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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정.
슬.정.@catjeongsigi·
좐나 하기 싫은 거 할때 얼마전 타블로가 한 말을 떠올린다.... 본인은 할일할 때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후다닥 끝내는거라고...ㅎ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보니 난 그런 적 거의 없음] 그런 천재는스러운거 난 몬해... 그치만 그러한 노력은 닮아봐야지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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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ché ☕️
Eunché ☕️@byChaea·
맞는 선택을 찾는 게 아니라네. 내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밀고 가며 정답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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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해laMer
바다해laMer@gorosoi·
@daikannewsJP 조회수 올리기 딱 좋은 소스였겠네요. 성공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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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ニュース日本語版
1986年8月16日、開館を控えた国立中央博物館(旧朝鮮総督府庁舎)。この建物は約10年後の1996年11月13日、竣工70周年を機に解体される。 日本統治時代、1916年7月10日に着工し、1926年10月1日に竣工。1945年8月の日本敗戦まで19年間、朝鮮総督府庁舎として使用された。 日本敗戦後、米軍政が始まると3年間は米軍政庁として使用され、「中央庁」と呼ばれた。その後、大韓民国政府に帰属したが、李承晩大統領は強く解体を主張した。「植民地支配の象徴を、ソウルの中心部に置く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のがその理由であった。 しかし当時、最貧国のひとつであった韓国には、この巨大な建物を解体する能力がなかった。解体技術や莫大な費用はもちろん、撤去した石材を運搬する重機すら不足していたためだ。結局、政府は現実と妥協し、この建物を政府庁舎として使用することになる。ところが1950年6月25日に朝鮮戦争が勃発し、ソウル奪還の過程で大規模な火災が発生。中央ドームと内部が全焼する被害を受けた。戦後復興の困難と予算不足から、骨格だけを残したまま10年以上放置されていた中央庁は、1962年11月にようやく大規模な修復工事を終えて再開館した。こうした紆余曲折を経て、中央庁は実質的に約26年間、政府庁舎としての機能を果たすことになる。 1970年12月23日、中央庁近くに政府ソウル庁舎が竣工し、政府各省庁が次第に移転していくにつれ、中央庁の機能は徐々に縮小されていった。1982年12月に政府果川庁舎1・2棟が竣工したことで、1983年には行政庁舎としての機能が完全に終了する。この時、一時解体の議論が持ち上がったものの、国立中央博物館への用途変更という結論に至った。 1983年5月、総務処から文化公報部へ建物の管理が移管され、改修工事を経て1986年8月21日に正式開館。この建物は「国立中央博物館」という名称に生まれ変わった。1・2枚目の写真が当時の姿である。この時期、日本人観光客はソウルを訪れる際、ここをほぼ必須の観光コースとして訪問していたと伝えられている。 韓国の民主化後、朝鮮王朝の王宮である景福宮の復元計画が確定したことで、この建物の解体は事実上避けられない流れとなった。そもそも日本が朝鮮総督府庁舎を建立した際、興礼門や周囲の行閣、永済橋をはじめとする景福宮内の殿閣の大半を取り壊し、その跡地の上に建物を建てたためである。 1991年、盧泰愚政権でも解体を推進しようとしたが、秘書陣の交代などさまざまな現実的問題から議論は先送りとなり、金泳三大統領就任後にようやく実質的な解体計画が立案される。 1995年、金泳三大統領は「歴史を正す」取り組みの一環として、光復50周年を記念し、朝鮮総督府庁舎の解体を電撃的に発表した。これに対し建築界の一部では、「建築的価値の高い近代建築物である」として解体反対の声が上がったものの、植民地支配の象徴を取り除き、景福宮本来の姿を取り戻すべきだという国民世論は圧倒的であった。 結局、1995年8月15日、韓国の光復節(終戦記念日)を期して中央ドームの尖塔を撤去することで解体作業の開始が告げられ、1996年11月13日には建物の完全解体が正式に完了した。これにより、光化門の背後から景福宮・北岳山・青瓦台へと続く、現在の景観が完成した。 解体後、切り取られた尖塔と一部の残骸は、現在、天安の独立記念館に展示されている。余談ながら、日本統治時代に建設されて現在もソウルに残る主な建築物としては、旧ソウル駅舎、韓国銀行貨幣博物館、ソウル市庁本館、旧国会議事堂などがある。 筆者は歴史学徒として、あらゆる遺物の破壊に惜しむ思いを抱いている。屈辱の歴史もまた歴史の一部である以上、当然保存されるべきだと考える立場だ。その意味で、朝鮮総督府庁舎についても、全て解体するのではなく、余裕をもって一部なりとも移設・保存できていたなら、と悔やまれてならない。 また、そもそも朝鮮総督府が景福宮を毀損することなく、近隣の空き地に庁舎を建設していたならば、今日の中華民国総統府庁舎のように、歴史的建造物として保存され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も思われる。 写真出典:e映像歴史館 #韓国 #日本 #朝鮮 #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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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문무 존버단
요약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나도 가져야한다) 와 밥을 굶겨???!!?? 의 감성이 조합된 마리아쥬 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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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s
Impressions@impression_ists·
Monet painted The Magpie when he was 28. No one knew him. He had just become a father and was living in extreme poverty. ​He presented it at the Paris Salon and they laughed at him. They told him it was unfi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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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s@impression_ists

Snow by Claude 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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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수소🔭@Letsgototd·
요거 신기하다 작중에 등장하는 별들과 헤일메리호가 날아온 경로를 볼 수 있어요 페트로바선도 보임!! share.google/I42DUgmUTDkx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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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
단단@data_dandan·
이동진 인간관계 띵언 일기를 쓰니까 이걸 더 명확하게 느낀다. A를 만나면 그날의 내가 너무 별로같고. B를 만나면 오늘의 내가 괜찮은 사람같다. 사람은 물이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더 나은 내가 어느쪽에 있는지. 내가 바라는 나는 누구인지 매일 선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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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dlrjsdkslwldul·
박은빈 인터뷰 중에 ‘원래 화를 못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거 언급한거 보면서 우는중..... 인내하는게 타고난 천성인것도 잇엇으나 그게 미덕이라고 여겻던 시절도 잇엇는데 참는다고 다 알아주는건 아니라는걸 늦게 깨달앗고 심리학과 가서 교수님이 > 그런 상황인데 왜 화를 안냇어요? < 하는 순간 눈물이 낫대....ㅜㅜ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대학시절에 찾은거 진짜 존경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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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BBliK
BuBBliK@k1rallik·
do you understand what Google's AI just did to an artist.. His entire Google account got permanently banned. Not just Drive. Gmail.. YouTube.. Every single service.. His appeal was rejected. No human reviewed it. An algorithm decided his life's work was a violation. He never shared the files publicly. It was a private backup of his own creations. The AI flagged it anyway - probably the filename or art style - and that was enough. - Google banned a developer's 14-year-old Gmail account over a research dataset that contained no illegal content - Google expanded its automated ban policy in October 2025 - violations now trigger immediate termination with zero warning period - No lawsuit against Google for wrongful account termination has ever succeeded in US courts Your Google account is not yours. You are renting access to your own digital life from a company whose AI can end it in seconds - with no appeal, no human, and no recourse.
AyakaMods@AyakaMods

Google just permanently banned a manga artist’s entire Google account, just for uploading his own old manga files to Drive. AI moderation triggered and flagged it, he tried to submit appeal then he got rejected it by Google and now he has lost everything like Gmail, Drive, all linked services is gone. He never even sharing the files publicly, it’s only backing up his own a private work like any creator and artists. This is Google Drive “AI moderation” in action. No human support and no serious to take action. Physical storage or real private alternatives only. Support the artists getting screwed by this. This level of corporate overreach is ins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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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이다@2daplay·
슬럼프 있을때 남의 강연 가거나 컴퍼런스 같은거 들으러 가면 싹 고쳐짐. 종이랑 펜만 주고 교실같은데 가둬놓으면 바로 그림 삼천장 그림. 난 이것을 수업시간 딴짓효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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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해laMer
바다해laMer@gorosoi·
@HodooInfp 과도한 업무로 인해 일어난 감정을 할 일과 분리시키는 거네요. 기발하다. 북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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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dooInfp·
민경 편집자가 번아웃 왔을 때 쓰는 방법 따라해봤는데 실제로 효과 있었음 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 ㅋ 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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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묘묘
할로묘묘@Hellomeow0·
진심으로 추천할게.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평소에 사진 많이 찍고, 일상을 부지런히 기록해 둬. 겉보기엔 남들한테 보여주려는 인스타 감성 같아 보여도, 사실 그 기록의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미래의 나 자신이거든. 내 기억력? 절대 믿지 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던 벅찬 감정들도 며칠만 지나면 흐릿하게 포맷되잖아. 오직 남겨둔 텍스트와 사진만이, 그 생생했던 기억들을 온전히 머물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야. 길거리에서 무심코 찍은 구름 한 점, 길가다 대충 마신 커피 한 잔의 사진이라도.. 그게 훗날 어느 날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연결 고리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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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덕질
덕질덕질@ttjattja·
내 동생은 나보다 15살이 어리다. 그리고 틱 장애와 ADHD가 심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통제가 안됐다. 교실에서 수업중 의자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을 때가 여러번이었고, 하나를 가르치면 두개를 까먹었으며, 주변 아이들에게는 왕따를 당했다. 그래서 동생을 고쳐보고자 정신과를 꾸준히 다녔다. 놀이치료와 뭐 두 가지 치료를 병행했는데 다달이 나오는 병원비가 감당이 안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병원을 다니게 했다. 나중엔 병원비가 밀려 할부로 갚아나갔다. 하나, 들어간 돈에 비해 진척도는 미비했다. 그래서 경기도에 살던 난 동생의 환경 자체를 바꿔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틀에 박힌 학교가 아니라 한 반에 소수의 아이들만 데리고서 열린 교육을 하는 곳. 그런 곳이 춘천에 있었다. 하여 당장 거주지를 춘천으로 옮겼고, 바뀐 환경에서 동생은 병원을 다닐때 보다 빠르게 나아졌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때 그 나이대의 평균적인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좀 또래 애들보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과 행동들은 동생을 여전히 은따, 혹은 이용해먹기 좋은 친구 관계에 머물게 했다. 그렇게 춘천에서 지낸지도 몇 년이 흘러 동생은 중학생이 되었다. 5월의 어느날. 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차를 끌고 동생의 학교에 찾아갔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동생 데리고 한달만 여행하다 올게요." 동생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생도 함께 나누고자 했다. 그 안에서 분명 얻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며 그러면 성장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감사하게도 담임 선생님은 현장체험학습 제도를 말씀해주시며, '체험학습 결과보고서'만 잘 작성해준다면 외부에서 활동한 기간들을 출석으로 인정해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즉시 동생과 함께 학교를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춘천에서 동해안으로 이동해 해안선을 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였다. 계획도 없었고 자금도 넉넉지 않았다. 일단 동생과 가고 싶은 곳을 정하면 거기에 무슨 볼거리가 있고 어떤 맛집이 있는지 조사했다. 지역에 도착해서는 숙소부터 구했다. 최대한 싼 곳으로 알아봐 전화를 하면 대부분 빈 방이 있었다. 옷가지가 많지 않아서 여행 내내 양말도 빨아신고, 옷도 빨아 입었다. 돈을 아끼려고 라면을 끓여 면만 건져먹고 국물을 남겼다가 햇반을 넣어 죽처럼 끓여먹는 날도 왕왕 있었다. 명소는 최대한 무료인 곳만 찾아 다녔다. 중요한 건 평소에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던 동생이 나와 함께 하는 여행길에서는 빨래도 직접하고 라면도 손수 끓여봤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동생에게 정말 고생스러운 경험을 해주게 하고싶어서 악산으로 유명한 산을 등산했다. 우리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하산을 하자마자 캔음료를 단숨에 두개씩 비워냈다. 동생에게 고생이 뭔지 알려주려다 내가 죽을 것 같았던 날이었다. 여행의 중반부 쯤, 남해 쪽 어떤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사방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숙소에 들어가 바로 잠을 청했고, 다음날 일어났더니. 우리가 밟아왔던 곳에 바다가 쫙 펼쳐져 있었다. 동생은 분명 낮과 밤이 다른 광경을 보며 많은 걸 느낀 얼굴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24일이라는 시간 동안 전국을 돌아보았고, 여행의 마침표는 서울에서 찍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동생은 24일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동생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지금은 다 커서 우체국에 근무하며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바쁜 부모님 대신 내가 키웠다. 내 동생은 나보다 15살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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