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훈@roas_TT
‘주적 챌린지’가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끔찍한 편이다.
최근 내 주변의 청년 후보들에게서도 비슷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세 명의 청년 남성이 홍희진 진보당 성북구청장 후보를 둘러싼 채 카메라를 들이밀고, 길을 막은채 "주적이 누구냐?”고 취조하듯 물었다. 답의 내용과 무관하게 세 남자가 한 사람을 가두고 사상을 검문하는 그 장면 자체가 폭력이다. 서대문·관악·성북에 출마한 진보당 청년 후보들도 같은 질문을 각자 다섯 번 넘게 받았다고 한다.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답이 어렵진 않다. 최근 경북도지사 후보 토론회와 부산 국회의원 재선거 토론회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왔다. 후보들은 막힘없이 답했다. "북한 정부와 군이 주적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내란세력이 두 번째 적이다." 묻던 쪽이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 문제는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의 폭력성이다. 누군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행위 그 자체가 문제다. 어떤 답을 내놓든, 그 답을 빌미로 ‘너는 국민이 아니’라고, ‘처단해야 할 대상’이라고 선언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다. 사상검증이라는 외피를 쓰고 적을 식별하기 위해 벌이는 의식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은 갑자기 솟은 사건이 아니라, 십수 년 동안 누적되어 청년 남성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 잡은 일베문화가 권력의 정상에서 폭발한 것이다. 일베식 세계관이 더는 '일베'라는 게토에 갇히지 않고 청년 남성의 주류 온라인 문화로 흡수되어 작동하고 있다.
5월 25일 펨코 포텐터짐 유머 게시판에는 [(정치X) 대한민국 주적은 '북한'입니다.] 라는 글이 올라왔다. “북한이 주적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조회 70만, 추천 1만, 댓글 2,112개. 정치 게시판이 아니라, 유머 게시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청년 남성들이 웃자고 모이는 공간에서 "반대하는 자는 국민이 아니다"가 1만 추천을 받는다. 이건 더 이상 변두리의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 세대 남성 온라인 문화의 상식 자리에 올라섰다는 뜻이다.
2,112개의 댓글을 분석해보았다.
빨갱·간첩·좌빨 같은 낙인 단어가 345회, 멸공·죽여·멸해·색출·처단 같은 폭력 단어가 67회 확인됐다. 윤석열의 계엄 포고령, 그리고 윤어게인 세력이 사용하는 어휘와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댓글은 이거였다.
"실시간으로 비추로 추천을 지우는 세력이 있네요 ㅎㅎ" (추천 2,510)
"비추목록을 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라" (추천 1,564)
게시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시를 누른 행위가 곧 조직적 공작으로 규정되고, 그 명단을 공개해 색출하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70~80년대 빨갱이들 잡으러 다닌 이유를 알 것 같다", "3대를 멸해야 했다"는 댓글에 수십 개의 추천이 달린다. 군사독재 시기의 공안 통치에 대한 공개적 향수에도 추천이 잇따른다.
비추 → 간첩 → 색출 → 처단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끄럽다. 일베가 십수 년 동안 키워온 문법이다. 그 문법이 이제 일베에 들어가지 않는 청년 남성도 일상적으로 호흡하고 있다.
이렇게 대중화된 흐름은 거리로 나온다.
세명의 청년 남성이 진보당 청년 여성 후보를 둘러싸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청년 남성이 여성 후보의 유세 옆에 붙어 "윤 어게인"을 10분 동안 외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장 만만한 표적을 가장 만만한 방식으로 압박한다.
'주적'은 핑계이고 위협이 본체다. 이것은 파시즘의 전조다.
한 시민을 둘러싸 사상을 검문하고, 답이 무엇이든 그 답을 빌미로 국민 자격을 박탈하고, 박탈된 자를 처단의 대상으로 삼는 정서. 12·3 계엄이 시도한 일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헌정질서를 위협한 자가 거꾸로 헌정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을 휘두르며 시민을 적으로 색출하려 했다. ‘주적 챌린지’를 수행하는 남성들과 윤석열은 같은 매커니즘을 공유하고 있다.
홍희진이 그날 무엇이라 답했는지 나는 모르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주적이 누구냐”는 답은 이미 나도 한달 전에 페이스북에 게시물로 올렸고, 다른 토론회에서 충분히 나왔다. 정답이 있어도 이 시험이 반복되는 이유는, 애초에 답이 목적이 아니라 표적 지정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직시해야 할 것은 한국 청년 남성 다수가 모이는 공간에서 "반대하는 자는 국민이 아니다"가 1만 추천을 받고, 그 정서가 거리로 흘러나와 진보당 여성 후보를 둘러싸는 폭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한 세대의 다수가 "저 사람은 국민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동의하고, 거리에서 행동으로 나서는 것. 거기에 권력이 입혀지면 그게 파시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