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coreacdy
4월 19일입니다.
66년 전 부정부패로 얼룩진 독재의 어둠을 걷어내고 이 땅의 민주주의 빛을 밝힌 4.19 혁명의 도화선, 김주열 열사의 고귀한 숨결이 깃든 남원 금지면에 왔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리산자락과 섬진강변에 온갖 꽃이 피어나고,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계절 앞에서 한 소년의 시린 눈동자를 기억합니다.
김주열 열사는 우리의 아들이자 형제였습니다.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한 김주열 열사는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겠다는 꿈을 안고 어머니와 함께 마산으로 향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어머니와 함께 마산상고 입학 합격증을 받아든 바로 그날,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참여했다가 실종되었습니다.
거의 한 달이 다 될 무렵, 4월 11일 차디찬 마산의 앞바다에서 떠오른 열사의 시신은 잠자던 대한민국의 양심을 흔들어 깨운 거대한 함성이 됐습니다. 불의에 맞섰던 소년의 눈에 박힌 최루탄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국민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를 똑똑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열사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가라앉았던 그의 진실이 떠오르던 날, 마산의 분노는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마침내 4.19 혁명이라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강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흘린 피는 이 땅의 독재를 씻어냈고, 그가 감지 못한 눈은 우리 국민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우리 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투표장에만 머무르는 유물이 아니라, 권력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헌법의 가치를 훼손할 때 언제든 다시 타오를 준비가 돼 있는 우리의 뜨거운 정체성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최근 다시 한 번 그 시험대 위에 섰습니다. 예고없이 찾아온 불법적인 계엄의 공포 앞에서도 우리 국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총구보다 강한 것은 침묵하지 않는 시민의 저항정신이었고, 서슬퍼런 위력보다 거대한 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굳건한 의지였습니다. 그 위대한 회복력의 뿌리는 바로 66년 전 이곳 남원의 아들, 김주열이 흘린 피에 닿아있습니다. 열사가 일깨운 저항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를 다시 살렸고 대한민국의 전 세계의 민주주의의 보루임을 증명하게 했습니다.
김주열 열사여,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 이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 장대한 거목이 됐습니다. 비록 당신의 육신은 열여섯 살 소년에 머물러 있으나 당신이 남긴 민주주의의 정신은 66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 정의로운 시민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부딪히는 섬진강 물결처럼 당신의 정신은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흐를 것입니다.
오늘 당신 앞에 엄숙히 다짐합니다. 어떤 불의한 권력도 감히 헌법의 가치를 넘보지 못하도록 당신이 뿌린 민주주의의 씨앗을 소중하게 가꿔가겠습니다. 66년 전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살아서는 남원의 아들이었고, 죽어서는 영남의 아들이 되었고, 역사에서는 겨레의 아들이 된 유일한 열사 김주열 열사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빕니다.
이 땅의 모든 민주영령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