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猴之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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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猴之祖

越猴之祖

@SongWeigo34147

Katılım Ekim 2025
36 Takip Edilen7 Takipçiler
Xiao Hee Zhang is your Biggest Fan
ผู้นำที่เขียนรัฐธรรมนูญให้ตัวเองเป็นประธานาธิบดีเกิน2สมัยอะหรอ
Bafek@Bafek1ze7

@nangbaek 哥们说句良心话,习近平的领导能力可以算是世界领袖里面名列前茅的,可惜你们并不懂他,多学习知识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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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凯(SKHynix)
i凯(SKHynix)@mmkai335912·
@Alpha_Cat 韩国的赌狗清完没有不知道,Md我这个国内的赌狗要被清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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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 Cat
Alpha Cat@Alpha_Cat·
韩国赌狗的杠杆是清不完了吗? 清不完就再跌两天 清完为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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賴清德Lai Ching-te
賴清德Lai Ching-te@ChingteLai·
熊本県で先ほど発生した強い地震を受け、台湾の人々を代表して心よりお見舞い申し上げます。台湾と日本は苦難を共に乗り越えてきた真の友人です。私たちは現地の状況を注視しており、必要な支援があれば、いつでも協力できるよう準備を整えています。被災地の皆様のご無事を心よりお祈りしています。
日本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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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星普照
福星普照@daye6789·
@Edfghjkav 孙炼铜癖是近百年深祸中华的第一巨鬼!推清是袁非孙,孙从知武昌事回国后至死全是害中国!孙初卖东北求日打华灭袁没成,孙后得德资建南政引起南北战,军阀混战也是南政引起 孙后又卖蒙引俄狼入室又养共引起北伐→战日→内战腊胜巨劫 孙炮贼假三民真屠民孙蒋屠杀西关商团近万民,孙蒋+腊祸死合亿民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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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fgh 🇹🇼
Edfgh 🇹🇼@Edfghjkav·
廣州中山紀念堂 致敬國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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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股仙人
美股仙人@hanking66·
我取了十年美股10次回调,每次回调平均2-3月,为保持公平,一个月的回调我全部省略,22年熊市跌一整年我也不当采样,免得说我欺负人。 请问:8次回调哪一次不痛?哪一次不哭?哪一次不怀疑人生?哪一次不涨回来?你觉得这次不一样,只是你之前没经历过。但凡经历过之前任意一次,你都不会怀疑美股的走势。 从时间范围上看,我们已经很接近谷底了。或者已经在谷底了。我对未来依旧保持乐观。请你一定要坚持住,不要被噪音影响。 Discord在个人资料,buy the dip,长期持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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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猴之祖
越猴之祖@SongWeigo34147·
@k0ushou 越南猴子,哈哈,蛮夷,不足以常礼待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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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賴
Yuki賴@k0ushou·
即使你把中国文物的照片明明白白放出来,也明确注明“看起来很像明代”,堂堂正正地从东京坐船到苏州买布回来做衣服,你还是会被说成是个小偷。😚😚 至于为什么越南人总喜欢参考所谓的“万能佛像”,我会在评论区解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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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賴@k0ushou

maybe something like this, but wouldn't it feel too 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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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ntMat
AgentMat@mat78704·
请问是谁一直在告诉你们七月会大跌的?是谁把只给家人朋友的的卖出通知都发给你们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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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Mind
OverMind@Real_Overmind·
중국인들이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연관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한국인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 낸 민족주의적 상상이 아닙니다. 금나라 시조가 신라 또는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은 금나라와 동시대를 살았던 송나라 사람들의 기록, 원나라가 편찬한 금나라 정사, 고려의 관찬사서, 심지어 청나라 황제가 명하여 편찬한 만주족 원류서에까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이 부정해야 할 대상은 한국의 인터넷 게시물이 아닙니다. 중국 자신이 남긴 역사문헌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국가서사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옛 문헌의 문장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기록은 남송의 사신 홍호가 남긴 《송막기문》입니다. 홍호는 금나라 영역에 장기간 억류되어 여진 사회를 직접 관찰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금나라 황실의 시조에 관해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며 완안씨라 불렸다”고 기록했습니다. 원문은 명확합니다. “女真酋長乃新羅人,號完顏氏.” 여진 추장의 조상이 신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신라 땅 부근에 살았다고 쓴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동쪽에서 왔다고 적은 것도 아닙니다. 금 황실의 선조를 직접 ‘신라인’이라고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같은 내용은 《삼조북맹회편》에 인용된 《신록기》와 이심전의 《건염이래조야잡기》, 《건염이래계년요록》 등 송대 계통의 여러 기록에서도 반복됩니다. 어느 하나의 후대 야사에만 의존하는 주장이 아닌 것입니다. 원나라가 편찬한 금나라 정사인 《금사》 역시 금나라 시조 함보가 여진 지역의 토착 완안부 출신이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금사》 권1은 금나라 시조 함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 “금나라의 시조는 함보인데, 처음 고려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송막기문》은 신라라고 했고 《금사》는 고려라고 했지만, 두 기록의 핵심은 같습니다. 금 황실의 시조가 여진 완안부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인물이 아니라 한반도 국가에서 여진 지역으로 건너온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신라와 고려라는 표현이 엇갈리는 것도 결정적인 모순은 아닙니다. 함보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10세기 전반은 신라가 쇠퇴하고 고려가 한반도를 통합해 가던 시기였습니다. 출신집단을 기준으로 보면 신라인일 수 있고, 이동 당시의 정치적 영역이나 후대의 지리적 인식을 기준으로 하면 고려에서 온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김인희의 연구는 함보 관련 전승이 고려와 여진 사회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전해졌고, 여러 기록이 모두 함보의 한반도 출자를 가리킨다는 점을 근거로 함보를 ‘신라계 고려인’으로 판단합니다. 한국 측 기록도 별도로 존재합니다. 《고려사》에는 평주의 승려 금준이 여진으로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되었다는 기록과, 평주의 승려 김행의 아들 극수가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또 다른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기록의 ‘금준’은 今俊으로 적혔지만, 두 번째 기록에는 김행이 분명히 金幸으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한국 측 계보 전승에서는 금나라 시조가 한반도 평주 지역에서 건너간 인물이며, 그 집안이 김씨였다는 기억까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도 믿기 어렵다면 이제 청나라 황실이 직접 편찬한 《흠정만주원류고》를 보아야 합니다. 이 책은 건륭제의 명으로 만주족과 청 황실의 역사적 원류를 정리한 관찬서입니다. 한국인이 쓴 책도 아니고, 청나라를 비방하려는 한족의 반청문헌도 아닙니다. 바로 청나라가 자기 조상과 만주 역사의 정통성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오늘날의 중국식 설명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이 책까지 한국 민족주의 서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흠정만주원류고》 권7은 《금사》의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을 소개한 뒤, 《문헌통고》와 《대금국지》는 그가 본래 신라에서 왔다고 기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신라와 고려의 영역이 서로 이어지고 옛 기록에서 두 나라의 명칭이 혼용됐다고 판단하며, 신라 왕실이 여러 대에 걸쳐 김씨(경주 김씨)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金之自新羅來無疑.” 즉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금나라의 국호 역시 신라 왕실의 김씨와 관련하여 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적고, 금나라 영역의 금수라는 강 이름에서 국호가 유래했다는 설명은 사가가 억지로 붙인 말에 불과하다고 반박합니다. 이 기록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연관성을 주장한 주체가 현대 한국인이 아니라 청나라 황실의 관찬 사서였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의 관찬 역사학자들은 단순히 “함보가 신라에서 왔다”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라 왕실이 김씨였다는 사실과 금나라의 ‘금’이라는 국호를 직접 연결했습니다. 그러므로 “금나라는 신라 김씨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한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륭제가 편찬하게 한 청나라 관찬서의 결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다는 감정은 가질 수 있지만,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편찬한 현대 교과서가 언제나 과거 왕조가 직접 편찬한 문헌보다 우선한다는 특별한 역사학 원칙이라도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학술적으로 구분해야 할 부분은 있습니다. 함보가 신라 국가에서 온 사람이라는 기록과, 그가 오늘날 의미의 혈통적 ‘한국인’ 또는 특정 신라 김씨 왕족이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같은 명제가 아닙니다. 일부 중국 학자들은 함보를 신라나 고려에 거주했던 여진계 인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강준영의 연구도 송나라 사람들이 여진 지역 일부를 신라와 연결하여 인식했을 가능성을 검토합니다. 그러나 이 반론을 받아들이더라도 기본 골격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함보와 완안씨 집단의 역사적 기억이 신라·고려와 연결돼 있었다는 점, 여진 황실이 자신들의 시조를 고려에서 온 인물로 전승했다는 점, 청나라 관찬서가 그 출자를 신라로 판정하고 신라 김씨와 금나라 국호를 연결했다는 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해석의 범위를 조정할 수는 있어도, 사료에 적힌 문장 자체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금나라와 청나라의 연결은 단순한 상상이나 음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12세기의 금나라는 여진 완안부가 세운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약 500년 뒤 누르하치는 다시 여진 각 부족을 통합해 1616년 새로운 국가를 세우면서 그 국호를 ‘금’으로 정했습니다. 만주어 국호는 ‘아이신 구룬’, 곧 ‘금의 나라’였습니다. 후대 역사학에서는 이를 앞선 완안씨 금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후금’이라고 부릅니다. 누르하치의 후금은 과거 여진 금나라의 명칭과 정치적 기억을 명백히 계승한 국가였습니다. 누르하치가 죽은 뒤 홍타이지는 1636년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금나라가 멸망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청나라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누르하치의 후금이 그대로 청으로 개칭된 것입니다. 지배집단과 황실, 군사조직인 팔기, 국가기구가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흐름은 분명합니다. 신라·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된 함보와 완안씨 계통이 금나라를 세웠고, 후대 여진 세력이 그 금나라의 이름을 다시 사용하여 후금을 세웠으며, 그 후금이 국호를 바꾸어 청나라가 됐습니다. 이 연결을 부정하려면 적어도 후금이라는 국호가 왜 다시 ‘금’이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과거 금나라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여진계 국가를 세우고, 우연히 똑같은 금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으며, 그것도 다시 ‘아이신 구룬’이라고 불렀다는 설명보다는 역사적 계승관계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청 황실의 성씨인 애신각라, 즉 아이신 기오로에서도 ‘아이신’이 만주어로 금을 의미한다는 점은 언어학적으로 분명합니다. 여기서 ‘아이신 기오로’는 만주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표현이므로 번역본을 볼 때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나라의 만주어 명칭 역시 아이신 구룬, 즉 ‘금국’이었습니다. 아이신각라 황실은 바로 아이신 구룬, 곧 후금을 세우고 지배한 황실입니다. 다만 애신각라라는 명칭을 한국 한자음에 따라 “신라를 각별히 사랑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어원이 아닙니다. 특히 ‘각라’를 곧바로 신라와 100퍼센트 동일시하거나, 이 한자 표기에 특정한 역사적 의도가 담겼다고 단정할 만한 직접적이고 완벽한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만주어 발음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글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최종적으로 愛新覺羅라는 글자 조합이 정착했다는 사실은 후대 사람들에게 묘한 상상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 단순한 음차 과정에서 생긴 우연인지는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를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관계를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로 내세우기보다는, 이미 여러 사료에서 확인되는 신라·금나라·후금·청나라의 역사적 연결 위에서 읽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한자식 언어유희이자 상징적 해석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사실로 입증된 부분과 상징적으로 해석할 부분은 구분해야 하지만, 그 우연이 만들어 내는 역사적 함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적어도 ‘애신각라’라는 네 글자를 바라보며 묘한 연상을 느끼는 것까지 역사왜곡으로 공산당식으로 단속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란 원래 질문을 통해 깊어지는 것이지, 질문을 지워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언어유희를 모두 제외하더라도 연결고리는 충분합니다. 금나라 시조 함보가 신라 또는 고려에서 왔다는 송·원·고려의 기록이 존재합니다. 한국 측 전승에는 김씨 계통을 가리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청나라 관찬서인 《흠정만주원류고》는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한 것이 의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라 왕실의 김씨와 금나라 국호까지 연결했습니다. 그 뒤 누르하치는 여진족 국가를 세우며 다시 ‘금’, 즉 아이신 구룬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 후금이 청나라로 개칭됐고, 아이신각라 황실이 청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이 모든 기록을 모으면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연관은 단순히 “금과 김의 한자가 같으니 같은 계통일 것”이라는 수준의 주장이 아닙니다. 금나라 황실의 시조 전승, 송나라의 현지 기록, 고려의 독자적 전승, 원나라의 정사, 청나라의 관찬 원류서, 후금의 국호 계승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자료가 모였는데도 아무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려면, 오히려 저처럼 관련성을 주장하는 쪽보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국가'가 미리 정해놓은 결론은 때때로 사료보다 설명을 덜 요구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현재의 자료만으로 완안씨 금 황실과 애신각라 청 황실이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부계혈통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애신각라를 대상으로 한 유전학 연구는 누르하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일부 남성들의 Y염색체 계통을 제시했지만, 이를 신라 김씨 또는 완안씨 황족의 고대 유골과 대조한 연구는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유전학이 직계혈통을 100% 입증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계승은 DNA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집단의 시조 전승, 국호, 정치적 정통성, 민족명, 왕조의 기억도 계승의 실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나라와 후금·청나라가 밀접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후금이라는 국가 자체가 옛 여진 금나라의 이름을 되살려 세운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신라 또는 고려에서 여진 완안부로 들어간 함보가 서 있습니다. 결국 중국인들이 정말 따져 물어야 할 질문은 “한국인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왜 금나라와 동시대였던 송나라 기록은 금 황실의 시조를 신라인이라고 했는가. 왜 금나라가 남긴 시조 기록을 토대로 편찬된 《금사》는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고 했는가. 왜 《고려사》에는 평주의 김씨 계통 인물이 여진으로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됐다는 기록이 남았는가. 왜 청나라 황제가 편찬시킨 《흠정만주원류고》는 “금나라가 신라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는가. 왜 누르하치는 자신의 여진 국가를 다시 ‘금’, 즉 아이신 구룬이라고 불렀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은 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반박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이 배워 온 중국공산당식 국가 중심 역사관과 맞지 않는 기록을 외면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중국공산당식 역사서술은 오늘날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처음부터 하나의 중국사였던 것처럼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현재의 국경과 민족 구성을 과거로 소급하여 설명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여진, 거란, 몽골, 신라, 고려, 송, 금, 명, 청은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 서로 역할을 나누어 맡았던 지방세력이 아니었습니다. 각기 다른 정체성과 정치질서, 언어와 계보를 가진 역사적 주체였습니다. 현대 중국의 영토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모든 집단을 중국민족의 오래된 구성원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그 집단들이 한반도와 맺었던 계보적·문화적 연결은 주변부 교류 정도로 축소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설명이라기보다 현재의 지도를 과거에 덧씌우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결론을 먼저 그려놓고 옛 문헌을 그 지도 안에 단순 정렬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함보는 현대 국경선을 알지 못했습니다. 《송막기문》의 저자도 오늘날의 중화민족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금사》의 편찬자 역시 21세기 중국의 영토적 필요를 고려하여 “고려에서 왔다”는 문장을 쓴 것이 아닙니다. 《흠정만주원류고》 또한 오늘날의 중국공산당 역사교육 지침에 맞추어 편찬된 책이 아닙니다. 사료가 현대의 국가서사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금나라는 신라·고려와 깊이 연결된 시조 전승을 가진 여진 왕조였습니다. 그 금나라의 이름과 역사적 정통성을 다시 불러낸 국가가 후금이었고, 후금이 국호를 바꾸어 탄생한 왕조가 청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신라·고려계 시조 전승에서 금나라로, 금나라의 기억에서 후금으로, 후금에서 청나라로 이어지는 흐름은 충분한 문헌적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로 억지로 빼앗아 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가 현대의 단단한 국경선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금나라와 청나라를 오직 중원 한족사의 부속물로만 설명하거나, 반대로 오늘날 중국 영토의 선행 단계로만 정리하려는 시각이야말로 동북아시아 역사의 실제 모습을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만주는 중국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놓인 단순한 경계지대가 아니었습니다. 한반도와 북방세계, 유목과 농경, 여진과 고려, 금나라와 송나라가 만나고 충돌하며 서로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던 독자적인 역사공간이었습니다. 현재 어느 국가의 영토에 속해 있는지만으로 그 과거의 모든 관계를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이 사실을 불편해한다고 해서 자신들의 정사와 황실 관찬서에 남은 문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불편한 해석을 역사왜곡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송막기문》의 문장을 다시 쓸 수는 없습니다. 《금사》의 함보를 여진 토착민으로 바꿀 수도 없고, 《흠정만주원류고》의 “金之自新羅來無疑”를 없던 문장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역사는 현재의 국가가 허가한 기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국가가 가장 불편해하는 오래된 문장 하나가, 그 국가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거대한 역사서술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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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야심 차게 준비한 영화 《펑후해전》은 얼핏 보면 현재의 양안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역사 선전물처럼 보입니다. 1683년 청나라 수군이 펑후에서 대만의 명정政權을 격파하고, 그 결과 대만을 청나라의 통치 아래 편입한 사건을 영화화했기 때문입니다. 예고편에는 아예 “펑후로 진격해 대만을 함락하라”, “대만 통일은 막을 수 없다”는 식의 노골적인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중국공산당 선전당국이 17세기의 펑후해전을 오늘날의 대만 통일 문제와 직접 연결하려 했다는 사실은 굳이 깊이 해석할 것도 없습니다. 영화 자체가 정치적 비유를 설명서처럼 달고 나온 셈입니다. 그 역사적 구도도 현대와 절묘하게 겹칩니다. 대륙을 장악한 청나라를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놓고, 대만을 거점으로 반청복명 운동을 이어가던 정씨 세력을 현재의 대만 정부에 놓으면 됩니다. 정성공과 정씨 세력은 도쿠가와 일본과 무역·군수물자·무기 및 인적 지원을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했으므로, 그 뒤에는 현대의 일본에 대응하는 존재까지 배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오늘날 국가 간 군사동맹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선전영화의 비유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그럴듯합니다. 정성공은 남명에 충성하며 반청복명을 내세웠고, 네덜란드 세력을 대만에서 축출한 뒤 그곳에 정씨 정권의 기반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대만에서도 정성공은 특정 정당만의 영웅이 아닙니다. 국민당은 그를 반청복명과 대륙 수복의 상징으로 해석했고, 민진당 계열에서는 대만 최초의 본토적 정권과 해양적 개척의 상징으로 재해석해 왔습니다. 해석은 서로 달라도 정성공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영웅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양측이 겹칩니다. 그러니 중국공산당의 계산은 단순했을 것입니다. 대륙의 중앙정부가 펑후를 돌파하고 대만의 분리세력을 굴복시켰던 역사를 보여주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대만도 결국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1683년의 청나라 함대가 인민해방군 함대로 바뀌고, 명정政權이 현재의 대만 정부로 바뀔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역사도 있고, 해전도 있고, 대만 통일이라는 결론도 있으니 선전영화로서는 이보다 편리한 소재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인들 가운데 일부가 이 영화를 전혀 반대 방향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청나라를 중국 통일의 주역으로 본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멸망시킨 만주족 정복왕조로 본 것입니다. 이 시각에서 정성공은 대만을 분리하려는 반란자가 아니라, 이민족에게 빼앗긴 한족 왕조를 복원하려던 최후의 충신이 됩니다. 청나라 수군의 펑후 승리는 ‘대만 통일’이 아니라 만주족 왕조가 마지막 한족 저항세력까지 짓밟은 사건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중국공산당의 선전 논리는 기묘한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정성공의 반청복명이 잘못이라면, 명나라를 복원하려 했던 한족의 저항도 잘못이어야 합니다. 청나라가 대만을 공격한 전쟁이 정당한 통일전쟁이라면, 만주족이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의 중원을 점령한 과정도 정당한 통일이어야 합니다. 중국의 한족 민족주의자들에게 “대만 통일을 위해 청나라를 응원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중국공산당은 그들에게 사실상 이렇게 명령하는 셈입니다. “여러분의 마지막 한족 왕조를 멸망시킨 만주족 정복왕조에 박수를 보내십시오.” 이 얼마나 웃기는 장면입니까. 한족 민족주의를 자극해 국가적 결속을 만들려 했더니, 그 한족 민족주의가 영화 속 청나라를 향해 “저들이야말로 외세 아닌가?”라고 되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명나라가 진짜 중국이라면 청나라의 대만 정복은 외부 정복이 되고, 청나라가 진짜 중국이라면 한족이 자랑하는 마지막 순수 왕조 명나라는 중국의 유일한 정통일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한쪽의 선전논리가 무너집니다. 실제로 중국 인터넷에서 이른바 ‘황한’, ‘명분’, ‘1644 역사관’으로 불리는 흐름은 청군이 산해관을 넘어선 1644년을 중국 문명의 단절점으로 보고, 청나라를 외래 정복정권으로 해석합니다. 이들은 근대 중국의 쇠퇴가 아편전쟁이 시작된 1840년이 아니라 명나라가 무너진 1644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며, 명나라를 애도하고 청나라를 비판합니다. 《펑후해전》이 공개되자 이들이 시랑을 한간이나 배신자로 부르고, 왜 한족의 명정政權을 멸망시킨 청나라를 미화하느냐고 반발한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문제는 중국공산당이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없애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영화에 대한 부정적 검색 결과는 사라지고, 일반 이용자의 논평은 보이지 않게 됐으며, 더우반에서는 평점과 댓글 기능이 닫혔습니다. 영화가 대만을 향해 쏘아 올리려던 선전포탄이 중국 내부의 명·청 역사논쟁으로 되돌아오자, 당국은 포탄보다 먼저 댓글창을 막은 셈입니다. 중국공산당이 ‘1644 역사관’을 유해한 역사허무주의나 역사왜곡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청나라를 중국사가 아닌 만주족의 정복사로 분리해 버리면, 현재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기가 곤란해집니다. 중국의 공식 역사서술도 청나라가 동북·몽골·신장·티베트·대만 등을 하나의 제국적 질서 안에 편입함으로써 현대 중국 영토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오늘날의 거대한 중국 지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나라가 반드시 ‘중국’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한족 왕조인 명나라의 직접적인 지배영역만을 기준으로 현대 중국을 재구성하면 지도는 크게 줄어듭니다. 신장과 티베트, 외몽골을 비롯한 광대한 변경지역을 명나라의 안정적인 직접 통치영역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한족 중심의 역사관으로 계산할 경우 중국의 역사적 공간은 현재 영토의 대략 3분의 1 수준으로까지 쪼그라드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청나라를 온전히 자기 역사로 받아들이면 현대 중국보다도 넓었던 제국의 판도를 중국사의 최대 영토로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공산당은 필요할 때는 한족의 자부심을 자극하지만, 그 자부심이 청나라를 외세로 규정하는 순간 즉시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한족 중심주의는 대중을 결집시키는 데는 편리하지만, 너무 멀리 가면 ‘통일적 다민족국가’라는 공식 국가서사를 파괴합니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교과서에서 비한족 왕조와 민족은 초기에는 중국 밖의 타자로 설명되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처음부터 중국사의 일부였던 존재로 점차 통합됐습니다. 역사적 주체의 범위가 국가와 당의 정치적 필요에 맞추어 확장된 것입니다. 한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단일 혈통집단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북방과 남방의 수많은 집단이 왕조의 흥망과 이주, 동화와 혼합을 거치면서 한족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왔습니다. 어제까지 이민족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중원을 차지하고 중국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인 뒤, 몇 세대가 지나면 자신들이 다시 한족과 중화의 정통을 자처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니 “순수한 한족 왕조”를 찾겠다는 시도 자체가 역사의 복잡성을 현대 민족주의의 틀 안에 억지로 욱여넣는 일입니다. 한국 영화 《남한산성》을 본 일부 중국 관객이 “명과 청이 모두 중국인데 조선은 왜 둘 사이에서 저렇게 싸우느냐”고 의문을 가졌다는 일화도 같은 혼란을 보여줍니다. 그 반응이 얼마나 일반적이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오늘날의 중국이라는 국가 개념을 명과 청에 동시에 소급하면 병자호란의 본질은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조선이 섬긴 명과 조선을 침공한 청은 현대 중국의 두 지방정부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왕조적·민족적·국제질서를 대표하는 정치체였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모두 영원한 하나의 중국으로 포장하면, 조선이 왜 명에 대한 의리를 말하고 청을 오랑캐라 불렀는지 설명할 언어가 사라집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청의 기원으로 일컬어지는 만주와 여진의 역사는 중원 한족의 역사보다 한반도 북부와 훨씬 오래되고 밀접한 접촉관계를 맺어 온 동북아시아의 역사입니다. 고대 부여와 고구려로 이어지며 여진과 고려·조선은 전쟁과 교섭, 이주와 귀화, 혼인과 무역을 반복했습니다. 청 황실인 애신각라는 신라에서 발원하여 여진에서 만주로 발전한 집단이 세운 후금과 청나라를 지배했고, ‘아이신’은 만주어로 금(현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을 뜻합니다. 역사학과 현재의 유전학 연구는 애신각라를 여진계 황실로 설명하며 신라 경주 김씨의 직계 후손이라는 결론까지 인정하기도 합니다. 금이라는 이름, 여진과 만주의 동북아적 계보, 신라 경주 김씨 왕통과의 여러 연결 정황을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의 계보 뒤에 한반도의 신라 및 김씨 계통과 이어지는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존재합니다. ‘애신각라’를 문자 그대로 “신라를 각별히 사랑한다”는 어원으로 단정하려면 여전히 추가연구가 필요한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 표현은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역사서술을 조롱하는 절묘한 언어가 됩니다. 한족 민족주의자들이 오랑캐라고 비난하는 청나라 황실이 사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동북아적이고, 한반도의 역사세계와 가까운 계보를 지녔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펑후해전》의 진정한 희극성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중국공산당은 대만을 위협하기 위해 청나라의 승리를 불러냈지만, 그 순간 한족 민족주의자들은 명나라의 원혼을 불러냈습니다. 공산당은 청나라를 중국 통일의 영웅으로 만들려 하고, 황한주의자들은 청나라를 중국을 멸망시킨 외세라고 부릅니다. 공산당은 청나라가 중국이어야 현재의 영토를 설명할 수 있고, 황한주의자는 청나라가 중국이 아니어야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마음대로 개봉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대만에 보여주려고 만든 승리의 역사가 중국 내부에서는 정체성의 내전으로 변했습니다. 청나라를 찬양하면 명나라가 배신당하고, 명나라를 찬양하면 청나라가 구축한 영토가 흔들립니다. 정성공을 반란자로 만들면 반청복명이라는 한족의 충절이 부정되고, 정성공을 영웅으로 만들면 오늘날 대만의 저항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결국 펑후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은 정씨 수군만이 아닙니다. 민족을 기준으로 할 때와 영토를 기준으로 할 때마다 ‘중국’의 의미를 바꾸어 온 중국공산당의 역사 논리도 그 바다에서 함께 좌초하고 있습니다. 청나라는 필요할 때는 위대한 중국이고, 한족 감정을 자극할 때는 말하기 곤란한 만주족 왕조입니다. 명나라는 필요할 때는 위대한 한족의 정통이지만, 대만 문제 앞에서는 분열세력의 배후가 됩니다. 역사를 마음대로 편집하면 언젠가는 서로 다른 편집본끼리 충돌합니다. 《펑후해전》은 대만 통일을 선전하려고 만든 영화였지만, 오히려 “도대체 명나라가 중국인가, 청나라가 중국인가”라는 금지된 질문을 중국인들 자신의 입으로 꺼내게 했습니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영화를 상영하자니 청나라를 응원해야 하고, 영화를 막자니 대만 통일 선전을 스스로 접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진격도 곤란하고, 철수도 곤란한 펑후해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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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der
Balder@Balder13946731·
我说过半导体,特别是存储的横盘整理会很久很久,所以也没啥惊讶的。但是目前这个100%以上的IV,反复收割波动率,其实也美滋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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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hao Sun 孙富豪🇨🇳
Fuhao Sun 孙富豪🇨🇳@sfh1349508797·
台湾是中国的一个省,永远不可能成为一个国家! Taiwan is a province of China and can never become a country!
Fuhao Sun 孙富豪🇨🇳 twee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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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in<3
hanjin<3@zhngdnd28646688·
@zhao_dashuai 中男再怎么骂出国的中女也不会有人因此看你们一眼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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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ao DaShuai 东北进修🇨🇳 Commentary
前辈打下的江山和荣耀都被这些人给败没了。 拿着老爸、男友、老公的钱,跨国给赛博老公花钱。赛博老公没见到,反而被人家打了一顿。 才知道这群人把自己叫做“熊猫妹”,可别侮辱熊猫了,人家可是国宝。 还有这群东西追的就是泰国的男腐文化,真的好恶心,所以要远离饭圈女。
Zhao DaShuai 东北进修🇨🇳 Commentary twee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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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猴之祖
越猴之祖@SongWeigo34147·
@fongbeerjmx_ 泰国猴子的智商应该不到60,这种劣等的生物,应该都杀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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ชเว ซึงชอล 🍒
@SongWeigo34147 คนจีนที่แอบอ้างเป็นคนเกาหลีมาด่าคนไทย เพื่อเกิดความเข้าใจผิด นี่น่าขยะแขยงจริง แงง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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ชเว ซึงชอล 🍒
คนไทยถ้าแตะตัวเมื่อไหร่=เปิดสงคราม คิดว่าอยู่ๆคนไทยจะทำร้ายร่างกายคนอื่นก่อนหรอ ละพอมีฟค ประเทศอื่นเข้าข้างไทย คือโดนฟค.ประเทศนั้นเหยียดเฉย อะไรของมั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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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猴之祖
越猴之祖@SongWeigo34147·
@AutsamaPakdee 泰国猴子还没被柬埔寨杀干净吗?劣等民族就不该活在世界上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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แม่น้องลูกบ๊อง '.-.'
ประเทศเราใจดีแค่ไหนแล้วกับคนแบบคุณ เรายังใช้สตาฟผู้หญิงในการคุมตัวออกจากบริเวณ เนื่องจากคุณไม่ได้ทำตามระเบียบ ดีใจด้วยนะคะศิลปินเห็นคุณแล้ว แต่เขาคงไม่ได้ภูมิใจในตัวคุณเลย เค้าคงไม่อยากเห็นแฟนคลับของเขาทำตัวไม่มีมารยาท ไม่ให้เกียรติเขาและแฟนคลับของเขา หยุดโจมตีประเทศเราเถอะ เพราะคุณก็ไม่ได้เป็นคนดี 🤨 #งานมหกรรมนิยายนานาชาติ2026xGMMTV
Married w Music 🎧@awlyfv

จงกั๋วเหรินอีกแล้วจ้า #มหกรรมนิยายนานาชา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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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猴之祖
越猴之祖@SongWeigo34147·
@realnamnao 泰国猴子还没被柬埔寨杀干净吗?劣等民族就不该活在世界上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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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namnao·
ให้พูดอีกที ประเทศที่คนทั้งโลกเอียนคือพวกมึงจ้าาา ตื่นเนอะ แค่ได้ยินว่าจงกั๋วเค้าก็ไม่แปลกใจกับพฤติกรรมบ้าๆแล้วค่ะเจ๊ ทุกวันนี้ที่คนเอเชียโดนเหยียดก็เพราะเค้าเข้าใจว่าพวกกุเป็นคนจีน เลยโดนกันหมดเนี่ย หนีห่าวเลยกลายเป็นคำเหยียดไงเจ๊
古菇顾@gyxing1872011

@realnamnao @v0B0ylJGJn63233 @drarry_175 做梦呢,就你们那穷酸地方,整个世界都知道泰国落后、穷酸,你说的东西没人信的,因为大家不喜欢你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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