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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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면허 운전대를 잡으면 사고가 난다. 보험이 받아주고, 교특법이 덮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핸들을 잡는다. 수술대도 그렇다. 다만 보험이 없다. 어느 변호사께서 물으셨다. "바이탈 의사들은 운전도 안 하시는가." 좋은 비유다. 한 가지만 빠졌다. 운전은 면허 한 장으로 시작되고, 수술은 면허 한 장으로 끝난다. 핸들을 놓친 의사는 이튿날 출근한다. 카테터 끝에 한 사람이 남은 의사는 이튿날 법정에 선다. 같은 사람의, 같은 손이다. 바이탈이라는 말은 화려하지 않다. 멈추면 사람이 죽는 자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새벽 두 시, 흉통으로 실려 온 환자의 심전도가 ST를 들어올린다. 30분 안에 결정해야 한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리고, 망설인 자가 법정에 선다. 또 한 분께서 말씀하셨다. "소송 위험은 만인에게 보편적이다." 옳은 말씀이다. 다만 보편이라는 단어가 모든 무게를 평평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변호사가 패소해도 면허는 남는다. 판사가 오판해도 형사가 되지는 않는다. 결과를 들고 법정에 서는 직업은, 이 나라에 의사 하나다. 합병증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에는 있는데, 판결문에는 없다. 스텐트 한 개의 무게는 1그램이 못 된다. 한 번 천공이 나면, 삼십 년이 한 줄로 정리된다. 그 한 줄이, 어느 트윗 한 줄과 닮아 있다. 가벼움은, 때로 무례의 다른 이름이다. 운전대를 잡으시거든 부디 무사하시길. 우리는 매일, 그보다 무거운 것을 쥔다. 가끔은, 쥐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쥔다.

두 개의 면허 운전대를 잡으면 사고가 난다. 보험이 받아주고, 교특법이 덮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핸들을 잡는다. 수술대도 그렇다. 다만 보험이 없다. 어느 변호사께서 물으셨다. "바이탈 의사들은 운전도 안 하시는가." 좋은 비유다. 한 가지만 빠졌다. 운전은 면허 한 장으로 시작되고, 수술은 면허 한 장으로 끝난다. 핸들을 놓친 의사는 이튿날 출근한다. 카테터 끝에 한 사람이 남은 의사는 이튿날 법정에 선다. 같은 사람의, 같은 손이다. 바이탈이라는 말은 화려하지 않다. 멈추면 사람이 죽는 자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새벽 두 시, 흉통으로 실려 온 환자의 심전도가 ST를 들어올린다. 30분 안에 결정해야 한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리고, 망설인 자가 법정에 선다. 또 한 분께서 말씀하셨다. "소송 위험은 만인에게 보편적이다." 옳은 말씀이다. 다만 보편이라는 단어가 모든 무게를 평평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변호사가 패소해도 면허는 남는다. 판사가 오판해도 형사가 되지는 않는다. 결과를 들고 법정에 서는 직업은, 이 나라에 의사 하나다. 합병증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에는 있는데, 판결문에는 없다. 스텐트 한 개의 무게는 1그램이 못 된다. 한 번 천공이 나면, 삼십 년이 한 줄로 정리된다. 그 한 줄이, 어느 트윗 한 줄과 닮아 있다. 가벼움은, 때로 무례의 다른 이름이다. 운전대를 잡으시거든 부디 무사하시길. 우리는 매일, 그보다 무거운 것을 쥔다. 가끔은, 쥐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쥔다.






진단 (사이코패스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잠든 아기의 볼은 발그레했다. 그 사진 아래, 한 인간(?)이 거꾸로 읽어야 뜻이 드러나는 두 글자를 적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사이코패스인가, 소시오패스인가? 정신의학의 답은 더 정확하고, 더 차갑다. 이런 행동을 가리키는 학술 용어가 따로 있다. ‘일상적 가학성(Everyday Sadism)’.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인격 특성을 뜻한다. 201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폴허스 교수 연구진은 인터넷 악플러 수백 명을 분석한 끝에, 가학성이 악플 행동을 가장 강력하게 예측하는 변수임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논문 제목은 ‘Trolls just want to have fun‘. 그들은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이다… 심리학자 존 술러는 이 현상에 ‘온라인 탈억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익명과 비대면이 양심의 빗장을 풀어 놓는 순간, 평소 가려져 있던 본성이 드러난다. 새로 생긴 모습이 아니다. 원래 그러했던 모습이다. 한쪽 부모는 사랑을 게시했다. 다른 인간(?)은 그 사진 위에 두 글자를 얹었다. 두 행위는 같은 저울에 오르지 않는다. 한편에는 새벽마다 아이의 숨소리를 세는 자의 피로가, 다른 한편에는 모르는 아기의 잠든 얼굴 앞에서 권태로워하는 인간(?)의 공허가 있다. ‘한남’ ‘한녀’라 길러 온 미움의 언어가 끝내 잠든 아기의 사진 위로 떨어졌다. 그 댓글은, 그 언어가 다다른 종착역이다. 이것은 견해의 문제가 아니다. 인격의 문제다. 토론할 일이 아니라, 진단할 일이다. 그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분노가 아니다. ‘진단’이라는 단어다. 탈은 벗겨진다. 늘 그래 왔다. 잠든 얼굴 위에 얹어 둔 두 글자는, 결국 거울이 된다. 거울 앞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의 모양으로 늙어 간다……

심장이 암에 잘 안 걸리는 진짜 이유 암은 세포가 분열할 때 생긴다. 복사기를 돌리다 오류가 나는 것처럼, 세포가 나눠질 때마다 유전자에 오타가 끼어든다. 위장은 며칠마다 새 세포로 갈아입고, 피부도 한 달이면 바뀐다. 복사기가 쉴 틈 없이 돌아가니 오타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심장 근육세포는 태어날 때 받은 것을 거의 평생 쓴다. 심근세포는 1년에 전체의 겨우 1%만 새로 만들어진다. 75세가 되면 그마저 0.3%로 줄어든다. 복사기가 거의 꺼져 있는 셈이니, 오타가 낄 틈이 없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암 (위암, 폐암, 대장암)은 전부 상피세포에서 시작한다. 점막이라 불리는, 몸의 안팎을 덮는 얇은 막이다. 심장에는 이 막이 없다. 가장 흔한 암의 출발선 자체가 심장에는 깔려 있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장은 쉬지 않는다. 하루 10만 번, 평생 30억 번. 그 안을 피가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종양 세포 입장에서 심장은 태풍 속에 텐트를 치라는 것과 같다. 정착 자체가 어렵다. 온도가 아니다. 심장은 세포가 거의 안 나뉘고, 암이 좋아하는 점막이 없고,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암이 드문 것이다. 세 줄로 정리되는 이 답이, 트윗 한 장보다 정확하다.












